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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2015년 충주 호암동 통나무 목관묘 현장에서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1.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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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발굴현장…통나무 목관 쓴 초기철기시대 지역수장
2015-01-19 14:43
사방 조망하는 곳에 묘자리·청동기 다량 부장





(충주=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전날 내린 눈이 채 녹지 않은 발굴현장은 온통 진흙이었다. 겨울바람이 거센 가운데 취재진과 취재차량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충주시가 전국체전 개최를 위해 종합스포츠타운 건설을 추진 중인 호암동 628-5 일원 발굴현장은 인근에 달천이라는 강이 흐르면서 형성한 충적지대가 드넓게 펼쳐졌다. 이런 곳에서 한국고고학계에서는 오랜만에 낭보를 들려줄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중원문화재연구원(원장 강경숙)이 지난해부터 이곳을 발굴조사한 결과 기원전 3세기 이래 기원전후에 이르는 이른바 초기철기시대 무덤 3곳 중 1호 고분이라고 명명한 무덤 한 곳에서만 세형동검 7자루를 포함해 각종 청동기 19점이 쏟아진 것이다.

문제의 고분은 공사 예정지 전체 구역 중에서도 주변으로 사방을 조망하는 가장 높고 좋은 자리, 해발 101~102m 지점에 있다.




19일 문화재청이 주최한 발굴설명회에는 한국청동기 연구 권위자인 이청규 영남대 문화인류학과 교수가 이번 발굴이 갖는 의미를 취재진에 설명했다.




그는 무엇보다 각종 청동기가 한꺼번에 무덤에 부장된 사실을 강조했다. 세형동검만 아니라 다뉴세문경(多紐細文鏡) 1점, 나무 자리를 끼우는 청동창인 청동투겁창 3점, 나무 자루를 묶어서 연결한 청동꺾창(銅戈) 1점, 청동도끼(銅斧) 1점, 청동새기개 4점, 청동끌(銅鑿) 2점이 나온 것이다.




당시로서는 최고급 신소재 물품에다가 무기류가 대부분인 이런 유물을 다량으로 무덤에 넣을 수 있는 사람이 당시 이 지역 수장일 수밖에 없다고 이 교수는 말했다. 이 무덤이 생긴 시기의 한반도는 신라·백제·가야가 등장하기 직전이다. 문헌기록을 보면 이 무렵 한반도 중남부에는 진국(辰國)이라는 국가가 있었다. 아마도 이 무덤 주인공은 진국을 구성한 소국(小國) 우두머리쯤 될 것이라는 추정이다.




나아가 이처럼 많은 초기철기시대 청동유물이 나온 데가 더러 있기는 하지만, 그 대부분이 정식 발굴조사가 아니라 공사 중에 우연히 발굴된 것이라 이들 유물이 어떤 유적에서 어떤 맥락으로 나왔는지를 파악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충주 호암동 유적은 고고학계의 이런 오랜 궁금증을 풀어준 것이다. 이 교수는 이 점이 특히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무덤 구조를 보면 2단으로 묘광(墓壙)을 깊이 파고 내려갔다. 이는 다른 지역 청동기를 출토하는 초기철기시대 최고 수장층 무덤과 비슷한 맥락을 이룬다. 이런 무덤구덩이를 보면 마치 동물을 잡기 위한 함정 비슷한 느낌을 준다.

조사 결과 2단 묘광 중 상단은 평면 형태가 타원형인 반면 아래쪽에 관을 안치하는 하단은 네 모서리 각을 죽인 말각형(抹角形) 장방형이었다. 조사단에 따르면 이처럼 2단으로 묘광을 굴착하는 초기철기시대 무덤으로는 화순 대곡리, 청주 가경동, 경주 조양동 5호묘 등지가 있다.




목관은 거의 다 부식한 까닭에 그것이 있던 흔적만 드러났다. 한데 그 모양을 보니 단면 U자형이었다. 통나무 한 면을 파서 그곳에 시신을 안치한 통나무 목관이 틀림없다는 것이 조사단 판단이다.

이런 통나무 목관은 창원 다호리와 화순 대곡리, 김해 봉황동, 밀양 교동, 경주 조양동, 대구 팔달동, 성주 예산리, 안동 가곡리, 완주 갈동, 화성 발안, 안성 만정리, 용인 농서리 등지에서 현재까지 발굴을 통해 알려졌다. 이로써 보면 초기철기시대 통나무 목관은 한반도 중남부에서 고루 분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번 충주 호암동 무덤 목관 내부에서는 부채 자루일 가능성이 있는 칠기 흔적이 발견됐다. 조사단은 이것이 다른 지역 초기철기시대 무덤에서 확인된 얼굴 가리개용 부채일 것으로 내다봤다.

이런 부채는 창원 다호리 유적 1호 목관묘에서 처음 확인된 이래 성주 예산리 유적 40호분과 김해시 봉황동 431번지 유적, 그리고 경북 경산시 압량면 유적 94호 목관묘에서 발견되고, 최근에는 경주 탑동 21-3·4번지 소규모 단독주택 예정지에서도 모습을 드러냈다.




나아가 이번 발굴조사 결과 다뉴세문경은 역시 다른 지역 초기철기시대 무덤 출토 그것과 마찬가지로 일부러 깨서 무덤에 넣은 이른바 파경(破鏡)으로 드러났다. 중국 전국시대 말기의 사상가인 순자는 죽은 자와 산 사람은 갈 길이 다르므로, 죽은 자를 위한 부장품은 일부러 깨뜨려 넣는다고 했다.

동경뿐만 아니라 청동도끼도 두 동강을 내서 묘광의 각기 다른 부위에 넣은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이번 발굴성과는 여러모로 화순 대곡리 유적 발굴성과와 대비된다. 통나무 목관을 쓴 대곡리는 세형동검 5점을 포함한 청동기 출토품이 15점이다.

다만, 대곡리에서는 아마도 종교의식에 사용했을 법한 청동방울이 있지만, 이번 호암동 유적에서는 그런 유물이 없다는 점이 다르다.

taeshik@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5/01/19 14:43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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