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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2022 부여 부소산성 군창지 와적기단 시굴성과(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자문위 자료 원본 첨부

by taeshik.kim 2022.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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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7 부여 부소산성에서 왕궁급 건물 추정 대형 와적기단건물지 확인(붙임).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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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소산성서 기와로 쌓아 만든 건물터 확인…"왕궁급 건물 추정"
김예나 / 2022-11-07 10:02:07
백제 대표 사찰·핵심 유적 등서 확인된 형태…"보존 잘 돼 있어"

부소산성서 기와로 쌓아 만든 건물터 확인…"왕궁급 건물 추정"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백제 사비 도읍기(538∼660)에 중심 산성이었던 충남 부여 부소산성 일대에서 기와를 쌓아 만든 기단을 갖춘 건물터가 확인됐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부여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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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문화 구명에 특화한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사비시대 백제의 배후산성으로 지목하는 부소산성 내부를 파제낀 모양이라, 이 구역에 대한 조사는 지난 세기에 간헐로 있었으니, 이번에는 본격으로다 파제낄 모양으로 그 워밍업을 했다는데, 그 워밍업을 고고학 조사에서는 시굴조사라 하며, 이를 토대로 해서 본발굴이 들어간다.

한데 일명 트렌치 조사라 하는 이 시굴조사는 조사지역으로 정한 구역 문화재 분포양상을 보고자 대체로 길쭉이 모양으로 구댕이를 푹푹 파제껴서 안에 뭐가 어떤 모양으로 있나를 째보는 것이라, 매장법상 이런 시굴은 조사대상 면적 중 10% 이내로 제한한다. 넘어가면? 재피간다.

이 부소산성은 부여를 가본 사람은 잘 알겠지만 북서쪽으로 금강이 감돌아 흐르는 부여 읍내 기준 정중앙 북쪽에 정좌하는 코딱지만한 산이면서, 그 한쪽 편 금강변 낭떠러지에 낙화암 퐁당이 있다. 백제시대 이래 성곽 흔적은 잘 드러나는 편은 아니어서 본래 이러했겠는가? 천년이 넘는 장구한 세월 깎아내림 내리찍기를 당해 편편넓적하게 변했을 뿐이다.

그 내부에는 제법 넓은 평탄 대지가 있어 누가 봐도 아 이런 데는 그 옛날에 무슨 큰 건물이 있었겠다 싶고 실제 과거에 발굴을 찔끔찔끔해서 백제와 통일신라시대 건물 흔적을 찾아내기도 했더랬다. 본래 이런 산성에는 군창軍倉이라 해서 비상시 식량 보급 창고 같은 걸 설치하는 일이 상례다.

다만 이 부소산성은 높이도 야트막하고, 사비왕궁 배후라서 왕궁에 버금하는 시설들이 있었을 것임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저 보도자료 토대가 된 부여연구소 보도자료가 아래라, 음미해 주기 바란다. 자문위원회 자료를 요청해 놓은 상태인데 아직 입수한 상태는 아니므로, 추후 자세한 소식을 보태고저 한다.

발굴성과는 이른바 언론계 용어로 야마를 잡을 수밖에 없는데, 이번 시굴에서 와적기단瓦積基壇이라 해서 백제시대 건물 흔적을 찾은 모양이라 그걸 내세웠다. 와적 기단이란 보나마나 왜놈들 용어를 그대로 빌려다 놓은 것으로, 글자 그대로 기와무지를 깔아 건물 기초로 활용한 것으로, 현재까지 발굴성과로 보면 삼국 중에서도 유독 백제 쪽에서, 그것도 대체로 사비시대에 집중으로 확인한다.

이걸 보면 와적 기단 흔적이 확인된 곳이 군창지軍倉址라 해서 부소산성 내부 구역 중에서도 가장 넓은 대지가 있는 지점임을 안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소장 임승경)는 부여 부소산성 군창지 주변 시·발굴조사에서 백제 사비기 대형 와적기단건물지 2동을 확인하였다.

