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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9월 6일, <매일신보每日新報>는 중국발 기사 하나를 싣는다. 장성長城의 관문 현판이 썩어서 떨어졌노라고.
문제는 그 관문이 천하제일관天下第一關이라 중국 사람들이 자부하던 산해관山海關이요, 현판은 바로 그 '천하제일관'이었다는 것이다.
때는 바야흐로 만주사변, 중일전쟁 등으로 전운이 뭉게뭉게 일어나면서 그 일대를 뒤덮던 시기, <매일신보> 기자는 동네 주민의 전언이라며 이런 말로 끝을 맺었다.
"이에 대하야 그 지방의 중국인들은 일지日支(주: 일본과 지나支那, 곧 중국) 사변이 일어나 일본군이 연전연승하여, 이 편액이 떨어진 것은 [천하제일관]이 남쪽으로 옮겨질....전조라고 수군대고 있다 한다."
물론 산해관의 '천하제일관' 편액이 진시황 때 이사李斯의 필적이란 건 엉터리 이야기고, 실제로는 명나라 떄 진사 소현蕭顯이란 이의 글씨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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