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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추19

화랑세기 없이는 나올 수 없는 발상, 용춘과 비형랑 October 3, 2013 글인데, 오타 등을 바로잡는 수준에서 교정한다. 신라사 중고기 왕실 관련 인물로 용춘龍春이라는 사람이 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의하면, 이 사람은 신라 제25대 진지왕眞智王의 아들이요,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아버지다. 그의 행적에서 그가 화랑, 혹은 화랑이 이끄는 무리 일원이라는 언급은 단 한 군데도 없다. 용춘과 관련되는 인물로 오직 《삼국유사》에만 보이는 비형鼻荊이라는 인물이 있다. '도화녀 비형랑桃花女鼻荊郞' 이야기 주인공 중 마지막에 등장하는 인물로서, 그는 폐위된 뒤에 죽은 혼령이 된 진지왕이 도화녀라는 얼짱 여자와 관계해 낳은 '귀신 아들'로서, 주특기는 공공기술자을 이끄는 우두머리라는 점이다. 이런 그가 화랑 혹은 그가 이끄는 무리와 관계있다는 언급은 그 .. 2019. 10. 3.
단재가 오도한 역사, 사대주의자 김춘추 구한말 애국주의적 언론인의 대표주자 중 한 명인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1880~1936)는 나라가 존망의 위기에 처한 1908년 《독사신론讀史新論》 한 대목에서 이리 썼다. 그러나 "신라가 國小民弱(국소민약)하니 무엇으로 백제의 앙을 갚으랴. 오직 外援(외원)을 빌 뿐이다" 김춘추가 기둥 친 끝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고구려로 들어갔다…(중략)…그래서 김춘추가 바다를 건너 당에 들어가, 당태종을 보고 신라의 위급한 정형을 진숧고. 힘 닿는데까지 限하여 모든 卑辭厚禮(비사후례)를 가져 원병을 구할 새, 당조(唐朝) 군신의 뜻을 맞추기 위하여 子 법민·인문 등을 당에 留質(류질)하며, 본국의 의관을 버리고 당의 의관을 쓰며, 진흥왕 이래로 自記(자기)한 본국의 제왕년호를 버리고 당의 년호를 쓰며, 또 .. 2019. 4. 19.
김춘추의 여인들(3) 고타소 이 고타소(古陀炤)는 앞서 여러 번 다루었고, 그것이 등장하는 맥락이나 사건은 이곳 내 블로그에서 '고타소' 혹은 그의 남편 '품석'으로 검색하면 되거니와, 혹 그것들이 모두 필요하신 분들은 참고바란다. 고타소란 이름은 내 조사가 철저한지 아닌지는 자신이 없거니와, 일단 내 추산대로라면 《삼국사기》 권 제41 열전 제1 김유신上에 보이거니와, 그것이 등장하는 맥락은 다음과 같다. 선덕대왕 11년 임인(642)에 백제가 대량주(大梁州)를 격파했을 때, 춘추공(春秋公)의 딸 고타소랑(古陀炤娘)이 남편 품석(品釋)을 따라 죽었다. 춘추가 이를 한스럽게 여겨 고구려에 청병함으로써 백제에 대한 원한을 갚으려 하자 왕이 허락했다. 이것이 삼국시대 말기, 삼국 관계에서 매우 중대한 의미를 지니는 대량주, 곧 지금의 .. 2018. 10. 8.
태종무열왕릉비 Stele for Tomb of King Taejong Muyeol in GyeongjuNational Treasure No. 25경주 태종무열왕릉비 / 慶州太宗武烈王陵碑국보 제25호 / 받침돌 길이 330cm, 너비 249cm, 높이 83cm, 머릿돌 높이 110cm 신라 태종무열왕(재위 654~661)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기고자 그의 무덤 앞쪽 좌측에 세웠다. 비 몸돌은 없어지고 거북 모양 받침돌과 용을 새긴 머릿돌만 남았다. 받침돌에 조각된 돌 거북은 목을 높이 쳐들고 발을 기운차게 뻗으며 나아가는 모습을 표현했다. 머릿돌 좌우에는 여섯 마리 용이 서로 세 마리씩 엉켜 여의주를 문 모습을 조각했다. 앞면 중앙에는 무열왕 둘째아들 김인문이 썼을 것으로 추정되는 ‘태종무열대왕지비’라는 글을 돋을새김해 .. 2018. 4. 4.
