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베티나(Bettina von Arnim)! 어제 괴테와 함께 산책하다가 돌아오는 길에 황실 행렬이 지나갔다오.
우리는 멀리서 그 행렬이 다가오는 것을 보았는데, 괴테는 내 곁에서 떠나 길가에 비켜 서지 뭐겠소.
(중략) 나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외투 단추를 채우고 팔짱을 끼고 법석대는 군중 속으로 들어갔소.
(중략) 황후께서 먼저 내게 인사를 건넸고 그 다음에야 나는 루돌프 대공을 향해 모자를 벗었소. 그들은 다 나를 알아보았소.
행렬이 괴테 앞을 지날 때 그가 어떻게 하나 굉장히 궁금했지. 글쎄 그는 길가에서 모자를 손에 들고 황송한 듯 몸을 굽히고 서 있지 않겠소. (중략)
황후는 괴테와 함께 연주할 부분을 연습했어요. 그와 대공은 내가 직접 연주하기 원했지만 거절했소. 그들은 중국 도자기에 미쳐 이성을 잃었다오. 이런 어리석은 자들을 위해 연주하지 않을거요”
베토벤이 베티나에게 보냈다는 편지 일부다.
자존심이 강하고 입바른 소리 잘하던 베토벤 눈에는 중국도자기에 정신을 빼앗긴 왕실과 귀족들, 그리고 그들에게 머리를 숙이던 괴테가 마뜩치 않았던 것이다.
편지 배경은 1811년 청력을 거의 잃어가던 때 휴양차 떠난 오스트리아 제국령 체코 공화국 테플리체 온천 지역으로 추정되고,
그곳에서 괴테를 만나 벌어진 상당히 유명한 에피소드다. 훗날
칼 롤링이라는 화가가 그림으로 남기기도 했다.
19세기 사례지만 중국도자기에 이성을 잃은 유럽 왕실과 상류층의 몰입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샤를텐부르크 궁전 도자기 방을 보면 짐작이 간다.
17세기 이후 가속화한 중국이나 일본도자기에 대한 수집은
건축공간 내부 장식으로 형식화해 가고 있었다.
바로 그 증거 중 하나가 샤를로텐부르크 성 본궁에 있는 <도자기의 방>이다.
https://www.spsg.de/forschung-sammlungen/sammlungen/
궁전은 브란덴부르크 제후였던 프리드리히 1세가 1695년 아내 샬롯 소피를 위해 지은 여름 별장으로, 1701년에 프로이센 왕국을 건설하면서 프로이센 첫 왕후가 된 샬롯 소피의 명에 따라 증축되었고 1713년에 완공되었다.
정원을 품은 벨베데레(Belvedere)와 호수, 사냥터와.. 슈프레 강으로 연결되는 물길.. 그 규모가 상당하다.
궁전 전체를 볼 시간은 부족했으나 대체로 궁중생활사를 보여주는 여느 유럽 궁전들과 흡사하다.
<도자기의 방> 은 이른바 'Spiegel Cabinet' 즉, 거울을 붙여 만든 장식장으로 도자기 수가 몇 배 더 많아보이는 효과를 준다.
그 외에도 모든 방에는 중국, 일본 도자기들로 채워져 중국 강서, 복건 일대의 청화백자와 백자..그리고 일본 아리타 지역
수출자기로 충만했으며, 그에 더해 델프트자기, 그리고 KPM 도자기들도 구석구석 놓여 있었다.
자본이 뒷받침된 사람들의 몰입형 사치와 수집, 과시...수요의 폭증..결국, 이런 임계점에 도달해야 기술과 조형의 최대치를 이끌어낼 동력을 얻게된다.
소박한 마음으로 무심하게 제한된 재료로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적어도 공예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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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베를린 풍경(10) 베를린 도이치 오페라 Deutsche Oper Berlin] by 장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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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박물관장이자 이 대학 미술사 담당 교수로 도자사 전공인 장남원 선생이 이번 여름 그쪽 어느 기관 초청으로 독일을 한 달간 방문하며 견문한 이야기다.
문화재 업계선 참고할 만한 내용이 많아 전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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