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본문 바로가기

백제

고대 동아시아 역사를 아주 쉽게 이해하는 법 古代東アジアの歴史を非常に簡単に理解する方法百濟 = Lotte 王國 昆支王 = 辛格浩(重光武雄)武寧王 = 辛東彬(重光昭夫)金正恩 = 淵蓋蘇文勞動新聞 = 日本書紀 唐 = 美合衆國 唐太宗 李世民 = Donald Trump 美合衆國大統領 朝貢·冊封 = 核廢棄·安全保障
백제 무령왕릉 출토 지석과 매지권 판독 재고( 百濟武寧王陵出土誌石と買地券判讀再考) 백제 무령왕릉 출토 지석과 매지권 판독 재고百濟武寧王陵出土誌石と買地券判讀再考김영관 忠北大學校 史學科 敎授出典 : 《韓國古代史探究》 30, 韓國古代史探究學會, 2018, 12. 【抄錄】이 논문은 1971년 발굴된 이후 일치된 견해를 내지 못한 부령왕릉 출토 왕과 왕비의 지석과 매지권을 새롭게 판독하고 해석한 결과이다. 그 결과 무령왕 지석의 맨 마지막 글자 한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정확하게 판독할 수 있었다. 무령왕 지석의 마지막 글자는 '穴‘..
부여 부소산성 출토 금동광배(扶餘扶蘇山城出土金銅光背)에 대한 나의 중간 결론 1. 扶餘 扶蘇山城 東門址 出土 金銅光背 뒷면 銘文은 ‘何多宜藏治佛’이며, 그 意味는 “하다의장(何多宜藏)이라는 사람이 佛像을 造成했다”는 뜻이다. 이를 從來에는 ‘何多宜藏法師’라고 읽은 것은 明白한 誤讀이다. 2. 이 金銅光背를 裝着한 佛像을 만든 ‘何多宜藏’은 6~7世紀, 主로 佛像을 만드는 일에 專門的으로 從事한 匠人 姓과 이름이다. ‘何多’가 姓氏다. 3. 이는 古代 日本에 登場하는 韓半島 渡來系 有力 家門 중 하나인 ‘하타..
퇴락한 사당에서 생각하는 제갈량 한시, 계절의 노래(169)무후 사당(武侯廟)(사당은 백제성 서쪽 교외에 있다<廟在白帝西郊>) 당 두보 / 김영문 選譯評남은 사당에단청은 퇴락텅 빈 산엔초목만 가득후주를 떠나는 소리들려오나니다시는 남양 땅에눕지 못했네遺廟丹靑落, 空山草木長. 猶聞辭後主, 不復臥南陽.중국 남양(南陽), 성도(成都), 양양(襄陽), 기주(夔州) 등지에 모두 제갈량 사당이 있다. 이 시에 나오는 제갈량 사당은 기주에 있는 고묘(古廟)다. 옛 백제성 서쪽..
연신(燕信) 삼국사기 권 제18(고구려본기 제6) 장수왕본기 : 66년(478) 백제의 연신(燕信)이 항복해 왔다.
[추적, 한국사 그 순간 -13-] 도미 부인의 기지 정절 탐하는 개로왕에게 월경 핑계 대고 도망쳐[중앙선데이] 입력 2017.06.04 01:44 수정 2017.06.04 16:23 | 534호 23면  서기 475년. 이 해는 백제 제21대 개로왕(蓋然性鹵王) 재위 21년째요, 고구려는 100세 장수를 누린 장수왕 재위 63년째가 되는 해였다. 『삼국사기』 고구려 장수왕본기를 보면 “(가을 9월에) 왕이 군사 3만을 이끌고 백제를 들이쳐 그 왕이 도읍한 한성(漢城)을 함몰하고 백제..
[추적, 한국사 그 순간 -3-] 대야성 전투서 딸 잃은 김춘추 백제 멸망, 김춘추 사위의 치정이 부른 복수극[중앙선데이] 입력 2016.08.21 00:46 | 493호 23면  백제는 660년 음력 가을 7월 18일, 사비성(泗?城)에서 북쪽 웅진성(熊津城)으로 도망친 의자왕이 나당(羅唐)연합군에 항복함으로써 700년 사직에 종언을 고했다. 이때 일은 『삼국사기』 신라 태종무열왕본기 7년(660)조에 자세하게 나와있다. 이에 의하면 의자왕은 이달 13일 포위망을 뚫고서 가까운 신하들만 데리고..
[김태식의 독사일기(讀史日記)] 5편 기자조선과 백제, 그 괴이한 조우 “미륵사 석탑은 백성의 고혈 짜낸 죄악” 注) 이는 문화유산신문 기고문으로 기사입력시간은 2016년03월09일 13시55분이다.  《삼국유사》는 승려 일연이 대부분 찬술한 가운데 그 일부는 그의 제자 무극(無極)이라는 승려가 보충했다는 주장이 이제는 적어도 학계에서는 대세를 이룬다. 하지만 그렇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목도 군데군데 있다. 특히 그 맨 앞에 붙은 가야를 포함한 네 나라 왕들과 후삼국 왕들의 계보인 왕력(王曆)이 그 이하 본문과는 어떤 관계인지는 적지 않은 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