지조(智照) 지소(智炤)라고도 한다. 태종무열왕 김춘추 딸이다. 어머니는 누구인지 언급이 없지만, 김유신 동생 문희일 가능성이 크다. 무열왕 2년(655)에 김유신에게 시집가서 원술 이하 여러 아들과 딸을 낳았다. 성덕왕 11년(712), 부인으로 책봉되었다. 삼국사기 권제5(신라본기 제5) 태종무열왕 : 2년(655)…겨울 10월에…왕의 딸 지조(智照)를 대각찬(大角飡) 유신에게 시집보냈다. 삼국사기 권제8권(신라본기 제8) 성덕왕 : 11년(712)...가을 8월, 김유신의 아내를 부인(夫人)으로 책봉하고 해마다 곡식 1천 섬을 주도록 하였다. ☞지소(智炤) 2018. 3. 24.
천명(天明) 신라 진평왕 딸로서 훗날 왕이 된 선덕의 언니로서, 룡수(龍樹)와 혼인해 김춘추를 낳았다. 남편 사후엔 룡수 동생 룡춘(龍春)과 살았다. 삼국사기 권 제5(신라본기 제5) 태종무열왕 :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춘추(春秋)이고 진지왕 아들인 이찬 용춘(龍春)의 아들이다. 어머니 천명부인(天明夫人)은 진평왕 딸이다. 삼국유사 권제1 왕력 : 제29대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은 이름이 춘추(春秋)이니 김씨다. 진지왕(眞智王) 아들인 룡춘(龍春) 탁문흥갈문왕(卓文興葛文王) 아들이다. 룡춘(龍春)은 룡수(龍樹)라고도 한다. 어머니는 천명부인(天明夫人)이니 시호가 문정태후(文貞太后)이니, 진평왕 딸이다. 동경잡기(東京雜記) 간오(刊誤) : 선덕왕 남편은 갈문왕(葛文王) 김인평(金仁平)이고, .. 2018. 3. 21.
고타소(古陀炤) 훗날 태종무열왕이 된 신라 김춘추 딸이다. 대야성 군주로 임명된 남편 김품석을 따라 임지에 있다가 백제군에 성이 함락될 때 피살됐다. 삼국사기 권 제41(열전 제1) 김유신上 : 선덕대왕 11년 임인(642)에 백제가 대량주(大梁州)를 격파했을 때, 춘추공(春秋公)의 딸 고타소랑(古陀炤娘)이 남편 품석(品釋)을 따라 죽었다. 춘추가 이를 한스럽게 여겨 고구려에 청병함으로써 백제의 원한을 갚으려 하자 왕이 허락했다. (춘추가) 막 떠나려 할 때 유신에게 말했다. “나는 공과 한 몸이고 나라의 팔다리입니다. 지금 내가 만약 저 곳에 들어가 해를 당하면, 공은 무심할 수 있겠습니까?” 유신이 말했다. “공이 만일 가서 돌아오지 않는다면 내 말발굽이 반드시 고구려·백제 두 임금의 뜰을 짓밟을 것이오. 진실로 그.. 2018. 3. 21.
고타소랑(古陀炤娘) 고타소(古陀炤)라는 여자를 높여 일컫는 말인 듯 ☞고타소(古陀炤) 2018. 3. 21.
김품석(金品釋) 신라 태종무열왕 김춘추 사위로서 선덕왕 11년(642), 이찬이자 대야성 도독으로 있다가 백제군 침략에 성은 함락되고 그 자신도 부인 고타소와 함께 죽었다. 삼국사기 권제5(신라본기 제5) 선덕왕 : 11년(642) 봄 정월에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토산물을 바쳤다. 가을 7월에 백제 왕 의자(義慈)가 군사를 크게 일으켜 나라 서쪽 40여 성을 쳐서 빼앗았다. 8월에 또 고구려와 함께 모의하여 당항성을 빼앗아 당나라와 통하는 길을 끊으려 하였으므로 왕이 사신을 보내 [당] 태종에게 위급함을 알렸다. 이 달에 백제 장군 윤충(允忠)이 군사를 이끌고 대야성(大耶城)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는데, 도독 이찬 품석(品釋)과 사지(舍知) 죽죽(竹竹)·용석(龍石) 등이 죽었다. 겨울에 왕이 장차 백제를 쳐서 대야성에서의 .. 2018. 3. 21.
태종대왕(太宗大王) 신라왕 김춘추가 죽어 받은 시호이며 태종무열왕 줄임말이다. 삼국유사 권 제1 기이 태종춘추공 : 제29대 태종대왕(太宗大王)은 이름이 춘추(春秋)이며 성(姓)은 김씨(金氏)다. 룡수(龍樹. 룡춘 각간(角干)으로 추봉(追封)된 문흥대왕(文興大王) 아들이다. 어머니는 진평대왕(眞平大王) 딸 천명부인(天明夫人)이며 비(妃)는 문명황후(文明皇后) 문희(文姬)이니 곧 유신공(庾信公) 끝누이다. 삼국사기 권 제8(신라본기 8) 신문왕 : 7년(687)…여름 4월에 음성서(音聲署)의 장관을 고쳐 경(卿)이라 하였다. 대신을 조묘(祖廟)에 보내 제사를 올리고 아뢰었다. “왕 아무개는 머리 숙여 재배(再拜)하고 삼가 태조대왕(太祖大王), 진지대왕(眞智大王), 문흥대왕(文興大王), 태종대왕(太宗大王), 문무대왕(文武大王).. 2018. 3. 6.
