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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생로병사生老病死는 문화재라고 예외는 아니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1.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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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

 

살아있는 모든 것은 죽는다. 정이품송도 언젠가는 죽을 것이며 죽어야 한다. 그 죽음의 거부는 자연법칙에 대한 배신이다. 죽어서도 죽지 않음을 가장 하고자 인간이 생물에 대해 시도한 것이 도교의 영생불사에 대한 열망에서 비롯한 금단대약金丹大藥의 환상이며, 고대 이집트 혹은 북한을 비롯한 일부 공산권 국가에서 여전히 시도하는 미라 만들기다. 후자는 썩지 않은 주검을 만들고자, 그 썩음의 원인으로 간주한 수분을 빼냈다. 장기를 적출하고, 뇌수를 끄집어냈으며, 피를 뺐다. 그리하여 남은 것이 인간 건어물 육포다. 우리는 그에 환장하지만, 실은 빈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 뇌수가 빠지고 피가 없는 주검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앞서 나는 보존과학을 이야기했지만, 작금의 우리네 문화재 보존과학이 미라를 만들지 않나 하는 우려가 있다. 보존과학이 영생불멸하는 생명체를 만드는 일이 아닐진대 실제는 문화재의 미라화를 촉진하는 일로 치닫지 아니하는지 못내 의심한다. 냉동 응결해서 냉동 인간을 만드는 일이 보존과학의 사명인가? 

 

지광국사현묘탑

 
문화재도 생로병사가 있다는 사실이 문화재 현장, 특히나 보존과학 현장에서는 너무나 쉽사리 망각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무수한 문화재가 탄생하며, 또 그만한 문화재가 늙어가며 병들고, 또 그만한 문화재가 궁극에는 죽어간다. 죽음을 자연의 법칙으로 받아들여야지, 왜 죽음을 멈추게 하려는가? 걸핏하면 몇 년 전에 견주어, 혹은 몇 십 년 전에 견주어 어떤 문양이 얼마만큼 떨어져 나갔네 어떤 부분이 어떻게 훼손되었네 하는 놀음에 우리는 놀아나야 하는가? 

 
지광국사탑에 대해서도 같은 주장이 되풀이하거니와, 어느 시점 사진에서는 뚜렷이 관찰되던 어떤 문양이 없어졌다는 주장이 버젓이 나온다. 이 주장은 결국 현재 우리 시점에서 확인하는 문양은 그 어떤 것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논리로 발전하거니와, 이 논리가 결국은 모든 문화재를 박물관이니 전시관이니 하는 실내로 옮겨가는 약탈문화재를 낳는 추동엔진이 되고 있다. 

 

  
묻는다. 없어지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

 

이상은 2021. 5. 28 원주역사박물관이 주최하고 문화유산연구소 길과 문헌과문물이 주관하는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귀환 기념 학술세미나 '還歸本處'에서 행한 내 기조강연 '우리 안의 약탈문화재를 생각한다' 원고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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