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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호태왕비 또 하나의 개사기 "왜가 신라를 신민으로 삼았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6.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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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솔까 저 비문 이른바 신묘년 조는 논란이긴 하나 아래와 같이 판독하는 일이 많거니와 

百殘新羅舊是屬民由來朝貢而倭以辛卯年來渡海破百殘東新羅以爲臣民

다만 문맥으로 보면 저런 판독에서 왜가 바다를 건너와설라무네,

破∨百殘하고 東∨新羅하여 (백잔과 신라를) 신민臣民으로 삼았다라 해서 東으로 판독한 글자는 그 앞에 나오는 破와 같은 뜻이 되는 동사가 와야 하니, 東은 잘못된 판독 같다. 

아무튼 저 문장은 여러 해석이 있기는 하지만 바보가 아닌 이상 대략 아래와 같이 봐야 하니

백잔[백제]과 신라는 예로부터 속민屬民이라 (예로부터 우리 고구려에) 조공했거니와, 왜가 신묘년(서기 391년)에 바다를 건너와 백잔을 격파하고 동쪽으로 신라를 … 하여 신민臣民으로 삼았다.

정도가 된다. 

간단히 본래 백제와 신라는 우리 고구려의 시다바리인데, 그 시다바리들을 왜국이 느닷없이 쳐들어와설라무네, 백제를 격파하고, 신라까지 삼켜서는 지들 시다바리로 삼았다 

이 뜻이 되겠다. 

나는 광개토왕비가 아무말 대잔치라 했다. 

그 명백한 증거로 같은 텍스트 안에서 앞에서는 A라 해 놓고선 뒤에 가서는 그 A를 배신하는 엉뚱한 소리 B를 하도 천연덕스레 해대기 때문이다. 

그 증거 중 하나가 바로 저에서는 신라가 예로부터 고구려 시다바리라 해 놓고선, 나중에 가서는 왜한테 급박당해 위기에 처한 신라가 사신을 보내와서는 도움을 간절히 구걸하기에 군사를 5만이나 내주어 왜를 박살내고 신라를 구원하니, "신라는 이전에는 우리한테 와서 허리를 굽신댄 적이 없는데 이때 비로소 우리한테 와서 품에 안겼다"고 했으니 

이 어찌 이율배반 아니겠는가? 

저 비문을 보면 분명 신묘년, 서기 391년에 왜국이 신라를 격파해서 그들의 신민, 곧 시다바리로 삼았다 했다!

한데 그로부터 8년이 지난 다음 다음 증언은 무엇이란 말인가? 

[영락] 9년 기해(399)에 백잔이 맹세를 어기고 왜와 화통했다. (그 무렵 마침) 왕이 순행하는 길에 평양으로 내려갔는데, 신라에서 사신을 보내어 왕께 이렇게 아뢰었다.

“왜인이 [신라의] 국경을 가득 메운 채 성城과 해자[자池]를 부수고 이 노객奴客[신라가 스스로를 낮추어 말함-인용자 주)을 그네들 백성[民]으로 삼고자 합니다. 왕께 귀의하니 부디 우리를 구해주소서.”

이에 (영락) 태왕이 은혜롭고 자애로워 그(신라왕-인용자)의 충성을 가상히 여겨 특별히 사신을 보내 돌아가게 하고, …(신하들한테 시켜서 왜를 깨뜨리고 신라를 구원할) 계획을 세우게 했다.

신묘년 서기 391년에 이미 왜가 바다를 건너와설라무네, 신라를 격파고 그들의 신민으로 삼았다매?

근데 이건 뭐야? 

또 거짓말이야? 

아! 한 가지 가능성이 있기는 하다. 

391년에 왜가 신라를 깨뜨려 부용국으로 삼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신라가 반기를 들고 다시 독립국임을 선포했다! 그래서 야마 돈 왜가 다시 신라를 쳐들왔다? 

그래? 

맞어? 

한데 저 영락 9년 조 언급을 통해 한 가지가 명백해졌다!

신묘년에 왜가 신라를 격파하고선 신라를 그네들 신민으로 삼았다는 호태왕비 선언은

개소리였다!!!!


간단히 말해 신묘년 조 기록은 고구려의 개뻥 개사기 아무말 대잔치였다!

우리는 고담덕 고거련한테 놀아났다.

그들이 우리를 농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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