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가난9 한국사를 이해하려면 그 가난을 정면으로 응시해야 출세하고 나면 못나고 가난한 부모는 창피해야 하는가. 필자는 일본사도 솔직하지 못한 점이 많은 역사라 보는데, 일본의 과거사를 보면 온통 금박으로 분칠해 놓은 것 같은 느낌을 항상 받는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 유적 복원. 얼마나 과장이 많은가.요즘 이를 한국에서도 따라 하는 건지 한 번도 그렇게 지은 적이 없을 것 같은 모양으로 과거 유적이 호화롭게 복원된다. 한국은 원래부터 잘살던 문화로 슬쩍 치환하려하고 그것이 물질적 증거로 입증이 어렵다면네가 아는 게 없어서 그렇다고 협박한다. 알면 보인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점을 이렇게 생각한다. 한국사를 이해하려면 한국사 수천 년을 그 벽두부터 불과 수십년 전까지도 점철하던그 가난을 정면으로 응시해야 한다고. 1960년대까지도 있던 절대빈곤이 고려시대에는 없었.. 2024. 12. 1. 한국에 유산이 빈약한 이유 몽골 때 다 타서 그렇다.임진왜란 때 다 타서 그렇다.아니다 일제시대 때 다 수탈당해서 그렇다 등등 여러가지 주장이 있지만 그게 아니고 원래부터 적었거나 그나마 있던 것 화재로 소실된 후 재건을 못해서 그렇다. 콘크리트 건물이 아니라 목재 건물이던 시대에는 화재로 다 태워먹는 건 늘상 있는 일이라 화재로 소실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얼마나 빨리 재건하느냐가 문제인데 우리의 경우 경복궁의 예에서도 보겠지만 한 번 타고 나면 중건을 아예 못하거나 해도 굉장히 어렵게 이루어진 경우가 많았던 듯 하다. 왜 그럴까? 가난했기 때문이다. 이걸 복잡하게 생각하다 보니 별의 별 이유가 다 나오는데 절에 꼬불꼬불한 나무로 기둥을 한 것은 자연을 사랑해서가 아니라쓸 만한 재목이 없어서 그렇고 한국이 일본보다 폼나는 절.. 2024. 11. 30. 요물과도 같은 돈 혹은 월급 이야기 내가 없이 자라며 학교를 다녔다 해서, 내가 거창한 계급투쟁의식이 있는 사람은 아니다. 어쩌면 체제 순응주의자라고도 할 만한데, 그 체제 안에서 내가 획득할 수 있는 최대치 정도만 적당히 먹고 살자 이런 주의에 나는 가깝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던 무렵만 해도, 요즘과는 사정이 많이 달라, 썩 만족은 하지 못한다 해도 그런 대로 이름 있는 대기업은 어느 정도 들어갈 만한 환경이었으니, 그럼에도 나는 개중에서도 나은 편이라는 영문과 출신이라 하지만 문과대라는 한계가 커서 취업 선택의 폭이 생각보다는 굉장히 좁았다. 졸업을 앞둔 시점에 이곳저곳에서 날아드는 신입사원 모집 소식에 몇 군데는 날림으로 넣어 합격통지서를 받았지만, 대기업이라고 할 만하는 데는 딱 한 군데 지원했으니, 현대자동차였다. 내 기억에 이 .. 2023. 9. 11.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 이규보한테 쌀을 꾸는 백수 1주일 1이규보도 사실 벅차지만, 일요일이니 비축분 푼다 생각하고 하나 더 올려본다. 앞서도 여러 번 봤지만 우리의 백운거사, 이규보 선생의 형편은 그닥 넉넉지 못했다. 과거에 급제하고 벼슬길에 올랐어도 빠듯한 살림살이를 한탄하는 문구는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세상에 고수는 많다. 오죽하면 주변머리없는 이규보에게까지 쌀을 꾸는 사람이 다 있었다. 동년同年이라고 하니 이규보와 같은 해 과거에 붙은 인물인가본데, 관직을 얻지 못한 백수 신세였던 모양이다. 얼마나 급했으면 상대가 궁중에서 숙직을 서고 있는데 집도 아니고 그쪽으로 편지를 다 보냈겠는가. 당직근무 서고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궁 밖을 나서려다 그 편지를 본 백운거사는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는지. 얼마 전까지 같은 처지였던 자신.. 2023. 2. 27. 문맹과 까막눈, 그리고 가난 문맹文盲이란 고급진 말보단 까막눈이라 해야겠다. 그제 어느 방송 프로를 보니 손녀가 할머니한테 한글을 가르치는 장면이 나오더라. 1921년생 선친은 당신 이름도 쓸 줄 몰랐고, 엄마는 이제 계우 당신 이름은 쓰고 숫자는 읽으며 눈치보니 한글은 요샌 때려맞춰 읽는다. 엄마의 변화가 조금 특이한 점이 있는데 완전 까막눈이었다가 전화가 집에 들어오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어느 때부턴가 보니 동네 사람이나 친척들 전화 번호가 이름과 함께 적히기 시작하더라. 나랑 배가 다른 죽은 형은 중학교 다니다가 학교가 싫다고 도시로 도망쳐 대구니 진주니 하는 데를 전전한 모양인데, 1년에 한 번 정도 집으로 편지를 부치곤 했다. 배운 것 없는 이 형이 어디서 줏어들었는지 매양 편지 첫머리는 부모님 전상서라는 구절로 시작했다... 2020. 9. 13.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3대 새빨간 거짓말 1. 가난해서 송곳 꽂을 땅도 없고 일단사일표음한다. (문집 간행할 정도면 요즘으로 따지면 100억 이상 자산가는 됨) 2. 벼슬에 뜻이 없다. (문집에 낙방한 과거시험 답안지 수두룩) 3. 병에 시달려 다 죽은 몸이다. (서른 즈음부터 그래 놓고 90까지 사는 경우가 많음) By 기호철 2019. 12. 11. 이전 1 2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