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나는 추사학를 개척한 원훈대신 후지츠카 치카시 등총린 藤塚隣 소장품으로 과천 추사박물관에 기증된 것으로 평양 일대 낙랑 무덤에서 수습한 목관 조각을 이용해 인장 하나를 만들어 사용했다는 소식을 전했거니와, 아래가 그것이라.
낙랑 목관으로 제작한 후지츠카 도장
이 인장은 그것을 담은 그릇인 인장함과 더불어 지금 추사박물관에서 개최 중인 '후지츠카와 난학蘭學' 특별전에 선보이고 있거니와, 다만 여러 제약으로 문제의 도장을 제대로 촬영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으니
그리하여 추사박물관 허홍범 선생님께 공식 요청해서 이 낙랑 목관 인장을 여러 각도에서 촬영한 사진을 받았으니, 이들 사진은 추사박물관이 이번 특별전 개최에 즈음해 그 촬영을 공식 의뢰한 한정엽 선생 작품임을 밝혀둔다.
이 도장 내력과 그에 적힌 문구는 앞서 링크한 저 기사를 참조하셨으면 하고 이 자리에서는 그 면모를 다양하게 보여주는 사진들을 감상키로 한다.
이것이 인장함이다. 저 인장함에 인주와 더불어 각종 인장을 넣어 보관했으니 문제의 낙랑 목관 인장은 앞줄 맨왼쪽이라.
이것이 실제 도장밥을 발라 찍는 면인 인면印面이라, 저 글자는 등총장인藤塚藏印, 곧 후지츠카 소장 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아마도 그의 장서 같은 데다가 이것이 내 책이다 임을 공표하는 보증수표 역할을 했으리라.
'樂浪古墳棺片星零食二千季, 彩漆今猶'라는 글자가 보인다. 낙랑고분 파ㅁ편으로 성령, 곧 연세가 이천살이라, 채색한 옻칠은 지금도 여전히' 라는 뜻이다.
'鮮誠天下珍也. 丁丑元旦試銭'이라, (지금도 여전히) 선명하니 진실로 천하의 보물이라. 정축년 원단에 시험삼아 (칼을) 대서'라는 뜻이다.
'刀, 口田竿良 素軒先生惠存’라고, 칼을( 대서 새기니 새긴 이는) 口田竿良이라, 소헌 선생素軒先生(후지츠카) 혜존惠存 이라는 뜻이다.
왜 낙랑고분 목관을 이용해 팠을까? 이는 낙랑이 저걸 판 저 시대에 하나의 신화로 등극해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대한 증언이라 본다.
2천년이 된 무덤에서, 것도 다름 아닌 평양 낙랑무덤에서 나온 목재라 해서 그걸로 도장을 파서 기념한 것이다.
혹 여유가 된다면, 저 도장 수종 분석을 했으면 싶다.
***
월전 장우성 화백이 젊어서 평양을 갔는데, 거기서 안과의사로 근무하던 운여 김광업 선생을 만나 같이 유람하고, 떠나기 전날 기념품을 받았답니다. 낙랑고분 관재목으로 만든 '월전'이란 도장이었다죠. 6.25때 부산으로 피난내려와서 그만 잊어버렸다고....월전 회고록에서 본 기억이 나는군요. (강민경 보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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