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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Early Modern이라는 에도 일본, 그 옆나라가 뜬금없는 들고 나온 여전제

by 초야잠필 2024.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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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는 식민지화하지 않고 자생적으로 제국주의까지 진입했다는 점에서 스스로를 다른 아시아 국가와 차별화하는데 성공하였다. 

메이지유신 이전 에도시대 일본사는 서양사의 입장에서 본다면 대략 어느 수준에 해당하는가

여기에 대해서는 많은 이견이 있겠지만 최근 나오는 이야기를 보면 대략 Early Modern정도에 해당한다고 보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Early Modern이라면 어느 정도의 단계인가? 

위키 설명을 보면 이렇다. 



Various events and historical transitions have been proposed as the start of the early modern period, including the fall of Constantinople in 1453, the start of the Renaissance, the end of the Crusades and the beginning of the Age of Discovery. Its end is often marked by the French Revolution, and sometimes also the American Revolution or Napoleon's rise to power 

다시 말하면 대략 르네상스의 시작에서 대항해시대, 그리고 프랑스, 미국 혁명 전야까지에 해당한다는 말이다. 

이 시기가 사실상 유럽의 다른 세계에 대한 우위를 확정지었다는 점에서 일본의 전근대인 에도시대가가 세계사에서 얼마나 높은 평가를 받는지 알 것이다. 

이 Early Modern은 세계사의 발전단계에서 대략 르네상스에서 시민혁명의 사이에 위치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메이지유신은 시민혁명단계에 억지로라도 포지셔닝하고, 

에도시대는 자본주의의 맹아, 

그리고 메이지유신기는 그렇게 싹튼 자본주의의 개화로 이야기할 수 있는 셈이다. 

여기서, 

조선시대 실학자들의 여전제, 한전제, 균전제를 도대체 어떻게 어느 위치에 포지셔닝할 수 있겠는가? 

여전제, 한전제, 균전제가 도대체 어떻게 근대적 토지소유제도의 개혁론이 될 수 있는 것인지, 

아니 실학자들의 세계관, 개혁론이 도대체 어떻게 근대적 사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인지

필자는 도대체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조선왕조를 반대하고 개혁을 요구한다고 해서 그들이 모두 근대화의 전조는 아니며

오히려 역사를 반동적 흐름으로 다시 끌고 가려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필자는 조선후기 소위 실학자의 일부, 아니 대다수는 근대적 사유와는 거리가 멀고 

특히 그들의 경제개혁론은 개혁이 아니라 나라를 거꾸로 끌고 가려는 시대착오적 발상이었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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