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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대전3

북한산 비봉을 앞두고 형제봉을 타고 올라 대성문 대남문 지나 문수봉을 등정하곤 능선을 따라 비봉 공략에 나섰다. 애초 비봉 생방은 계획에 없었고 하기사 내가 오늘 이 코스를 탈 줄도 몰랐다. 하도 북한산성 본 지 오래라 대성문 대남문만 눈도장 찍고 내려올 생각이었다. 걷다보니 어정쩡한 자리가 되어 승가사 방향으로 하산 코슬 잡았다. 내친 김에 하도 진흥왕 순수비 두고 헛소리가 횡행해 이참에 좃또버그 힘 잠시 빌려 그것을 교정하고 싶었다. 저 비봉 순수비 한국고대사 한다는 자들은 한번쯤 언급하고 지나가나 미안하지만 저 현장에 올라본 놈 몇놈 안된다. 내가 안다. 내가 저 순수비 논문을 백산학보에 공간한 것이 아마 2003년 무렵일 것이다. 이것이 나는 높은 산에 올라 천신지기를 제사한 봉선대전의 기념물로 보았다. 첨엔 콧방귀 .. 2020. 9. 18.
당唐 고종高宗 봉선대전封禪大典, 그 예행 의식으로서의 취리산 회맹 *** 이 글은 경기대학교 박물관 고고학연구실 編 《碧山李根洙敎授回甲紀念博物館叢書 韓國古代文化硏究》, 백산자료원, 2005, 10에 수록되었다. 찾는 사람이 가끔 있으나, 단행본인 까닭에 별도 pdf가 없어 그 원고 파일을 첨부한다. 다만 혹 인용이 필요한 경우가 있을지도 몰라, 그 쪽수를 파란색으로 표시해 둔다. 당唐 고종高宗 봉선대전封禪大典, 그 예행 의식으로서의 취리산 회맹- 7세기 중반 동아시아 국제질서, 그 기축基軸의 一 탐구 - 김태식 ---------------------------------Ⅰ. 연이은 山上의 祭典Ⅱ. 두 차례의 羅濟 會盟Ⅲ. 마침내 이룩한 封禪의 꿈Ⅳ. 倭國에 간 郭務悰Ⅴ. 태산 봉선제의 중간기착지로서의 취리산 ----------------------------------.. 2019. 10. 23.
북한산 비봉 진흥왕순수비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 논문 쓴다고 비봉碑峰에 몇번 올랐다. 보다시피 온통 암반이라, 이 일대에서는 조난사고가 요즘도 심심찮고, 사망에 이르는 일이 많다. 그만큼 험준한 곳이다. 이건 촬영일이 2011년 10월 16일이라고 찍힌다. 그 전에 이곳에 처음 올랐을 적에 나는 진흥왕 순수비眞興王巡狩碑에 대한 기존 해설이 모조리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종래의 압도적인 견해로는 신라 진흥왕이 유가적 왕도정치儒家的王道政治를 표방하기 위해 북한산으로 순수巡狩를 하고는 그 기념으로 이 비석을 세웠다는 것이다. 내가 본 북한산 비봉 현장은 유가적 왕도정치를 표방하거나, 선전할 수 없는 험준한 바위산이었다. 그렇다면 왜 진흥왕은 이런 데 행차했는가? 천신天神과 지기地祇를 제사하기 위함이었다. 특히 천신을 제사하기 위해서는 하늘과 가.. 2019. 10.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