* 군창지(軍倉址) : 군대에서 사용할 식량을 비축했던 창고 터
* 기단(基壇) : 건축물의 터를 반듯하게 다듬은 다음 터보다 한 층 높게 쌓은 단
* 와적기단(瓦積基壇) : 기와를 쌓아 만든 기단

부여 부소산성은 백제 사비도성의 북쪽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는 산성으로 사비도읍기 왕성, 후원, 배후산성 등의 역할을 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1981년부터 2002년까지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당시 국립문화재연구소)과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조사를 진행했으며, 당시 조사에서는 백제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성벽과 성내시설물(주거지, 저장구덩이, 우물지 등)이 확인된 바 있다.

* 후원(後苑): 대궐 안에 있는 동산이나 정원

이번 조사는 향후 중·장기적으로 진행될 부소산성의 성내 평탄지 핵심 건물군을 확인하기 위한 사전조사로, 부소산성 남동쪽의 군창지부터 남서쪽의 반월루 주변까지 평탄지 전체 지역에 대한 조사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추진되었다.

조사 결과, 부소산성에서 가장 넓은 평탄지가 존재하는 군창지 동남쪽에서 대형 와적기단건물지 2동이 확인되었다. 와적기단건물지는 백제의 대표 사찰 유적인 정림사지, 왕흥사지, 군수리사지 등에서 주로 확인되며, 사비기 후기 왕궁지로 거론되는 부여 관북리 유적, 익산 왕궁리 유적 등 백제 왕도의 핵심유적에서 주로 확인된 건물지 형태이다.

이런 걸 트렌치 조사라 한다. 시굴조사에서 시도하는 기법으로 길쭉이 모양으로 땅을 파서 땅 속에 어떤 놈들이 어케 있는가를 확인하는 수준이다.


특히 이번에 조사된 부소산성의 와적기단건물지는 동서길이가 각각 16m 이상인 북쪽 건물과 14m 이상인 남쪽 건물지 두 동이 평행하게 배치된 것을 확인하였다. 또한 기단이 최대 20단 가까이 남아있는 것으로 확인되어 지금까지 알려진 와적기단건물지의 기단이 평균 5~6단 남아있는 것과 비교하면 수평으로 쌓은 와적기단 중 가장 잘 보존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부소산성 군창지 일대는 1993년 조사에서 ‘대당大唐’명 와당, 중국제 자기 등 중요 유물이 출토되었고, 이번 조사에서 대형 와적기단건물지가 일정 배치를 가지는 점, 그리고 와적기단을 다른 재료를 거의 섞지 않고 정선된 기와로 축조한 점 등을 고려할 때 백제 왕궁급 건물의 모습을 추론해 볼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로 판단된다.

예서 문제는 저 초석이라는 기둥받침돌과 그것을 빙둘러 담장처럼 치되 기단 마감 처리를 한 이른바 와적시설이 동시대에 존재한 것인가가 되겠다. 다시 말해 저런 기와무지로 대지를 다진 저 위에 기둥을 올린 건물이 들어섰는가 아닌가는 나중에 결정될 것이다. 쏵 다 파 봐야 안다.




이번 조사에서는 매장문화재 유존지역 면적의 10% 내외 범위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해야 하는 시굴조사의 특성상 건물지의 전체 모습과 규모를 자세하게 확인할 수는 없었으나 향후 본격적인 발굴조사를 통해 건물지의 배치나 전체 규모, 구조 등을 명확하게 규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문화재청 백제왕도핵심유적보존․관리사업추진단, 부여군과 적극적인 협력 체계를 구축하여 부여 부소산성을 비롯한 백제왕도 핵심유적에 대한 조사·연구를 계속 추진할 예정이다. 아울러 조사 과정에서 도출되는 성과를 다양한 방법으로 국민들에게 공개할 계획이다. 더 자세한 사항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041-830-5640)로 문의하면 된다.

저 기와무지가 묘해서 언뜻 힘을 받을까 싶기는 한데, 그런대로 잘 버팅기는 듯하더라. 보통 위에서 찍어누르면 기와는 다 깨지기 마련인데, 신기하게도 백제 건물에서 보이는 저 와적은 기와가 멀쩡한 모습을 보인다. 나는 좀 다른 용도가 있지 않나 하는 의심도 해 본다.



***

이 글을 탈초하는 중에 부여연구소 자문위 자료가 입수됐으므로 도판으로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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