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저 무덤방 바닥에 그릇 쪼가리들을 동강내서 깐 일은 우연인가? 다시 말해 마침 적당한 건축 자재가 없어 옆에 보이는 휴대용 아궁이를 비롯한 부엌 가구 세트들을 깨뜨려서 바닥에다 잔뜩 깔아 시신 자리로 썼을까?
이 물음에 우리는 아무래도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 기왕 바닥에 깔 것이라면 저런 질그릇 쪼가리 아니어도 얼마든 대체제가 있다.
자갈이나 깬돌을 깔아도 된다. 실제 이런 식으로 깔아서 관 받침으로 활용한 데는 많다.
나아가 그렇게 깨뜨려 넣은 것들이 공교롭게도 일정한 흐름을 지닌다?
다시 말해 저 조각들을 조사단이 다시 찡가 맞춰 봤더니 아궁이를 비롯해 부엌 가재도구 일색이라는 점은 아무래도 의도가 개입했다 보지 않을 수 없다.
같은 질그릇이라 해도 이 또한 얼마든 대체제가 있을 텐데 하필 부엌 가재도구였으리오?
저 사진을 보면 대옹 급 비스무리한 축에 속하는 큰 항아리도 있는데 저건 왜 가만 두었을까?
이렇게 복원한 세트를 딱 보면, 첫째 저것들이 본래 멀쩡하다 가정했을 때 실제 아궁이랑 시루로 사용했을까?
난 이게 몹시도 궁금하기 짝이 없다. 저 상태로 그대로 쓰기엔 아무래도 힘들지 않을까 싶거니와, 설혹 실용으로 썼다 해도 대세엔 지장이 없다.
이 경우엔 중요한 대목은 오직 저것들을 일부러 깨뜨려 바닥재로 썼다는 오직 그것만이 중요한 시점이니깐.
이때 중요한 것이 바로 훼기요 명기明器다. 저것은 명백히 훼기이며, 그런 까닭에 저 질그릇 도구류는 명백히 명기다.
명기로 쓰는 그릇은 깨뜨리기는 하지만, 보통은 일부 부분만 깨뜨린다.
항아리 같은 질그릇은 주둥이를 톡톡 따는 일이 많고, 유공소호有空小壺라는 친구는 일부러 몸통에다 구멍을 내 버리며, 삼족기니 해서 받침이 있는 것들은 그 받침만 똑 따버린다.
동경은 보통 몇 조각을 내는 전면 파쇄 방식을 선택하거나, 아니면 이른바 방제경이라 해서 미니어처를 만들어 넣는다.
순장이 사라지면서는 사람이나 말도 미니어처로 제작해 실용품 희생이라는 난점을 피해나가기도 한다.
또 뚜껑이 있는 그릇은 뚜껑 혹은 몸체만 넣기도 하니, 이건 본래 뚜껑과 몸체가 세트인 것을 그것을 분리해 버림으로써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의미를 담는다.
한데 이 읍호리는 아예 세트 자체를 다 완전 파쇄하고는 그에서 나온 쪼가리들을 마치 메밀 씨 뿌리듯이 바닥에 좍 깔아버렸다.
완전 파쇄라는 점에서 동경을 파쇄하는 방식과 엇비슷하기는 하지만, 이건 그렇게 파쇄한 것을 무덤을 구성하는 건축 자재로 썼다는 점에서 이례성이 있다 하겠지만, 훼기라는 특성에서는 같다.
훼기란 무엇인가?
또 이야기하지만 간단히 말해 이승과 저승은 영역이 다름을 표시하는 상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 다름을 표시하고자 하는 표상이 바로 훼기다.
왜 훼기하는지도 모르고, 헛소리만 찍찍 늘어놓은 고고학도들이 한심하기 짝이 없어 몇 마디 긁적거려 둔다.
지가 모르는 것을 남들도 모르는 줄로 알며, 지가 모르는 것을 남들도 모르니 우리는 모두 모른다는 말로 그 책임을 면탈하려는 그 얍쌉함을 쥐어박고 싶다.
일단 읍호리 이야기를 마무리하기 전에 저 세트가 실생활에서 사용한 것이라면, 장송 의식에 쓰고서 그것을 저런 방식으로 매장한 것으로 봐야 한다.
장송에 쓴 물품을 저런 방식으로 처리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 비일비재함을 오직 고고학도들만 모르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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