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북성 석가장 동원 고성东垣古城 유적 발굴 시작
편집자 주: 이 소식은 아직 발굴 초기 단계라 이른바 번쩍할 만한 대목이 드물지만, 양한 이래 위진남북조시대까지 지방행정 군군郡國 행정을 공부하는 사람들한테는 반색할 만한 뉴스다.
중국 역사 고고학은 그간 너무나 중앙정부 중심이라, 서안이니 낙양과 같은 중앙정부 궁궐 유적만 디립다 파고, 그 권력이 말단에 미치는 현지, 혹은 지방은 큰 제후국 중심 주로 무덤 파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시피 했다.
그런 중국 역사고고학이 우리로 치면 읍성 정도를 마침내 파기 시작했다는 징후라,
대상지는 하북성 석가장에 소재하는 동원 고성东垣古城이라는 곳이라 본문에서도 언급되겠지만
이곳은 전국시대에는 중산국中山國이라는 존재감 그리 크지는 않으나 무시하지 못할 제후국 소속이었고, 동한시대에는 진정국眞定國이라는 작은 제후국 국도였다.
초보 탐색 결과 동한시대 흔적이 주축으로 나온 듯하지만, 서한시대 흔적도 보이기 시작했고 전국시대 담벼락도 나온 모양이다.
특히나 이곳이 동한 시대 진정국 국도였음을 명확히 보여주는 명문 와당까지 이번에 수습됐다.
여러 모로 향후 발굴 과정을 지켜볼 만한 데라 자세히 소개한다.
양한 후국 궁전 건축 유적 공개
하북성 석가장 동원 고성 유적 2024년도 고고학 작업 성과
동원 고성 유적[东垣古城遗址]은 하북성 석가장시石家庄市 북쪽 교외 호타하滹沱河 남안에 위치하며, 전국시대부터 북조시대까지 도시 유적이다.
성터는 평면이 불규칙한 사각형이며, 면적은 약 2.76제곱킬로미터다.
동원東垣은 전국 시대 중산국中山国 4읍 중 하나였으며, 진秦나라 때는 항산군恒山郡 행정 중추가 되었다.
양한两汉 시대에는 여러 차례 군국 치소로 사용되었다. 위진 시대까지 지역 중심도시 지위를 유지했다.
북위 시대 치소治所가 호타하 이북 안락루安乐垒로 이전한 것은 결국 현재 정정 고성正定古城의 위치에서 지금까지 안정되었으며, 동원 고성은 정정 고성의 전신으로 볼 수 있다.
2013년 동원 고성 유적은 제7차 전국 중점 문물 보호 단위로 선정되었다.
하북성 문물고고연구원은 여러 차례 이 성터에 대한 작업을 진행했다.
2023년 전면적인 고고학 탐사는 동원 고성 유적의 지속적인 고고학 작업 서막을 열었다.
고고학 탐사를 통해 동원 고성 성곽城垣, 성호城壕, 성문城門, 수계, 도로망 등 프레임워크 흔적과 대형 건축물 기지, 수공업 작업장 지역, 주거지 등 기능 구역 배치를 전면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국가문물국 승인을 받아, 하북성 문물고고연구원은 초기 탐사 성과를 바탕으로 2024년에 유적 2호 대형 다지기 건축 기초군夯土建筑基址群에 대한 중점 고고학 발굴과 추가 탐사를 진행했으니, 발굴 면적은 1200제곱미터다.
시스템은 양한 시대의 대형 궁전 건축 기초와 그 부속 시설을 폭로하고, 탐사를 통해 궁전 지역 외곽 담장을 발견하여 일련의 중요한 성과를 거두었다.
올해는 제2호 다지기 건축기지군 내 A구역 판축 대지 발굴에 중점을 두었으니, 이를 통해 이곳이 대규모 궁전 건축기지임을 명확히 했다.
A구역 다진 흙은 다진 흙 기초 군 북부에 위치하며, 다진 흙 기초 군 내에서 규모가 가장 큰 곳이다.
동서 길이는 136미터, 남북 너비는 46미터, 다진 흙 두께는 약 1.5미터이며, 공개된 궁전 건축 유물은 두 단계로 나눌 수 있다.
1기 궁궐 건축 : 제1기 궁궐 건축은 2기에 겹쳐져 부분적으로만 노출됐다.
현재까지 산수散水와 산수 외측 벽돌로 쌓은 평면만 발견되었으며, 둘 다 부분적으로 제2기 궁전 건축에 사용된 흔적이 있다.
