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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

1910년, 울진 망양정 현판이 사라지다

by 버블티짱 2021.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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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망하기 넉 달 전인 1910년 4월 19일,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울진 망양정望洋亭에 걸렸던 숙종(肅宗, 재위 1674-1720) 어제시御製詩 현판이 수난을 당한다. <황성신문皇城新聞>에 실린 그 수난의 내용을 살펴본 즉-.

 

 

●御製詩板取去 蔚珍郡望洋亭에 我 肅宗大王御製詩(列壑重重逶迤開、驚濤巨浪接天來、如將此海變成酒、奚但祗傾二百盃)懸板을 揭하얏더니 該亭子가 毁撤後로 懸板은 本郡客舍에 奉安한지라 元山財務監督局員須藤正夫가 財務視察次로 該郡에 來到하얏다가 紀念한다 穪하고 其懸板을 取去하얏다더라

한자漢字가 한 자 이상이니 좀 더 보기 쉽게 풀어보자. 

●어제시판御製詩板을 가져가버리다 울진군蔚珍郡 망양정望洋亭에 우리 숙종대왕의 어제시御製詩(큰 묏부리 겹겹이 둘러 있고列壑重重逶迤開、놀란 파도 큰 물결 하늘에 닿아 있네驚濤巨浪接天來、지금 이 바다를 술로 만들 수 있다면如將此海變成酒、어찌 다만 이백 잔만 마시랴奚但祗傾二百盃)현판懸板을 걸었더니, 그 정자가 헐려버린 뒤로 현판은 울진군 객사客舍에 봉안奉安한지라, 원산재무감독국원元山財務監督局員 스도 마사오須藤正夫가 재무시찰차로 그 고을에 왔었다가 기념紀念한다 일컫고 그 현판을 가져가버렸다더라.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망양정이 아예 헐려버리고 거기 걸려있던 현판은 울진군 객사에 임시로 보관했던 모양이다. 근데 저 멀리 함경도 원산의 재무감독국원 '스도 마사오'라는 작자가 재무 시찰차 왔다가 "아, 온 김에 기념으로 저거나 가져가야겠구만!"이라 하고 떼어가버렸다.

도대체 그 일본인 감독국원은 '뭣땀시' 옛날 현판을 기념이랍시고 떼어갔단 말인가. 아무래도 가져가서 곱게 두었을 것 같지는 않다. 고려대장경판을 이로리(일본 화로) 사방을 두르는 판자로 썼다는 일본 경찰서장이 생각나는 이유는 무엇인지.

근데 원산에서 울진까지 도대체 왜 출장을 왔던 것일까? 이때 울진은 강원도 땅. 어쩌면 영동 지방 관청의 재무상황은 원산 재무감독국이 관할했었는지 모르겠다. 백두대간을 따라 쭉 내려가면 되니 교통은 비교적 편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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