지조(智照) 삼국사기 권 제5(신라본기 제5) 태종무열왕 : 2년(655)…겨울 10월에…왕의 딸 지조(智照)를 대각찬(大角) 유신에게 시집보냈다. ☞지소(智炤) 2018. 3. 5.
키루스대왕과 보희의 오줌꿈 천병희 선생 한국어 번역본으로 헤로도토스 《역사》를 읽다가 애매한 점이 있어 영어 번역본을 보니 자칫하면 큰 실수를 할 뻔 했는데 바로잡았다. 아래 영어 번역본은 아케메네스 왕조 건국시조인 키루스 2세 탄생에 얽힌 대목 기술이거니와, 예서 저 유명한 오줌 꿈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의 어머니 만다네가 오줌을 엄청 싸고, 그 오줌물이 흘러 국도를 잠기게 하고, 더 나아가 온 아시아를 물바다로 만들었다는 꿈 말이다. 한데 한국어 역본을 보면, 이런 꿈을 꾼 사람이 애매하게 처리되어 있다. 이 영역본을 보면 이 꿈은 만다네 자신이 아니라, 만나네 아버지, 다시 말해 키루스 대왕 외할아버지가 꾸었다. 이렇게 해야만 왜 그의 외할아버지가 이런 태몽을 안고 태어난 외손주 키루스를 죽이려 했는지가 명확해진다. 오줌에 .. 2018. 2. 17.
[추적, 한국사 그 순간 -11-] 이세민-김춘추 외교 밀약 문무왕, 초강대국 唐에 당당히 맞서 한민족 토대 마련[중앙선데이] 입력 2017.04.02 02:39 수정 2017.04.02 03:47 | 525호 23면 신라가 일통삼한(一統三韓)을 위해 국운을 건 전쟁에 나섰을 때, 당(唐)은 유일한 세계제국이었다. 당시 당은 냉전시대 동서 양쪽을 양분한 맹주들인 미국과 구소련을 합친 것보다 더 큰 힘을 비축한 세계제국이었다. 혼자 힘으론 숙적 백제와 고구려를 상대하기 버거웠던 신라는 이 세계제국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일통삼한 전쟁으로 나아가기로 하고, 이를 위한 가속페달을 밟기 시작한다. 당과 연합한 신라는 660년 백제를 정복하고, 668년에는 마침내 고구려마저 쓰러뜨림으로써 통일을 달성한다. ‘평양 이남의 백제 땅은 신라 차지’밀약 깨고 야욕 드러낸 당에 맞서.. 2018. 1. 20.
[추적, 한국사 그 순간 -10-] 김춘추 부인 문희 오빠 김유신 빼다박은 야망가, 남편 죽자 태후 돼 권력 농단[중앙선데이] 입력 2017.03.05 02:03 | 521호 23면 페르시아 제국을 반석 위에 올려놓은 군주로 키루스(Cyrus) 2세, 또는 키루스 대제라 일컫는 인물이 있다. 기원전 576년경 제위에 올라 기원전 530년에 사망했다. 페르시아 아케메네스(Achaemenes) 왕조를 개창한 그는 성서에는 고레스 왕으로 등장한다. 그의 치세에 페르시아는 메디아와 신바빌로니아, 리디아를 무너뜨리고 중동의 패자가 된다.영웅에게는 어울리는 탄생담이 있게 마련이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언니의 오줌 꿈 사 춘추와 결혼큰아들 법민은 통일 후 당 축출나머지 아들 8명은 각간 등 지내수단 방법 안 가리고 목표 .. 2018. 1. 20.
[추적, 한국사 그 순간 -7-] 태종무열왕 출생의 비밀 김춘추 아버지 용수·용춘은 형제 사이 [중앙선데이] 입력 2016.12.18 00:42 | 510호 23면 서기 654년 봄, 진덕여왕이 죽자 신라엔 성골(聖骨)이 더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선덕여왕 즉위(632년) 때부터 남자 성골이 씨가 말랐다. 하는 수 없이 마지막 성골 여인인 선덕과 진덕을 차례로 왕으로 세운 것이었는데,이는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았다. 신분제 사회인 신라에서 성골은 품계가 없는, 더 정확히는 품계를 초월하는 신분이었다. 그 다음 신분인 진골(眞骨)은 신하들이 차지했다. 성골이 멸종했으므로 신하 중 누군가가 왕위에 올라야 했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김춘추다. 그의 후견인은 처남 매부가 되어 끈끈한 인연을 다진 맹장 김유신. 처남의 절대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김춘추가 마침내 권좌를 차지.. 2018. 1. 20.