제1기 궁궐 건축 사용 시기가 제2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나타내며, 서한 시대에 이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산수는 사각형이며, 한 변 길이는 1.1미터다. 세로로 벽돌을 쌓아 테두리를 형성하고, 테두리 내부는 깨진 기와를 세로로 쌓아 여러 개 기하학적 구역을 형성하며, 각 구역에는 깨진 기와를 세로로 채워 기하학적 장식 패턴을 형성한다.
일부 산수는 제2기 궁전 산수와 전랑에 의해 겹겹이 쌓여 있으며, 건물 동쪽 가장자리 제1기 산수는 제2기 산수와 연결되어 있어 산수가 계속 사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외부 벽돌 평면은 수직 벽돌로 둘러싸여 있고 내부는 벽돌로 평평하다.
벽돌조 평면은 2기 산수면과 동일하고 2기 산수면과 테두리가 깨져 공유되는 현상이 있어 2기까지 기능이 이어져 테라스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벽돌 평면 북쪽에 부분적으로 속이 빈 벽돌空心砖로 쌓은 영역이 있다.
A구역 다지기 기초 남동쪽 발굴 구역에서도 제1기 궁전 건축의 산수 축조 방식과 동일한 산수 유적이 발견되었으며, 이는 제2기 산수와 연결되어 같은 시기의 유적으로 보이며 제2기 산수에 의해 계속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제2기 궁전 건축 : 제2기 궁전 건축은 비교적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으며, 현재 일부 면적이 64미터로 정리되어 본 건물과 부속 건물이 함께 구성된 전당 건축 그룹에 속한다.
궁전 건물 바닥에는 두께 0.3~0.7m 붉은 벽돌과 기와가 쌓여 있어, 해당 건물이 화재로 소실되었음을 나타낸다.
출토된 건축 자재 및 층위 관계에 따르면, 제2기 궁궐 건축 주요 사용 시기는 동한으로 판단된다.
이 건물은 기초 본체, 현관, 부속 건물, 복도, 테라스 및 산수로 구성되어 있다.
대지 기초는 주된 체계가 다진 상태이며, 현재 서쪽 구간 평면은 외부 산수보다 0.75미터 높고, 동쪽 구간 표면은 외부 산수 수준과 거의 동일하다.
바닥 가장자리를 진흙벽돌로 감싸고 입면에 풀을 발라 진흙을 섞고 가장 바깥층에 백회를 바른다.
기단 가장자리에는 벽기둥 흔적도 발견됐다.
전랑前廊은 대지 남쪽에 위치하며, 길이는 12미터, 잔폭은 2.2미터다. 전랑 평면은 산수보다 0.35미터 높다.
양쪽 끝에는 만도慢道가 연결되어 있으며, 전랑 바닥에는 사각 벽돌을 깔았으니, 이 사각 벽돌에는 모방 마름모 무늬 벽돌模印菱花纹砖과 문양이 없는 소면 벽돌素面砖 두 종류가 있다.
부속 건물과 복도는 대지 남쪽에 위치하며, 전체적으로 곡자형曲尺形이다.
부속 건물 북서쪽은 슬로프웨이慢道와 전랑으로 연결되고 동쪽은 복도甬道로 연결된다.
그 중 부속 건물은 사각형으로 동서 너비 4.6미터, 남북 길이 5미터, 주초 직경 0.45미터다.
복도 너비는 2.7미터이며 사각 벽돌로 포장했다.
산수散水는 건물 남쪽 가장자리에 위치하며, 부속 건물을 경계로 동서로 나눌 수 있다.
벽돌 쌓는 방식은 같지만 크기가 다르다.
동쪽 부분 산수 유적은 길이 1.2미터이고, 서쪽 부분 산수 유적은 길이 1.5미터다.
각 산수는 수직벽돌로 가장자리를 만들고 내부는 수직벽돌로 대각선으로 4개 구역을 형성하고 그 구역은 기와로 수직벽돌로 채웠다.
동쪽 지역에는 첫 번째 단계의 산수가 부분적으로 사용된다.
테라스露台는 산수 바깥쪽에 위치하며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부속건물 서쪽에 위치한 부분은 제1기 벽돌포장 평면을 그대로 사용했다.
부속건물 동쪽 부분에 네모난 벽돌을 동서 길이 19m로 쌓았다.
남쪽 가장자리가 파괴되어 너비가 불분명하다.
배수 시스템 흔적은 A구역 다지기 기초 남동쪽 남북 방향 발굴 구역에 위치하며, 이 발굴 구역 내 유적은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그중 첫 번째 흔적은 산수이니, 재료와 벽돌 쌓는 방식은 첫 번째 궁전 건축 산수와 유사하다.
