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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

유관순 버리고 대타로 고른 고대사와 고고학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6.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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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운동 상징과도 같은 존재가 유관순이라, 태극기 이야기 나온 김에 이 일화도 이제는 어느 정도는 말해 두어야겠다.

유관순...혹 이상한 느낌 받지 못했는가?

삼일만세운동 그 무수한 희생자 중에 왜 저 여학생이 유명인물이 되었는지?

그렇다고 유관순이라는 인물이 없었다는 것도 아니요, 엄연히 저 만세운동 희생자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한데 어찌하여 저가 그 아이콘처럼 대두했을까?

더욱 정확히는 어느 시점에 유관순은 그런 인물이 되었던가?

단 하나 이 시점에서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이콘으로서의 유관순은 어느 시점 누가 급조했다는 사실이다.

식민지 시대 내내 유관순은 철저히 무명이었다.

그런 그를 무명에서 구출한 이는 누구이고 언제였을까?

놀랍게도 해방 직후 김활란이 등장한다.

그랬다.

유관순은 김활란 작품이다.

이 김활란은 몇 가지 층위가 있다.

개인 김활란이 있고, 그가 대표하는 이화여대라는 거대한 집단 대표로서의 김활란이 있다. 

유관순은 개인 김활란과 김활란이 대표하는 이화여대 작품이었다.

이 문제를 실은 저 태극기 문제와 연동해 나는 한때 팠다. 

내가 이 문제를 파게 된 결정적인 동인은 한태동 선생이었다.

어느날 한태동 선생을 뵙고 이런 말 저런 말을 주고받다가 류관순 문제에 이르러 선생이 이르기를 "김 기자는 유관순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아오?" 하시기에 "짐작은 하고 있습니다만 깊이 생각해 보지는 않았습니다"는 요지로 대답했다.

몇 가지 암시를 선생은 주었고, 나는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시기를 바랐거니와, 그거 제가 한 번 제대로 다뤄볼까요 했더니 선생은 한사코 손사래를 쳤다. 

"묻어둘 건 묻어두어야지 지금 파서 뭐하게?"

그로부터 대략 20년 정도가 흘렀을까? 누군지 자세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저 유관순 문제를 내가 말한 저 문제의식으로 짚은 연구가 나왔다는 소식은 접했거니와 해당 논문을 내가 숙독하지 못해 뭐라 말할 수는 없는 처지다. 

그때 저 문제를 건드렸다면 어땠을까?

틀림없이 또 집단린치를 당했을 것이다. 

참....내 행적에서 사람들은 막연히 내가 고대사 고고학을 전문으로 하는 전직 기레기 정도로 알지만, 사실 내 역사학 출발은 근현대사였고, 더욱 구체적으로는 전후보상 문제, 더욱 구체적으로는 원폭피해자 문제였다는 말은 해 둔다. 

나는 고대사 고고학과는 애초 관련이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

그런 내가 왜 근현대사를 버리고 저짝으로 도망갔던가?

정대협 때문이었다. 위안부 문제 때문이었다. 

알려진 것과는 사뭇 다른 그 뒷모습에 절망해 버렸다.

이후 다시는 쳐다보지 않는다고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전업하기를 잘했다 싶었다.

처음엔 조심했다. 열심히 배우려 했고 참 조신한 기자였다.

한데 이런 탐문 조신한 기자생활도 일년이 안 되어 돌변했다.

살피니 이쪽은 덤앤더머들이었다.

등신도 이런 등신들이 없었다.

괜히 쫄았다가 살피니 겁낼 놈이 없었다.

마침내 김태식 세상이 열렸다.

전업하길 진짜로 잘했다 싶었다.

왜?

저런 덤앤더머들은 내 상대가 되지 않았으니 나는 점점 독불장군이 되었다.

독불장군 김태식을 만든 건 김태식이 아니라 덤앤더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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