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로 앞에서 호태왕비 서기 391년치, 이른바 신묘년 조 기사에서 왜가 이 해에 바다를 건너와 백제를 공파하고 신라를 집어삼키고선 두 나라를 신민으로 삼았다는 대목 중 적어도 신라 관련 기술은 개뻥이었음을 확인했다.
다름 아닌 광개토왕비 자체에서 저 말이 새빨간 거짓음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백제 관련 논술, 곧 신묘년에 왜가 來渡海하고선 破百殘, 곧 백제를 공파했다는 대목은 어떻게 볼 수 있는가?
결론부터 말한다. 이 역시 개뻥이다.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나는 저 비문이 전반으로 보아 아무말 대잔치라 했다.
이 백제 관련 부분 증언도 딱 이에 해당하는 어떤 점에서 그런가?
이를 위해 저 신묘년 백제 관련 기술을 보면 왜가 분명히 백제를 파破했다고 했다. 간단히 전쟁을 해서 쓰러뜨렸다는 뜻이다.
맞는가?
신묘년에 이어 비문은 몇 년치를 몽땅 누락하고선 곧바로 5년을 건너 뛰어 영락 6년 병신(396)으로 달려간다.
왜?
이 해에 저 비문이 그렇게 자랑하고 싶은 고구려에 의한 백제 공파가 있기 때문이다.
이 해 기술은 굉장히 긴데, 간단히 정리하면 백제 정벌군을 일으켜 총 58성 700촌을 획득하고선 백제 왕의 항복을 받는 대신, 그의 동생과 조정 대신 10인을 인질로 삼아 팡파르 울리며 화려하게 도성으로 귀환했다는 것이다.
저 58개 성은 그 이름을 구체로 장황하게 나열하는데, 암튼 그렇게 차례로 저들 성을 정복하고선 항복하라 했는데도, 그래도 백제 왕이 항복할 생각이 없이 계속 항전하므로, 영락태왕이 그만 야마 이빠이 뻗쳐서 아리수阿利水, 곧 지금의 한강을 건너는 진격 작전을 감행하니
그제야 백제왕이 이젠 졌소, 미안하오, 항복을 받아주오 하면서 "남녀 생구生口 1천 명과 더불어 세포細布 1천 필을 바치면서 왕에게 무릎 꿇고 스스로 이제부터 영원히 (당신) 노객奴客이 되겠다고 맹세"하니 잔정이 많은 우리 태왕께서 이제 저 죄를 용서하고선 머리 쓰다듬어 주고선 이젠 고마한다 하고 쓍 하니, 귀국길에 올랐댄다.
저 말 절반 이상이 개뻥이다. 물론 사실이라 할 만한 대목도 어느 정도 섞였을 것이로대, 왜 개뻥인가?
저만한 사람과 물자를 바치면서 항복 문서를 들고 오고, 또, 그 항복을 받아들였다고 한다면, 빼앗은 땅은 당연히 돌려주어야 한다.
더구나 비문 스스로 백제왕의 허물을 용서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땅은 그대로 가져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이렇게 반론할 수도 있다. 그 땅의 공취가 항복 조건에 포함됐다고.
개뻥이다. 저런 논술은 거의가 다 뻥이고, 약탈을 분식 세탁했을 뿐이다.
꼭 저 해인지 확인할 수 없지만, 저 무렵에 고구려가 대대적인 대 백제 공세를 취해 백제 북쪽 혹은 다른 쪽 변경 땅을 약탈했다는 사실은 삼국사기에서도 확인되는 사실이다.
그냥 약탈했을 뿐이지, 용서 운운하는 저런 말은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다.
문제는 저 일이 있고 난 몇 년 뒤인 영락 9년 기해(399)에 있었다는 일.
이 해 문장은 다음으로 시작한다.
백잔이 맹세를 어기고 왜와 화통했다[百殘違誓與倭和通]
잉? 백제가 왜와 화통和通? 백제는 이미 신묘년 서기 391년에 왜한테 깨뜨림을 당해서 그 신민이 되었다매?
그래 그 관계를 영락태왕이 개입해서 백제를 개박살냄으로써 끊어버렸다고 치자.
맹서를 어기고 저런 짓을 했다는 말은 백제가 고구려에 항복하는 조건에 "왜와는 국교를 단절한다" 이런 조항이 있었다는 맥락일 수밖에 없다.
한데 그런 두 나라가 화통? 화통?
화통이 뭔데?
대등한 외교 관계에서 쓰는 말이잖아?
백제와 왜가 서로 대등한 관계로 이번에는 내통을 해서 고구려에 대한 보복을 다짐했다 이런 뜻?
더 웃기는 일은 그 다음에 발생한다.
자, 백제가 맹서, 혹은 항복 조건을 어기고 왜랑 다시 화통해서 뭔가 일을 꾸미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다면 이 소식[정보]를 접한 고구려는 어찌 해야 하는가?
백제를 박살내야지 않겠는가?
한데 느닷없이 고구려는 백제는 놔두고, 그 동맹군이라 할 왜와의 전쟁에 나서고 있다.
더구나 그 전장터는 더 느닷없이 신라 가야로 향하고 있다.
백제와 다시 전쟁을 하거나 했다는 말이 그 어디에도 없다.
배신자 백제는 가만 놔두고 남의 땅에 들어가서 왜와 전쟁을 벌인다?
것도 5만이나 동원해서?
이게 말이 됨?
간단하다.
저 비문은 계속 말하듯이 아무말 대잔치라, 문장 작성자가 기사 작성 원칙도 모르는 얼치기이기 때문이다.
이런 얼치기들 주특기가 거짓말은 밥먹듯이 하고, 바로 앞에서 한 말도 금새 잊어버리고 그에 배신하는 딴 이야기를 한다는 사실이다.
한데 우리가 유의할 대목은 저런 아무말 대잔치에서 그 아무말들을 검증함으로써 거짓을 폭로할 수 있다는 사실.
백제와 왜의 관계 역시 딱 이래서, 백제가 전쟁에서 왜에 져서 그 부용국이 되었다 개사기를 쳤는데, 다른 문장 조금 쓰다가 그만 앞에서 한 그 거짓말을 잊어버리고선 실상을 폭로해 버렸다.
백제와 왜는 주종 관계, 적대 관계가 아니라 실은 화통하는 우호선린 관계였던 것이다.
곧, 왜가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 와서는 백제와 싸워 이기고선 백제를 신민, 신하로 삼았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이고 사기였다.
신라 부문 기술 역시 개뻥이었다.
이 개뻥에 괜히 열낸 선학들 얼굴이 하나씩 스쳐간다.
당신들 괜한 고생하셨소.
고담덕이랑 고거련에 놀아났소!
호태왕비 또 하나의 개사기 "왜가 신라를 신민으로 삼았다"
https://historylibrary.net/entry/gwnagbi3
호태왕비 또 하나의 개사기 "왜가 신라를 신민으로 삼았다"
그래 솔까 저 비문 이른바 신묘년 조는 논란이긴 하나 아래와 같이 판독하는 일이 많거니와 百殘新羅舊是屬民由來朝貢而倭以辛卯年來渡海破百殘東新羅以爲臣民다만 문맥으로 보면 저런 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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