두 번째 및 세 번째 흔적은 모두 배수 시스템이다.
2단계 배수 시스템은 국부적인 부분만 드러냈고, 남북 방향으로 하나의 배수로가 발견되어 1단계 산수를 깨고 3단계 배수 시스템에 의해 파괴되었다.
내부 너비는 약 0.55m이고 건축은 깔끔하다.
제3기 배수시스템은 복잡한 벽돌 배수관망排水管网 시스템으로 북쪽 노출 부분은 북에서 남으로 향하는 주수로主水道, 그 중 서쪽은 북서에서 남동으로 가는 지도로 합류한다.
남쪽 노출 부분은 남에서 북으로 향하는 주수로로, 양자가 합류한 후 동쪽으로 주수로로 배출되며, 3개 주수로가 만나는 지점에 벽돌로 쌓은 사각형 침전지沉淀池가 존재한다.
배수시스템 주수로 부분은 권정券顶, 내부 폭은 0.55m 정도로 일부 권정의 보수 징후가 있다.
분기 부분은 평평한 지붕이며 내부 너비는 약 0.18미터다.
제3기 배수 시스템 북쪽이 제1, 2기 궁전 건축 기지를 깨고 북쪽으로 확장되었다.
출토된 유물과 층위 관계를 바탕으로 판단할 때, 제3기 배수 시스템은 위진 시기까지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제3기 배수 시스템은 형태가 복잡하고 규모가 크지만, 이와 관련된 건축 유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제2기 궁전 건축물을 깨고 북쪽으로 계속 확장한 점을 고려할 때, A구역 흙 다짐층 북쪽에 그와 관련된 건축물이 남아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지역 지하에는 근대적인 도랑과 많은 현대적 쓰레기가 쌓여 있어 제한된 탐사에서 관련 징후가 발견되지 않았다.
올해는 2호 다지기 건축 기초군(즉, 궁전 지역)에 대한 추가 고고학 탐사를 진행하여 궁전 지역의 건축 배치에 대해 더 포괄적인 이해를 얻었다.
벽체 흔적은 궁전 지역 남서쪽, 남쪽, 동쪽에서 발견되었다.
현재 탐사된 벽은 A-D 구역 네 개 다진 흙을 반포위 형태로 둘러싸고 있다.
담장 내 B구역 다지기 남쪽에서 남북 방향 도로 두 개가 남아 있는 것도 발견되었다.
두 도로와 남부 담장 모두 교차하며, 서쪽 담장에서도 한 곳의 틈이 발견되었다.
앞 세 지점에서 출입구가 존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A구역 다지기 남동쪽에서 새로운 다지기 유적이 발견되었으며, 번호는 D구역 다지기다.
그 위치는 C구역 다지기 흔적과 대칭이지만, 모양이 그다지 불규칙하지 않고 규모가 D구역 다지기보다 작다.
올해 D구역 다진 흙이 있는 지역에서는 산수 유적이 정리되었으며, 그 형태는 A구역 다진 흙에서 발견된 첫 번째 산수와 유사하다.
이는 D구역 다진 흙이 건축 기초여야 함을 나타낸다.
현재 탐사 상황을 보면, 발견된 벽은 A-D 구역의 네 그룹 흙 다짐과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E 구역 흙 다짐은 흙 다짐 벽에서 제외되었으며, 남부 벽은 동서 양측으로 확장되는 징후가 있다.
따라서 다른 벽이 존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현재 발견된 벽도 주벽과 격벽의 구분이 있을 수 있다.
벽 시스템이 회랑식인지 단순한 다지기 벽인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으며, A-D 구역 네 그룹의 다지기와의 연대 관계도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인 상황은 추가 해부 및 탐사 작업이 필요하다.
발굴 및 출토된 유물은 주로 건축 부재이며, 그 외에도 소량의 토기와 구리 부재가 발견되었다.
출토된 건축 부재 중 통기와筒瓦와 판기와板瓦가 비교적 큰 비중을 차지한다.
출토 와당은 종류가 다양하다. 문양은 동한의 전형적인 대유정 운문 조합大乳钉云纹组合이 주를 이룬다. 또한, 마름모 무늬가 있는 소량의 유정 운문 와당乳钉云纹瓦当이 있으며, 그 형태 변천은 위진 단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기와 중에는 진정장락眞定長樂 장락부귀長樂富貴 등의 글자도 들어 있다.
