국문초록
2005년 서울 아차산 홍련봉 2보루를 발굴조사한 사람들은 이에서 수습한 5~6세기 고구려시대 접시 모양 토기 안쪽 바닥면에서는 ‘庚子’라는 두 글자가 적혀 있으며, 이는 520년에 해당한다고 발표했다.
나아가 이는 고구려가 백제로부터 한강 유역을 탈취해 점유한 시기가 475년 이래 551년까지임을 명확히 증명하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세밀한 검토 결과 이 글자는 ‘庚子’라는 연대를 의미하는 말이 아니라 남성용 휴대 소변기인 ‘虎子’로 판독되었다.
이 글씨가 왜 접시 바닥에 적혔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아마도 虎子의 받침대 역할을 했기 때문으로 추정됐다.
이는 아차산 일대 보루 유적에서 출토된 다른 명문(銘文) 토기에 견줄 때도 기종(器種)을 의미하지, 연대가 들어갈 수 없다는 점에서도 간접 뒷받침된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고구려가 한강유역을 영유(領有)한 기간이 80년가량이라는 주장이 압도적이었지만, 근자에 이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게 나왔다.
그런 실정에서 이 토기 명문을 ‘庚子’로 보고, 나아가 그것이 520년에 해당한다는 주장은 종래의 지배적인 학설을 결정적으로 증명하는 유일한 근거로 제출되었지만, 그 글자가 ‘虎子’로 재판독됨으로써 근거를 상실했다.
***
이상은 2013년 5월 25일 충남 부여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연수원강당에서 문헌과문물이 주최한 제2회 문문文文 정기학술대회 ‘새로 만난 文物, 다시 보는 文物’ 발표문 중 하나로 이 대회 발표는 아래와 같다.
11:00~11:30 김영관(제주대 사학과 교수) : 의자왕 외손 이제(李濟) 묘지명(墓誌銘)에 대한 기초적 검토
11:30~12:00 김태식(연합뉴스 문화부 기자) : 홍련봉에 남은 고구려의 두 아들〔子〕- 경자(庚子)와 호자(虎子) 사이에서
13:30~14:00 안상현(한국천문연구원 연구원) : 다시 보는 케임브리지 휘플 박물관 소장 한국제 신구법천문도
14:00~14:30 정훈진(한국문화재보호재단 연구원)/ 강희정(서강대 동아연구소 HK교수) : 성남 판교동 10구역 건물지와 고려 불교조각
14:30~15:00 심상육(부여군문화재보존센터 선임연구원)/김영문(전 서울대 중문과 강사) : 부여 구아리 319번지 유적 출토 백제목간
15:30~17:00 종합토론(사회 정승혜. 수원여대 교수)
저 발표는 훗날 공간되었으니 어딘지 내가 찾을 수 없다 ㅋㅋ
단국대 문화사학이나 한고탐 정도 아닌가 싶다.
저 유물은 고구려가 475년 이래 80년간 죽 고구려가 한강 유역 일대를 점령해야 한다는 믿음이 처절한 사람들한테는 여호와였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건 여호와가 아니라 오줌통이었다.
그렇게 신기루처럼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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