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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2011년 호로고루성 발굴현장 깽판 사건 (4) 해체를 향한 조사단 의지를 꺾어야 했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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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궁금하잖아? 

저 현장 어찌 되었냐고?

결론하면 지금도 호로고루성 밑에서 고이 잠자고 있다. 물론 그네들 말대로 썩고 없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대로 묻어버렸다.

 
앞서 말한대로 애초 조사단인 토지박물관은 저걸 모조리 해체해서 밖으로 드러내고, 밑바닥 조사도 진행할 생각이었다. 

예서 조심할 대목은 이건 개발에 따른 이른바 구제발굴이 아니라 그것과는 상관없는 학술발굴이라는 사실이다. 

토지박물관이 사회공헌 차원에서 저와 같은 조사를 시도하고 실행한 점은 분명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저걸 대책없이 끄집어내는 일이 정당성을 담보할 수는 없다. 

모든 발굴조사는 그 완료 즈음, 혹은 중간 중대한 성과가 나왔을 적에 자문위원회라는 것을 개최하게 되는데, 요새는 이름이 바뀌어 학술검토회의인가 이런 이름으로 통용할 것이다. 

자문위는 말 그대로 자문에 지나지 않는다. 그 자문은 또 솔까 까발리자, 조사단 의지대로 거의 90% 이상 끌려간다. 조사단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뜻이다.

본래 자문위란 진짜로 자문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그런 자문을 빌미로 그런 사업을 추진하는 데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요식에 지나지 않는다.

저런 학술발굴은 구제발굴과는 전연 달라서, 조사단 의견이 중요하다. 조사단 하잔 대로 하지 뭐가 더 있겠는가?

조사단이 파서 까제끼겠다고 하면 자문위 그런 의견 받아서 그렇게 진행하면 그뿐이다. 

따라서 저걸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조사단을 압박해야 했다. 너희 그대로 했다가는 가만 안둔다는 협박, 그것이 필요했다. 그래서 가자마자 충배 전 과장이 말한 딱 그대로 했다. 깽판 쳤다.

그건 협박이었다. 해체했다가는 가만 안둔다는 협박 그것이었다. 

물론 그와 병행해 문화재청에도 이야기했다. 토지박물관에서 조사한 호로고루 성에서 이런저런 성과가 나왔는데, 이건 현장 보존해야 한다. 끄집어 내게 해서는 안 된다는 내 의지를 확고히 전달했다.

당시 발굴 관련 담당 국장이 누구였는지 모르지만, 그 국장 아니면 차장한테 확실히 인식시켰다. 

더 나아가 자문위원들 의견이 중요했다. 당시 자문위 명단을 봐야겠지만, 어차피 이 동네 자문위원이라 해봐야 다 거기서 거기라, 맨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다시 말해 내 의견을 확실히 관철할 만한 사람들이었다. 그네들한테도 확실히 내 의견을 전달했다. 까서는 안 된다! 

꼭 이런 내 공작 때문이었는지 단안은 못하겠지만, 결국 저 현장을 보존조치됐다. 나는 그런 결정 혹은 방향이 지금도 옳다고 믿는다.

혹 시간이 흘러 내 판단을 회오할 수도 있겠지만, 10년이 훨씬 더 지난 지금도 내 신념이 옳다는 것을 보면 현재까지는 내 판단을 믿는다. 

아마도 이러기는 했을 법한데, 내가 사라진 현장에서 몰래 저걸 뜯어 바닥은 확인했을 듯하다. 왜? 내가 아는 고고학도는 다 도굴꾼 지향이라, 그걸 확인안하고 못배기는 본성이 있다.

이건 발굴보고서를 확인하면 된다. 아직 확인을 못했다. 

아무튼 이것이 내가 이제야 김 전 과장한테 하는 혼네다. 

그렇다면 나는 왜 그렇게 해체에 반대했던가? 이젠 이 이야기를 좀 해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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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호로고루성 발굴현장 깽판 사건 (3) 어찌할 거냐 물었더니...

2011년 호로고루성 발굴현장 깽판 사건 (3) 어찌할 거냐 물었더니...

좋은 발굴성과 나오면 나 역시 조사단 못지 않게 흥분한다. 저런 장면 얼마나 멋진가? 하지만 생각보다 훨씬 내가 냉철한 데가 있어 저런 장면을 접하면 거의 자동적으로 이런 질문을 던진다.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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