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주종 유구 鑄鐘遺構라 해서 절에서 딩딩 울리던 종을 만든 흔적이 출현한 아산 읍내동 당간지주 주변 발굴성과가 공개되었거니와,
이 일대는 언제나 저 당간지주가 그 일체로 들어갔을 절터가 궁금하긴 했거니와
마침 그런 시도를 아산시에서 한 모양이라
살피니 그 지표조사와 정비계획, 그리고 시굴과 발굴조사에 이르기까지 가경고고학연구소 라는 기관에서 깊이 간여한 데라 아산시랑은 무슨 짙은 인연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기관에서 이렇게 공을 들여 특정한 유적을 집착하기가 쉽지는 않은데, 그것이 발굴조사까지 이어졌으니,
이런 발굴들을 토대로 삼는 향후 정비계획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발현할지 지켜봐야겠다.
이번 발굴은 단순히 절터 하나를 찾는데 그치지 아니한다.
저 앞에 첨부한 구글어스 지도들이 명확히 보여주듯이 저 당간지주, 그리고 그 주변으로 포진하는 온양향교니 온주 관아 건물은 저곳이 바로 적어도 조선시대, 당기면 고려시대에도 저곳이 바로 이 일대를 통치하는 핵심 시설이 있던 곳이요,
나아가 그 자리는 그 고장에서는 바로 북극성 자리임을 명확히 그리고 여실히 보여준다.
더 간단히 말해 이번 발굴이 대상으로 삼은 지역은 단순히 절터 하나를 넘어 현대 도시화 이전 아산 역사의 키를 쥔 곳이며, 그 심장부를 뚫은 것이다.
이 지도들을 보면 이번 발굴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가 더욱 명확해진다.
한반도 중앙을 관통하는 차령산맥 북쪽이요 그런 차령산맥이 새끼친 바로 그 남쪽 자락이다.
저 차령산맥 주맥과 저 새끼친 산이 둘러친 분지가 바로 전근대 저 일대의 주축도시가 있던 데다.
지금은 아산과 천안은 충적대지에 형성되었지만 인류역사가 충적지로 옮겨간 것은 그 역사가 얼마되지 아니해서
강물을 제어하고 또 그 기반을 지킬만한 기술 발달, 곧 아파트가 들어서고 나서야 비로소 가능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 중심부 심장을 이번 발굴은 정확히 관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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