바닥 타일铺地砖은 주로 정사각형 타일과 막대형 타일로 구성되며, 사각 타일 장식은 소면과 마름모 무늬 두 가지 유형을 포함한다.
주목할 점은 특제 벽돌의 발견으로, 궁실과 서수를 주제로 한 무늬가 있는 속이 빈 벽돌뿐만 아니라 표면에 북못이 박힌 이형 벽돌, 모서리가 절삭 처리된 사다리꼴 대형 벽돌 등이 포함되니, 이는 건축의 다양한 위치에 사용될 가능성이 있음을 보인다.
정리한다.
2024년도에 동원 고성 유적 2호 다지기 건축 기초군의 시대, 배치, 성격 및 동원 고성 유적의 도시 배치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었다.
궁궐 구역 흔적의 시대적 틀을 세분화했다.
궁전 지역에서 발견된 유물은 한대에 집중되며, 일부는 늦게 위진에 이르렀고, 흙을 다진 기초가 깨진 단위에서는 소량의 전국시대 유물도 발견되었다.
A구역 흙 다짐에 대해 말하자면, 제2기 궁궐 건축 소각층에서 동한 건축 자재가 출토되어, 제2기 궁궐 건축의 주요 사용 시기는 동한임을 유추할 수 있으며, 제1기 궁궐 건축은 일찍 서한에 이르렀을 가능성이 있다.
A구역 다지기 동남쪽 제3기 배수 시설은 위진 시기까지 계속 사용될 가능성이 있지만, 이 시기에 궁전 건축물이 존재했는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다른 몇몇 지역 흙 다지기 및 궁전 지역의 담장 쌓기 시대도 아직 추가 발굴이 필요하다.
궁궐 구역 배치와 성격을 명확히 했다.
궁전 기지군은 '회回'자형 평면 배치를 두드러진 특징으로 하며, 하상夏商부터 전한 시기까지의 전당 건축의 고전적인 패러다임을 전승한다.
이미 부분적으로 드러난 A구역 흙 다지기 기초의 건축 형태와 규모는 한 장안성长安城 미양궁未央宫 중앙 관서 유적, 한 선제宣帝 두릉杜陵 능침陵寝 유적과 유사한 점이 있으며, 군국급 궁전의 건축 특징을 충분히 드러낸다.
전국시대부터 양한시대까지의 성터의 역사적 변혁, 특히 출토된 '진정장락真定长乐' 명문와당이라는 중요한 물증을 결합하여, 이 건축군이 동한 진정국真定国 핵심 궁전 유적에 속한다고 판단할 수 있다.
둥원东垣의 고대 도시 배치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가장 중요한 수확은 2호 다지기 기초군이 궁전지역임을 명확히 한 것이며, 2호 다지기 기초군 남쪽에 1호 다지기 기초군이 존재하고, 이 기초군 내 다지기 기초군 규모가 작고 2호 다지기 기초군 사이에 벽과 담을 사이에 두고 있어 성질은 다르지만 모두 중요한 기능구역이다.
두 그룹의 흙 다지기 기초군 서쪽에서도 작업장 구역이 발견되었으며, 이 작업장 구역에서는 오수전범五铢钱范도 채집된 적이 있다.
공방구와 다지기 터군은 함께 동원 고성 유적의 핵심지구를 구성하며, 이 핵심지구는 도시 중부에서 북쪽으로 치우치고, 이 지역 내부와 동부에서 벽 흔적이 발견되며, 그 크기는 동원고성 외벽과 상이해 전국시대 벽 유적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핵심지구는 전국시대 성터의 주요 지역일 수 있으며, 현재 동원고성 외곽의 성벽과 해자는 전국시대 이후 확장한 결과일 가능성이 있어 후기 고고학 작업에서 위와 같은 고민을 검증할 것이다.
동원 고성 유적은 사용 기간이 길고 현재 하북 지역 유일하게 전면적인 고고학 탐사를 거쳐 명확한 배치 구조를 가진 양한 군국 중심 도시다.
또한, 국내에서 처음으로 체계적인 작업을 시작한 한대 후국侯国 국도国都 유적이다.
이번에 공개된 한대 궁궐 건축물은 화북 지역에서 현재 발견된 가장 완전한 배치와 가장 높은 규격의 양한 고급 건축군일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유일하게 발견된 양한 후국 궁궐 건축 유적이다.
이 발견은 동원 고성의 역사적 발전 맥락을 증명하고, 동원고성이 진정국 수도로서의 중요한 위치를 입증하며, 양한 시대의 지방 후국 도시 구조와 정치 공간 형태를 설명하는 중요한 샘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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