[추적, 한국사 그 순간 -3-] 대야성 전투서 딸 잃은 김춘추 백제 멸망, 김춘추 사위의 치정이 부른 복수극[중앙선데이] 입력 2016.08.21 00:46 | 493호 23면 백제는 660년 음력 가을 7월 18일, 사비성(泗?城)에서 북쪽 웅진성(熊津城)으로 도망친 의자왕이 나당(羅唐)연합군에 항복함으로써 700년 사직에 종언을 고했다. 이때 일은 『삼국사기』 신라 태종무열왕본기 7년(660)조에 자세하게 나와있다. 이에 의하면 의자왕은 이달 13일 포위망을 뚫고서 가까운 신하들만 데리고 야음을 타 웅진성으로 들어갔다. 현지에 남은 의자왕의 아들 융(隆)은 대좌평 천복(千福) 등과 함께 나와 항복했다. 그리고 닷새가 지난 18일, 의자왕마저 태자를 데리고 웅진성을 나와 항복했다. 태종무열왕 김춘추는 “(같은 달) 29일 금돌성(今突城)에서 소부리성(所夫里城)에 .. 2018. 1. 20.
[추적, 한국사 그 순간 -2-] 김유신의 김춘추 겁박 춘추가 임신한 문희와 혼인 미적거리자 “태워죽여라”[중앙선데이] 입력 2016.07.24 00:44 | 489호 23면 김유신은 월경(月經)이라는 난관을 눈부신 ‘대타 작전’으로 돌파했다. 애초엔 큰 누이동생 보희(寶姬)를 김춘추와 짝지어줄 요량이었지만 ‘거사(巨事)’를 준비한 그날 보희가 월경 중임을 알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작은누이 문희(文姬)를 찢긴 옷고름을 걸치고 바느질을 기다리는 김춘추가 있는 방으로 밀어 넣었다. 방에 들어설 때 문희 모습을 『삼국사기』는 “담백한 화장과 산뜻한 옷차림과 빛나는 요염함이 사람의 눈을 부시게 했다(淡粧輕服光艶炤人)”고 묘사했다. 그 아름다움에 넋이 나간 22세 청년 김춘추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에 김춘추가 “혼인하자고 해서 혼례식을 치르고 이내 임신해 아들을.. 2018. 1. 20.
[추적, 한국사 그 순간 -1-] 김춘추와 문희의 혼인 김유신, 춘추 방에 언니 대신 동생 들여보낸 까닭[중앙선데이] 입력 2016.06.26 00:40 | 485호 23면 단재 신채호(1880~1936)는 이민족인 당나라를 끌어들여 같은 혈통인 백제와 고구려를 멸하고는 불완전한 민족 통일을 달성했다는 이유로 김춘추와 김유신(595~673)을 싸잡아 비난했다. “김유신은 지용(智勇·지혜와 용기) 있는 명장이 아니요, 음험취한(陰險鷲悍)한 정치가며, 그 평생의 대공(大功)이 전장에 있지 않고 음모로 인국(隣國)을 난(亂)한 자”라고 했다. 음험취한은 요컨대 음흉하기 짝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단재는 그 보기로 그가 김춘추와 처남 매부가 된 사연인 소위 ‘축국(蹴鞠) 사건’을 들었다. 혹독하기 그지없는 이런 평가는 그 이전까지 천 수백 년가량 지속된 만고의 .. 2018. 1. 20.
[김태식의 독사일기(讀史日記)] 8편 잘라버린 남편 ‘귀두’를 음부에 제사지낸 아내 注) 이는 문화유산신문 기고문으로 기사입력시간은 2016년04월11일 13시55분이다. 1. 서악동의 신라 시대 귀부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무덤을 비롯한 중고시대 신라 왕릉 밀집지역인 서악고분군에는 도로를 사이에 두고 그 전면에 봉분 두 기가 붙었으니, 하나는 김춘추 9세손으로 신라 하대 인물인 김양(金陽)이 857년 향년 50세로 졸하고는 묻힌 곳이라고 하며, 다른 하나는 김춘추의 둘째아들 김인문(金仁問) 묘라고 전한다. 이 두 봉문 앞에는 몸돌과 머릿돌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그것을 받쳤을 거북 모양 받침돌만 덩그러니 남았으니 이를 서악동 귀부(龜趺)라 한다. 보물 제70호인 이 귀부에 대한 현지 안내판은 김인문 묘비를 받치던 것이라 기술한다. 이 지역에 기반을 둔 역사학도 중에는 김양 묘와 함께 선.. 2018. 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