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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신라가 국소민약하니 무엇으로 백제의 앙殃을 갚으랴. 오직 외원外援을 빌 뿐이다”
김춘추가 기둥 친 끝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고구려로 들어갔다(458쪽)...
그래서 김춘추가 바다를 건너 당에 들어가, 당 태종을 보고 신라의 위급한 정형을 진숧고. 힘 닿는 데까지 한限하여 모든 비사후례卑辭厚禮(459)를 가져 원병을 구할 새,
당조唐朝 군신의 뜻을 맞추기 위하여 자 법민·인문 등을 당에 유질留質하며,
본국의 의관을 버리고 당의 의관을 쓰며, 진흥왕 이래로 自記한 본국의 제왕년호를 버리고 당의 년호를 쓰며,
또 당태종이 편찬한 진서晉書와 그 산증刪增한 사기史記·한서漢書·삼국지三國志 등 - 그 중의 조선에 모멸한 말이 많은 문자를 가져다가 그대로 본국에 유전하여, 사대주의의 병균을 전파하기 시작하니라.(460쪽)
是以로 신라 태종대왕이 백제를 圖코자 하매, 위선爲先 경병輕兵으로 대판大坂에 직입直入하여
기其 소혈巢穴을 복覆하고 성하맹城下盟을 결한 후에 남방(즉 백제)에 至하였으니, 오호라, 영웅의 소견이 此에 及할진져.
신채호, 독사신론, 1908, 대한매일신보(역주 조선상고문화사, -독사신론조선사연구초- 단재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 47~48쪽, 1998.)
***
이 사대주의라는 말이 근대 이후가 아니면 있을 수가 없는 발상이다.
저 단재 시대에는 민족이 곧 해방이었고, 그것이 곧 독립이었다.
문제는 백년이 지난 지금도 저 논리가 먹힌다는 것 아니겠는가?
#김춘추_사대주의 #김춘추_신채호 #단재역사학 #민족주의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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