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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북한산 비봉 진흥왕순수비에 올라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9.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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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왕 순수비 논문 쓴다고 비봉碑峰에 몇번 올랐다. 보다시피 온통 암반이라, 이 일대에서는 조난사고가 요즘도 심심찮고, 사망에 이르는 일이 많다. 그만큼 험준한 곳이다. 


이건 촬영일이 2011년 10월 16일이라고 찍힌다. 

그 전에 이곳에 처음 올랐을 적에 나는 진흥왕 순수비眞興王巡狩碑에 대한 기존 해설이 모조리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종래의 압도적인 견해로는 신라 진흥왕이 유가적 왕도정치儒家的王道政治를 표방하기 위해 북한산으로 순수巡狩를 하고는 그 기념으로 이 비석을 세웠다는 것이다. 

내가 본 북한산 비봉 현장은 유가적 왕도정치를 표방하거나, 선전할 수 없는 험준한 바위산이었다. 

그렇다면 왜 진흥왕은 이런 데 행차했는가? 천신天神과 지기地祇를 제사하기 위함이었다. 특히 천신을 제사하기 위해서는 하늘과 가까운 곳이어야 했다. 진흥왕은 산상 제전山上祭典을 거행한 것이다. 

산상에서 천신과 지기를 제사하는 의식이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봉선封禪이다. 

그런 문제 의식을 담아 공간한 논문이  「봉선대전封禪大典, 그 기념물로서의 진흥왕 ‘순수비’」, 『백산학보』 68, 2004 라는 글이다. 

나는 이 글을 진흥왕순수비에 대한 김정희 의래 150년간의 통설을 뒤집어 엎었다고 자신했다. 

나는 내 주장이 사실이거나 그에 가깝기를 바라지만, 학문을 하는 목적은 새로운 관점의 제시라고 본다. 

나만의 착각인지 모르나, 정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던 진흥왕 순수비 연구는 이후 폭발적으로 늘었으니, 이 논문 이래 순수비에 대한 관점은 그 입비 목적에 집중하거니와, 그에서 주로 김태식을 씹기에 여념이 없으니, 나는 내가 할 일은 다 했다고 본다.

( October 18, 2015 글을 손질했다. ) 






新羅眞興王はなぜ険しい山の頂に上がったのか?


眞興王巡狩碑関連論文を書くために碑峰に数回上がった。写真から分かるように一面巖盤と、この一帶で遭難事故が最近も退屈せぬように起こり、死亡に至ることが多い。それだけ険しいところである。


この写真は、撮影日が2011年10月16日である。


その前に、ここに初めて上がった時に、私は眞興王巡狩碑に對し、既存解說が全部間違っていると思った。


從來の壓倒的な見方では、新羅眞興王が儒家的王道政治を標榜するために北漢山に巡狩をしは、その記念に、この碑を立てたのである。


私が見た北漢山碑峰現場は儒家的王道政治を標榜したり、宣傳することはできない險峻た岩山だった。


では、なぜ眞興王は、このようなところに行次したか天神と地祇を祭祀するためだった。特に天神を祭祀するためには、空の近くでなければならいた。眞興王は山上祭典を擧行たものである。


山上から天神や地祇を祭祀するritualが何であるかそれがまさに封禪ある。


そのような問題意識を込めて公刊した論文が「封禪大典、その記念物としての眞興王」巡狩碑」」、「白山學報」68、2004という文である。


私はこの論文を眞興王巡狩碑の秋史金正喜(1786〜1856)以來150年間の通説を覆したと自信を見せた。


私は私の主張が事実であるか、それに近いことを望まが、學問をする目的は、新たな視点の提示と​​思う。


自分の勘違いなのか分からないが、渋滞状態を脱するなかった眞興王巡狩碑研究は、その後爆発的に増えたので、この論文以来巡狩碑の視点は、その立碑目的に集中ハゴニワ、彼から主に金台植を批判するに餘念がないので、私は私が仕事だたと思う。


(October 18、2015文を手入れ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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