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발굴성과 나오면 나 역시 조사단 못지 않게 흥분한다. 저런 장면 얼마나 멋진가?
하지만 생각보다 훨씬 내가 냉철한 데가 있어 저런 장면을 접하면 거의 자동적으로 이런 질문을 던진다.
저걸 어쩔래?
호로고루가 노출한 장면은 경악이라 할 만치 볼 만했으니 문제는 바로 그에 있었다. 무수한 세월 흐름에 목재들이 많이 상하기는 했지만, 내가 디뎌도 끄떡없을 정도로 튼튼했으며, 그런 목재가 비교적 아주 가지런한 상태로 마치 가마니 짜듯이 방향을 달리하며 아래 위로 포기진 상태였다.
조사 결과 노출됐으니 저걸 어찌할지는 이제 결단을 내려야 했다. 저 장면을 보고서 심광주와 통화하면서 나는 이 질문을 던졌다.
어찌할 거냐?
내가 그리 물었지만 나는 답이 정해져 있었다. 저건 그대로 두고 그대로 묻어버려야 한다. 혹자는 이미 한번 노출됐으니, 그리했다간 금새 삭아 없어지고 만다 하지만, 현장은 뻘흙이었다.
한데 대답은 뜻밖이었다. 해체에서 드러낸다는 것이었다.
잉? 다시 물었다.
드러내서 우짤라고?
그에 대한 책임조사연구원 심광주의 자세한 답변은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일단 드러낸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참에 저 구조도 더 확실히 보고, 또 바닥층 조사도 해 보고 이런 심산 아니었겠는가?
나 이런 일 증오한다. 매양 하는 말이지만 유적은 개발이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고고학도들의 궁금증이 망친다고 보는 사람이며 이 신념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일단 궁금해서 다 드러내고 저 무수한 나무들은? 당시 성남에 있는 토지박물관으로 옮기겠다고? 아니면 국립문화재연구소 같은 데나 목포 해양문화재연구소 같은 데 협조를 얻어 보존처리를 해야할 텐데 그 기관들에서 저걸 해준다?
그런 보장도 없고 무엇보다 저런 목곽 목구조 시설 발굴해서 제대로 보존처리된 꼴을 내가 보지 못했다.
파내면? 그냥 땔나무 둥구리 집합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분노 게이지 상승한 까닭은 바로 이때문이었다. 저런 물음 혹은 의문에 아무런 답변도 토지박물관은 없었다. 그래서 일단 현장에서 두고 보자 하는 심산으로 호로고루 발굴현장으로 향했다.
내가 반드시 그런 참사를 막고 말겠다 그런 불타는 투지를 불태우며 광화문에서 차를 몰아 현장으로 달렸다.
좀 일찍 가서 분위기를 잡아야 했다. 깽판을 쳐야 했다.
이건 내가 그에 앞서 문경 고모산성 목곽고에서 써먹은 바로 그 수법이었다.
그 깽판에 재수없게 김충배가 걸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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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호로고루성 발굴현장 깽판 사건 (2) 집수시설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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