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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영부인 한복을 가장 많이 만든 한복디자이너 이리자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0.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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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한복 디자이너 이리자 씨 별세

송고시간 2020-03-22 11:27

강종훈 기자


이리자


요새처럼 부고 소식이 난감한 때가 없다. 하도 시절이 어수선하니, 부고를 전하는 상주들이 난감한 시기다. 이 보건사태에 나 역시 되도록 직접 조문은 삼가하니, 며칠 전 도저히 건너띌 수 없는 상가에만 딱 한 번 갔을 뿐이며 조의금만 전달하고 만다. 


한복 패션화와 국제화를 이끌었다 평가하는 1세대 한복 디자이너 이리자 씨가 타계했다. 본명 이은임. 그 소식을 전하면서 상주측에서는 "직접 조문은 삼간다"는 말을 덧붙인다. 그리하고 싶어 그리하는 일도 있겠지만, 시절이 시절이니 이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소식은 복식사를 하는 지인을 통해 그쪽에서 연락이 온 사안인데, 애초에는 내가 이리자라는 이름만 듣고는 문화재 담당기자한테 연락했다가 이건 문화재가 아니라 패션 쪽인 듯하다 해서 다시금 미술과 패션을 겸하는 담당기자한테 주문을 넣어 처리한 사안이다. 



이리자...이 분은 나랑 직접 인연은 몇 번 없었다. 국립민속박물관 같은 데서도 간접으로 두어 번 지나친 듯한데, 특별히 기억에 남을 사연은 없다. 다만, 경복궁 동문 근처인가 어딘가에 이리자한복연구소라는 간판을 내걸고 오래도록 영업과 한복박물관 사업까지 겸했으니, 그런 간판을 무척이나 자주 마주쳐 친숙한 그런 이름이긴 하다. 


기사에서도 언급되었듯이 고인은 한복 디자이너라는 명칭을 처음으로 사용한 주인공으로 알려진다. 한복의 현대화와 국제화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어니와, 그런 점은 제대로 평가되어야 한다고 본다. 


한데 고인은 이력이 좀 독특하다. 충남 논산 산인 그는 충남대 영문과 출신이라, 그런 그가 어찌하여 한복과 연이 닿게 되었는지는 내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1966년 이리자한복연구소를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한복 현대화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이런 점들이 궁금해 몇 가지를 직접 수소문해 보니, 평범한 동네 사람인 엄마한테 바느질을 배우다가 한복으로 빠졌다고 한다. 처음에는 조그마한 한복집을 하다가 나중에 전업의 길을 걷게 된다.    


그는 한복집에 마네킹을 처음 세운 사람이다. 지금 경복궁 인근 한복집을 표방하는 가게들을 보면 하나 같이 한복(?)을 마네킹에 걸쳐놓았으니, 그 시원을 연 인물이 이리자다. 


디자인이라는 측면에서 이리자는 한복에 A라인 삼각형이라 해서, 한복 치라를 밑으로 퍼지게 하는 디자인을 처음을 시도한 사람이다. 그 이전 한복은 통으로 된 1자형 혹은 H라인 일색이었다.  




86년도인가 유니버시아드대회에 한국 여성들이 출진하게 되었거니와, 한국친구들은 키가 작으니깐 어케 하면 키가 커보이게 할까 고민하다가 나온 디자인이라 한다. 그리하여 과감히 저고리를 짧게 하고, 치마는 A자로 아래로 퍼지게 함으로써 시선을 위로 끌어당김으로써 키를 커보이게 했다는 것이다. 당시 이 한복으로 의상상도 받았다고 한다. 

 

이리자는 역대 영부인 한복을 가장 많이 만든 사람이다. 그가 만든 한복을 입은 영부인으로는 이승만 부인 프란체스카, 전두환 부인 이순자 , 김대중 부인 이희호, 노무현 부인 권양숙이 있다.  

 

프란체스카는 한복을 특히 좋아했는데, 돌아가실 때 수의도 한복으로 했다. 그 한복이 바로 이리자 선생 작품이다. 프란체스카는 평소 보라색 한복을 좋아했다. 그래서 보라색 비단으로 미리 수의를 만들어 놓았다. 



 

이순자 시절엔 한복 붐이었다. 이순자가 워낙 한복을 좋아했고 봉황 같은 걸 넣은 화려한 한복을 많이 지었다. 


이희호는 단아함을 선호해서 무궁화 같은 걸 들어간 한복을 했다. 이희호는 다리가 불편해서 치마가 길어 다리가 한번 걸린 적이 있어 나중에는 짧게 디자인했다. 권양숙도 외국갈 때 한복을 많이 입었다. 


기타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 주한 외국 대사 부인들 한복은 거의 다 이리자 작품이다. 



 

해외 한복패션쇼만 100번을 넘게 했다. 그 모든 자료를 다 갖고 있다. 그중 150점 정도를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했다. 개중에는 역대 영부인 한복도 있다. 영부인 한복은 세벌을 만들어 한 벌은 드리고, 2벌은 갖고 계셨다. 개중 한 벌을 박물관에 기증한 것이다. 


새 대통령이 당선되면 이리자는 영부인에 대한 조사를 미리 죽 해서 준비했다. 취임식에 입을 한복은 영부인 피부톤이나 그가 좋아하는 색상 등을 고려해서 제작했다. 


해외패션쇼를 100번 넘게 하면서 디자인이 각각 다르게 했다. 70년대는 유명한 화가들을 쫓아다니며 그림도 받고 글씨도 받고 해서 그걸 한복디자인에 썼다. 한글디자인은 이상봉씨보다 먼저 했다. 전승공예대전도 여러 번 입상했다. 


이리자 한복



덧붙여 선생은 모시조각보를 유행시킨 주인공이다. 2000년인가 암이 걸려 국내외 요양하면서 그간 한복 등을 만들면서 나온 천조각들로 모시조각보를 만들었다. 


요컨대 이리자는 한복의 혁명아였다. 


이런 사항들을 보강한 종합기사가 아래다. 


1세대 한복 디자이너 이리자 씨 별세(종합)

송고시간 2020-03-22 13:07

강종훈 기자

한복에 A라인 도입, 역대 영부인 한복 도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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