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은 재(灰)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불길을 휘젓는 것이다.”(장 조레스)
조레스의 이름을 듣는 것이 실로 몇 십년만이던가...그가 저런 말을 했는지도 몰랐는데, 베를린에 위치한 지금의 KPM은 저 말을 모토로 삼고 있었다.
KPM은 마이센(Meissen)의 명성에 가려 서양도자사에 그 이름이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시작은 못지 않게 오래 되었으며 마이센이 세계시장의 맹주로 중국, 일본과 교류하는 동안 KPM은 왕실도자기 제작소로서
새로운 기술을 수없이 실험했고 수 세기 동안 여러 디자이너를 초빙하여 모든 예술사조를 구현하면서 나름 정상을 유지해 온 것 같다.
프리드리히 거리에서 Unter den Linden 쪽으로 걷다 보면
베를린 고급 쇼핑가를 지나게 된다.
그 중간 즈음에 제법 규모가 큰 왕실도자기 제작소 매장을 볼 수 있다. 베를린 시내에 매장이 개설된 것은 1855년부터이다.
제작소는 1763년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2세 때 베를린 시내 포츠담 광장 부근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포츠담 광장에 프러시안 의회를 건설하게 되면서
왕실 사냥터였던(지금은 최대의 공원) 베를린 티어가르텐 Tiergarten 지구에 새로운 공장을 설립했다.
새 공장은 1868년부터 1872년 사이에 지어졌고 지금도 프리드리히슈트라세 역에서 몇 정거장 지나 티어가르텐 역에 내리면 공장과 전시관, 쇼룸 등을 볼 수 있다.
베를린 시를 관통하는 슈프레 강변에 위치하여 공업용수와 원료와 완성품 운송에 편리했던 곳이다.
내가 KPM 근대화 과정에 대한 내용을 처음 접한 것은 몇 년전 읽은 메이지 사절단의 미국유럽 순방기인 『미구회람실기(米歐回覽實記)』를 통해서였다.
당시 ‘움직이는 메이지 정부’라고 불리던 이와쿠라 사절단은
1873년 KPM 공장증축 이듬해에 이 새로운 공장을 방문하게 된다.
기록을 보면 세브르를 능가하는 규모에 근대식 공업시설과 연구실을 갖추어 새로운 전기를 꾀하고 있었던 독일 요업의 실체를 마주하면서 놀라게 된다.
이미 유럽 유수 제조장들을 순회한 눈으로 본 베를린 공장의 도자기는 최상품은 아니었다.
하지만 새로운 설비에서 고화도로 번조한 도자기 강도는 이미 유럽에서도 명성을 얻고 있었다.
2006년 민영화해 지금은 외르크 폴트만 Jörg Woltmann 이라는
은행가 소유가 되었지만 시내 중심가에 대형 매장과 작은 공방을 재현하면서까지 역사를 보여주고자 하는 노력은 부럽기도 했다.
***
이화여대박물관장이자 이 대학 미술사 담당 교수로 도자사 전공인 장남원 선생이 이번 여름 그쪽 어느 기관 초청으로 독일을 한 달간 방문하며 견문한 이야기다.
문화재 업계선 참고할 만한 내용이 많아 전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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