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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추

김춘추의 여인들(3) 고타소 이 고타소(古陀炤)는 앞서 여러 번 다루었고, 그것이 등장하는 맥락이나 사건은 이곳 내 블로그에서 '고타소' 혹은 그의 남편 '품석'으로 검색하면 되거니와, 혹 그것들이 모두 필요하신 분들은 참고바란다. 고타소란 이름은 내 조사가 철저한지 아닌지는 자신이 없거니와, 일단 내 추산대로라면 《삼국사기》 권 제41 열전 제1 김유신上에 보이거니와, 그것이 등장하는 맥락은 다음과 같다. 선덕대왕 11년 임인(642)에 백제가 대량주(大梁州)를 격파..
태종무열왕릉비 <the tortoise monument and tomb of King Taejong> Stele for Tomb of King Taejong Muyeol in GyeongjuNational Treasure No. 25경주 태종무열왕릉비 / 慶州太宗武烈王陵碑국보 제25호 / 받침돌 길이 330cm, 너비 249cm, 높이 83cm, 머릿돌 높이 110cm신라 태종무열왕(재위 654~661)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기고자 그의 무덤 앞쪽 좌측에..
지조(智照) 지소(智炤)라고도 한다. 태종무열왕 김춘추 딸이다. 어머니는 누구인지 언급이 없지만, 김유신 동생 문희일 가능성이 크다. 무열왕 2년(655)에 김유신에게 시집가서 원술 이하 여러 아들과 딸을 낳았다. 성덕왕 11년(712), 부인으로 책봉되었다. 삼국사기 권제5(신라본기 제5) 태종무열왕 : 2년(655)…겨울 10월에…왕의 딸 지조(智照)를 대각찬(大角飡) 유신에게 시집보냈다.   삼국사기 권제8권(신라본기 제8) 성덕..
천명(天明) 신라 진평왕 딸로서 훗날 왕이 된 선덕의 언니로서, 룡수(龍樹)와 혼인해 김춘추를 낳았다. 남편 사후엔 룡수 동생 룡춘(龍春)과 살았다. 삼국사기 권 제5(신라본기 제5) 태종무열왕 :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춘추(春秋)이고 진지왕 아들인 이찬 용춘(龍春)<용수(龍樹)라고도 한다>의 아들이다.<당서(唐書)에는 진덕의 동생이라 했으나 잘못이다> 어머니 천명부인(天明夫人)은 진평왕 딸이다. ..
고타소(古陀炤) 훗날 태종무열왕이 된 신라 김춘추 딸이다. 대야성 군주로 임명된 남편 김품석을 따라 임지에 있다가 백제군에 성이 함락될 때 피살됐다. 삼국사기 권 제41(열전 제1) 김유신上 : 선덕대왕 11년 임인(642)에 백제가 대량주(大梁州)를 격파했을 때, 춘추공(春秋公)의 딸 고타소랑(古陀炤娘)이 남편 품석(品釋)을 따라 죽었다.  춘추가 이를 한스럽게 여겨 고구려에 청병함으로써 백제의 원한을 갚으려 하자  왕이 허락했다. (춘..
고타소랑(古陀炤娘) 고타소(古陀炤)라는 여자를 높여 일컫는 말인 듯 ☞고타소(古陀炤)
김품석(金品釋) 신라 태종무열왕 김춘추 사위로서 선덕왕 11년(642), 이찬이자 대야성 도독으로 있다가 백제군 침략에 성은 함락되고 그 자신도 부인 고타소와 함께 죽었다. 삼국사기 권제5(신라본기 제5) 선덕왕 : 11년(642) 봄 정월에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토산물을 바쳤다. 가을 7월에 백제 왕 의자(義慈)가 군사를 크게 일으켜 나라 서쪽 40여 성을 쳐서 빼앗았다. 8월에 또 고구려와 함께 모의하여 당항성을 빼앗아 당나라와 통하는 길을 끊으려 하였..
태종대왕(太宗大王) 신라왕 김춘추가 죽어 받은 시호이며 태종무열왕 줄임말이다. 삼국유사 권 제1 기이 태종춘추공 : 제29대 태종대왕(太宗大王)은 이름이 춘추(春秋)이며 성(姓)은 김씨(金氏)다. 룡수(龍樹. 룡춘<龍春> 각간(角干)으로 추봉(追封)된 문흥대왕(文興大王) 아들이다. 어머니는 진평대왕(眞平大王) 딸 천명부인(天明夫人)이며 비(妃)는 문명황후(文明皇后) 문희(文姬)이니 곧 유신공(庾信公) 끝누이다.삼국사기 권 제8(신라본기 8) 신문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