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샌 맛탱이가 완전히 갔지만, 한때 중국사가 일본 동양사학 독무대였던 적이 있다.
그래 기라성을 방불하는 중국사 대가는 모조리 일본에서 나왔다. 그만큼 한때 일본의 중국사는 지구촌을 흔들었다.
그렇지 않다고 바락바락 우길 사람 없지는 않겠지만 [주로 일본 유학도들이 길길이 아니라고 날뛰며 대들 것이다], 더는 일본 동양사가 세계를 호령하는 시대는 아니다. 이미 주도권은 중국 본토배기들과 미국 쪽으로 완전히 넘어가서 일본 동양사학은 빌빌 싼다.
지전온池田温, 이케다 온이라는 사람이 있다. 1931년 생으로 동경대 박사학위를 취득하고선 동경대 교수로 일본 동양사 2세대쯤으로 맹활약하다 2023년에 갔으니, 나는 이 지전온을 일본 동양사 호황 시대 막차로 본다.
중국 고대사가 주전공이요 주로 문서학에서 일가를 이룬 것으로 정평이 났다.
내가 저 연합뉴스에서 문화재랑 학술을 전담하기 시작하고, 그 일환으로 무령왕릉에 관한 글을 숙독하던 그 시절, 이른바 그 매지권賣地券과 관련한 공부를 파면서 저 지전온이라는 인물을 마주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저 무령왕릉 발굴보고서를 비롯해 무령왕릉 소위 매지권을 논하는 모든 글에서 저 지전온이라는 사람이 쓴 논문을 모름지기 인용했으니, 내 기억에 중국 매지권과 관련해 인용되는 논문은 당시까지만 해도 오직 그의 논문 한 편이 있을 뿐이었다.
다른 사람 글은 인용되는 꼴을 못 봤고, 죽어나사나 그 지온온 논문을 끌어다대는 게 아닌가?
그런 모습을 목도하면서 도대체 이 논문이 무슨 귀신인가 해서 내가 원문을 복사하러 나섰다. 문제는 그 논문이 어디에 있는가였다. 대학 도서관 같은 데서 구득할 수 있었겠지만, 당시 경복궁 안에 있던 국립문화재연구소 중 자료실에 그런 논문이 많을 때라, 더구나 당시 나는 틈만 나면 이 자료실에서 살았으니, 마침 이 논문이 검출되었다.
살피니 뭐 몇 장 되지도 않았고, 당시까지 알려진 중국 매지권을 죽죽 나열하고 정리한 수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매지권 원문 첨부하고 구두점 찍고, 그런 것들을 토대로 매지권이 무엇이며 그 특징들을 간취한 수준이었다.
그에서 다룬 매지권은 몇 종 되지도 않았다. 10점? 20점? 뭐 이 정도였나?
이것이 매지권을 공부하려는 사람들한테는 절대 성전처럼 군림하는 중이었다.
그래 그랬다. 뭐 매지권을 공부하려 해도 구할 만한 마뜩한 자료가 있어야지?
그땐 그랬다.
이후 나는 뻔질나게 남경과 낙양을 중심으로 중국을 드나들게 되었다. 한창 그에 빠졌을 때는 연간 너댓 번을 갔으니 말이다. 가서 보니 박물관마다 발길로 채는 게 매지권이었다.
광동성 광주를 갔을 적에는 광주시박물관인가? 그에서 도교 색채 완연한 매지권을 보고선, 그 전문을 낑낑 싸매어 가며 번역한 글을 한국의 고고학 잡지에 투고한 일도 있다.
중국에는 널부르진 게 매지권이다. 지금은 현장 가지 않아도 검색 한 방으로 바이두 두들기면 좍좍 쏟아진다. 관련 도판에 원문에 때로는 번역문에 죄다 서비스한다.
지금 생각하면 저 지전온 논문 찾아 헤맨 일이 허탈하기만 하다. 몇 점 되지도 않는 그 매지권을 성전처럼 알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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