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향신문 이기환 선배가 본인 기사에 인용한 임당동 유적 한 무덤 순장자와 그 인근 돔배기 매장 양상 상상 복원도(위)와 그 실제 발굴에서 드러나는 인골과 상어뼈 흔적 양상(아래)이라
저 기사 저 도판 설명은 아래와 같다
임당유적에서 순장자 발밑에 묻어둔 상어를 순장자와 함께 복원한 모습. 임당 고분에서 다양한 제사 음식 가운데 특히 많은 양의 상어뼈가 눈에 띈다. 연구자들은 상어고기를 토막내어 소금에 절인 돔배기를 떠올린다. 경상도 내륙지방 사람들이 즐겨 먹는 ‘돔배기’가 2000~1500년전 사람들도 즐겼을 것이다. |국립대구박물관 복원
저런 바다생물은 결국 원거리 교역과 연결해야 하는데, 계속 말하듯이 저걸 돔배기화 하는 까닭은 말할 것도 없이 저장성 때문이다.
저 원거리 교역에서 바로 소금 절이기와 미라화가 대두한다.
예서 미라화란 무엇인가?
이집트식 미라화를 말한다.
곧 임바밍embalming이라 빨리 썩어버리는 내장이라는 내장은 쏵 빼내야 한다.
저 상어뼈에서 대가리가 나오지 않음을 근거로 저리 복원 상상한 모양이라, 배를 갈라 내장 또한 쏵 빼내야 하며, 그 쏵 빼낸 내장 자리에는 소금을 그득그득 쳐야 한다.
따라서 저 복원 상상도를 실제에 더 근접하게 하려면 배를 가른 모습을 보강해야 한다.
바로 이에서 우리는 임바밍 문제가 꼭 이집트에만 해당하지 않음을 본다.
생선을 오래 저장하고자 하는 욕망과 시신을 썩지 않게 하려는 이집트 미라는 근간이 같다.
뭐 이집트 미라라 하니 뭔가 요원하고 있어 보여?
생선 봐라. 그게 이집트 미라다.
그러고도 문제가 남는다.
도대체 저걸 어디에 넣어 운반했단 말인가?
이거 궁금하지 아니한가?
순장자 곁에 남은 돔배기 크기를 보면 꽤 규모를 자랑함을 보는데 저걸 질질 끌고 다녔단 말인가?
리어커에 싣고 다녔을까?
지게로 졌을까?
어딘가에 넣어서 운반하지 않았겠는가?
같은 바다생물인 조개류 등등은 어찌 했을까?
그렇게 한국고고학에서 환장하는 토기로 돌아가야 한다고 본다.
그 토기 중에 원거리교역에 최적화한 것들이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암포라다.
이 암포라가 한국고고학에도 있다!
그 한국 암포라에다가 조개 따위 작은 해산물은 쟁여넣고 소금을 꽉꽉 채워서 운반했다.
뭐 또 다 아는 문제라고 하면 내가 미안하다.
임당동 해산물이 제기하는 원거리 교역의 문제들
https://historylibrary.net/entry/%E3%85%87-932
임당동 해산물이 제기하는 원거리 교역의 문제들
아마 이런 류로 이달 말 개관하는 경산 임당유적전시관에서 전시할 모양인 듯한데 그 세세한 내역이야 발굴보고서에 보이며, 나아가 저 박물관에서도 관련 설명 동태가 있을 것이로대 조개가
historylibrary.net
무덤 음식은 생전에 즐긴 음식이 아니라 못 먹는 음식 집합이다
https://historylibrary.net/entry/%E3%85%87-931
무덤 음식은 생전에 즐긴 음식이 아니라 못 먹는 음식 집합이다
첫째 시대를 올라갈수록 무덤 자체를 만들 수 있는 계층은 지극히 한정됐다. 정확한 통계가 있을 수는 없지만, 무덤이라 해서 그런 집을 지어 사후 세계로 들어간 사람은 백 명 중 한 명도 안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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