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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월7

남월왕묘南越王墓 (1) 구조 이 평면도를 보면 이 남월왕묘는 묘도墓道, 전실前室, 후실後室의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며, 전실과 후실은 각각 양쪽에 측실側室을 둔 구조임을 본다. 이는 같은 시대 한대漢代 지배층 계층의 무덤과 근간이 통하는 것으로, 짙은 한문화 영향을 풍긴다. 전체 배치 방향을 보면 남북 장축이라, 북쪽 정중앙 지점에 이 무덤 주인공이 위치한다. 이는 경복궁 배치를 보면 이해가 훨씬 쉽다. 경복궁 경역 배치를 보면 전체 중간쯤을 동서 방향으로 짤라서 그 앞쪽이 왕이 국가 공식 정무를 보는 公의 공간인데 반해 뒤쪽은 사적 공간이라, 이 뒤는 실은 왕이 주인이 아니라 그 마누라 차지다. 따라서 경복궁 전체 배치를 보면 왕은 언제나 그 북쪽 중앙, 곧 근정전 자리를 차지하는데, 이래야 태양과 마주보며, 그래야 이 절대 군.. 2024. 5. 13.
광동성 광주서 출현한 남월왕궁南越王宮 편집자주) 이하는 南越王博物院王宮展區 위키피디아 중문 번체판을 전문번역한 것이다. 누누이 말하지만, 이 남월국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서는 위만조선도, 낙랑도 이해할 수 없다!   남월왕박물원왕궁전구南越王博物院王宮展區는 본래 남월왕궁박물관南越王宮博物館이라 한 문화시설로,중국中國 광동성廣東省 광주시廣州市 월수구越秀區 중산서로中山四路 316호號에 위치하는 서한남월국궁서유지西漢南越國國宮署遺址를 주제로 삼는 박물관이라총면적 15만㎡로, 포괄하는 구역은 어화원유지御花園遺址、남월궁전유지南越國宮殿遺址、남한국궁전유지南漢國宮殿遺址 및 각 역대 왕조 관서유지官署遺址 등등이다.이 중 어화원유지御花園遺址는 1995년 발견되었으니, 이곳에서는 방지方池、만월지彎月池、곡거曲渠、평교平橋 및 보석步石 등 궁전원림宮殿園林 관련 흔적이 발.. 2024. 5. 13.
이들 남월국 유물이 곧 위만조선 유물이다 유물로 남월국 시대를 본다. 이에서 소개하는 유물 중에는 남월국 이후 것이 있기는 하나 다 그 유습이다. 출토지는 남월국 도읍이 있던 광동성 광주 일대다. 왜 이런 유물들을 봐야 하는가? 위만조선 때문이다. 위만조선도 이런 유물이 나와야 한다. 곧 예서 소개하는 남월국 유물이 위만조선 유물이다. 이걸 모르니 위만조선을 둘러싼 각종 헛소리가 남발한다. 내가 매양 말하듯이 서한 유물과 서한시대에 해당하는 유물은 반딧불과 번갯불의 차이다. 중국학계는 일부러 이 둘을 혼용착종한다. 이른바 하나의 중국을 만들어내기 위한 역사고고학의 음모다. 이 공작을 알고서도 속아야 하겠는가? 이 대구帶鉤는 구체鉤體가 부리가 긴 큰 기러기를 형상화한 것이라, 머리는 뒤를 향하고, 긴 부리는 몸체에서 뺀 상태이며, 양 날개는 움츠.. 2024. 5. 12.
未央의 경우, 한대漢代 유물 vs. 한대에 해당하는 유물 '未央미앙'이라는 글자를 적은 그릇이다. 출토지는 남월국南越國 궁서유지宮署遺址 남월국 문화층이다. 서안 혹은 낙양에서 출토된 것과 같은 유물이 발견된다 해서 그것을 한대漢代 유적 혹은 유물이라 설명하는 도식은 재앙이다. 그래서 저 미앙이라는 글자가 적힌 유물이 출토한다 해서, 그 만든 시기가 한대漢代에 해당한다 해서, 그 양식이나 제조기법이 낙양이나 장안에서 만든 한대의 그것과 똑같다 해서, 그래서 저런 유물을 출토하는 데가 漢나라 영역인가? 아니면 장안성 미앙궁未央宮 분관이란 말인가? 내가 늘 말하듯이 한대漢代 유적 유물과 한대에 해당하는 시기에 만든 유적 유물은 반딧불과 번갯불 차이만큼 크다. 이는 고고학 기본 중의 기본인데 둘을 혼동하는 망말이 다름 아닌 한국고고학에 횡행한다. 장안이나 낙양에서 보.. 2024. 3. 2.
《내가 보는 위만조선과 낙랑》(2) 내가 광동성으로 간 까닭 내가 처음으로 광동성 광주로 남월국 유적 답사를 가기는 2007년 무렵이 아닌가 하는데 자료를 찾아봐야겠다. 내가 이곳을 찾은 까닭은 그 직전 요서 지역 탐방에서 감발한 바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심양에서 출발해 오한기 적봉을 거쳐 산해관에 이른 이때 탐방에서 나는 말로만 듣던 진황도와 인근 수중현 일대 소위 진·한秦漢 시대 진시황·한무제 시대 행궁行宮 유지를 둘러봤다. 금산취며 흑산두 일대에서 중국 고고학이 찾았다는 이들 행궁 유적을 보니 내가 놀란 점은 첫째, 그들 행궁이 조영·운영된 시기가 위만조선과 거의 겹치고, 둘째 그 위상이 행궁이라는 말에 어울리게끔 높았으며, 셋째 유구·유적이 소위 현지의 토속미를 풍기기는 했지만 완연한 진·한의 소위 중국풍이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며, 넷째.. 2023. 6. 14.
《내가 보는 위만조선과 낙랑》(1) 남월국은 위만조선의 투사물이다 지금 그 정확한 영역, 혹은 중심지가 논란인 위만조선이 존재하던 무렵, 중국 남방 지금의 광동성 광주 일대에는 남월南越이라는 왕조가 존재했다. 이 남월은 여러모로 위만조선과 일란성 쌍둥이를 방불하는 판박이다. 첫째, 위만조선이 중국계 연燕나라 망명객인 위만이라는 자가 수립한 왕조이듯이, 남월 역시 지금의 산동성 출신인 조타라는 자가 현지 관리로 파견되어 일하다가 그 자리에서 자립해 이룩한 왕조 국가다. 둘째, 그런 까닭에 위만조선이나 남월은 모두 현지인과 중국계 이민자들의 혼합 정권이라는 성격을 갖는다. 하이브리드 왕조인 셈이다. 셋째, 그 성립 시기 역시 거의 같다. 두 왕조 모두 시황제에 의한 진秦 제국의 강력한 중앙집권적 권력이 붕괴하면서 우후죽순으로 그 영역 혹은 주변부에서 생겨난 독립정권들 중 .. 2023.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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