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김영일, 역사가 영원히 새겨야 할 무령왕릉의 위대한 발견자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6. 6. 26.
반응형



이 분이 뉘신가 하면 김영일이라는 분이라 문화재 보수업계에 생평을 바쳤다.

호적상 1942년 6월 생이지만 실제는 한 해 빨라 올해 여든다섯.

바로 저 분이 1971년 공주 송산리 고분군에서 배수로 공사를 하다 무령왕릉을 발견하셨다.

나는 해직기간인 2016년 도서출판 메디치미디어를 통해 무령왕릉 발견 발굴 전반을 탐사하는 한편 그 연구를 표방한 단행본 《직설 무령왕릉》을 출간했거니와

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선생을 대면 인터뷰하고 그에 얽힌 이야기를 작은 챕터를 털어 저 단행본에서 정리했으니

선생은 무엇보다 내가 그에 얽힌 사연들을 제대로 평가해주었다 해서 고마워하신다.

그가 무령왕릉 발견자라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지만 내 기억에 이런 그를 제대로 인터뷰한 언론이 없었다.

나 역시 저 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뭔가 새로운 걸 얻어걸리라고는 기대치 아니한 상태에서 선생과 마주했더랬다.

이미 관련 자료 대부분을 망실한 상태에서도 이것저것 그와 관련한 남은 자료들을 내놓았으니 개중에서도 특히 눈여겨볼 만한 것이 있어 인터뷰와 그 자료들을 엮어 나는 저 책에 담았다.

이런저런 일로 한동안 연락도 못드리고 있었는데 근자 어떤 인연으로 연락을 주시어 냅다 옥인동 자택 인근으로 찾아뵈니 여름이라 힘내라 그러신지 장어로 점심을 사주신다.




분야를 막론하고 저 연배 분들이 하나들 스러질 때라 그런 가운데서도 정정하신 모습이며 여전히 운전을 직접 하시는데

"운전은 그만 접으시는 게 좋지 않냐" 말씀드리니 가로대 "아흔아홉살까진 할란다"신다.

아마 선생과는 갑장일 조유전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님 근황과 근자 면회한 바를 말씀드리니 당신 주변에서도 다 가고 이젠 둘만 남았다신다.

십년 전 뵐 때만 해도 양재동 회사 사무실에서 바쁜 나날들을 보내셨으나 지금은 연세도 있고 무엇보다 문화재 현장 일감 자체가 다 죽다시피해 사업은 거의 다 접은 듯했다.

이르기를 서울만 해도 문화재보수업체가 15곳인가 17곳인가 있지만 연간 발주 총액이 백억이라 먹고 살 수가 없대신다.

건강 이야기가 나온 김에 뜻밖의 말씀을 하시는데 실은 당신 자신이 2018년에 전립선암 4기 판정을 받았다시며 그래도 이렇게 멀쩡히 살아있대신다.

"서울대병원에 다니는데 나랑 비슷한 시기에 (같은 교수님한테) 암 판정 받은 사람들은 4기건 2기건 3기건 다 죽고 나만 살아남았어.나? 안 죽어"

그러고 보니 세월의 무게를 어찌하겠는가?

"당신 이제 몇 학년이야? 6학년이야?"

그러면서 계속 고맙다신다.

"딴 놈들 쓴 거 보면 전부 지들이 다 무령왕릉 발굴한 것처럼 써놨잖아?"

무령왕릉은 발견도 그렇고 발굴도 그렇고 실제 저 양반을 비롯한 당시 배수로 공사 인부들이 했다.

"지들이 뭘했어? 밤엔 술만 마셨지"

무덤이 출현했다 해서 난리를 피워댄 그날 밤 폭우가 쏟아졌으니 그 폭우에 무덤이 잠기는 일을 막고자 밤샘하며 현장에서 사투한 이들이 저들이었다.

중국 장안에선 시황제 병마용갱을 발견한 농부는 평생 그걸 팔아 먹고 살았다.

우린 무령왕릉을 발견하고 발굴한 사람을 제대로 기억이나 해주려나?

그 토대는 그나마 내가 놓은 듯해서 한편으로는 보람을 아니 느끼지는 않는다.

"그때 공사비가 660원이었어. 그 돈 받고 얼마나 고생을 했던지. 그 일이 있고서 6년 동안 고생했어."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