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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머리를 남쪽으로 두는 빈소에서의 시신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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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습은 실은 빈전의 그것이다.



주자가례朱子家禮 권4는 흉례凶禮라 해서 죽음에 따른 장송葬送 절차를 규정하거니와, 그 절차 중 갓 죽은 이를 관에 안치하기 전에 해야 할 일로 다음과 같이 규정하니


執事者設幃及牀, 遷尸掘坎.

(장례를 주관하는) 집사는 (죽은 사람 시신이 있는 방 혹은 시신 앞에) 휘장을 치고 시신을 (그 휘장 뒤로) 옮기고선 구덩이를 판다. 



이에서 말하는 구덩이는 아직 빈소도 차리지 않은 상태이니 실제 시신을 묻을 구덩이를 말하는 것은 아닌 듯하거니와

빈전을 설치하는 그곳에 마련하는 구덩이를 말할 것이다.

이건 본론에서 벗어나므로 여기서는 치지도외키로 하고
이 구절에는 다음과 같은 주자 보주補注가 있으니 


執事者以幃幛臥內, 侍者設牀於尸牀前, 縱置之, 施簀去薦, 設席枕, 遷尸其上, 南首, 覆以衾, 掘坎於屏處潔地. 

집사는 휘장으로 (시신이 있는 방) 안쪽을 가리며, (집사를 돕는) 시자는 (시신을 놓는 상인) 시상尸牀 앞에 상을 놓되, 가고로 그것을 설치한다. 대자리는 걷고 보통 자리는 걷으며 자리와 베개를 놓는다, (그러고선) 시신을 시상 위로 옮기는데 머리는 남쪽으로 두며 이불로 덮는다.  구덩이는 가린 곳이면서 깨끗한 곳에다가 판다. 



이것이 빈전의 모습이다.


이에서 우리가 주시할 대목은 빈소에 모시는 시신은 머리를 남쪽으로 둔다는 사실이다. 

이는 생물학적으로 죽었지만, 장송이 완성되지 않았으므로, 여전히 산 사람으로 간주한 까닭이다.

이것이 무덤에 묻히는 순간 정반대가 되어 시신은 머리를 북쪽으로 두게 된다. 

이렇게 동아시아 장송은 이승의 삶과 저승의 삶은 서로를 투사하면서도 그것이 차이가 있음을 밝히고자 정반대하는 모습을 연출한 것이다.

이른바 명기明器 역시 마찬가지라, 죽은 사람이 산 사람 그릇을 그대로 사용할 수는 없다 해서 그것과 다른 모습을 연출하고자 일부를 훼손하거나 아니면 아예 조각조각 동강내어 버리게 된다. 이를 훼기毁器라 한다.

무령왕릉이 왜 빈전 상태에서 그대로 무덤 문을 닫은 형태인지 이젠 알겠는가?

 

#두침 #머리방향 #빈소 #빈전 #무령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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