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시간12 직렬의 시간과 순환의 시간 지금의 우리는 시간을 직렬로 놓는다. 다시말해 서기라는 개념을 도입해 하나씩 숫자를 보태어간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야소교적 전통이다. 이게 백년전만 거슬러가면 복잡해 순환의 인식 성향이 강하다. 특히 육십갑자로 돈다고 여긴 형적이 많다. 하지만 직렬의 인식도 더러 있기는 했으니 조선왕조 건국 몇 년이라는 식의 시간 관념도 보인다. (2014. 2. 1) *** 시간은 가는가 도는가? 헤밍웨이가 해는 또 다시 떠오른다, The sun also rises 라 외쳤을 때는 순환이라는 개념이 강하지만 그렇다 해서 시간이 흘러가지 아니한 것은 아니다. 2024. 2. 2. 시간의 발명, 주기의 탄생 시간이란 요물이 있다. 나는 언젠가부터 이 시간이란 요물을 때려잡고 싶었다. 시간의 탄생은 주기周期의 발견에서 비롯한다. 지금 우리는 하루를 24시로 나누지만 100년전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건 개소리다. 그리고 하루를 오전 오후로 나누지만 오전 오후라는 말도 나는 적어도 전근대 문헌에서는 거의 보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는 계절의 변화에 맞추어 1년을 구분하지만 이것이 과연 통시대 통간으로 통하는지 자신은 없으나 아마도 아닐 것으로 본다. 무엇인가가 무엇을 고리로 해서 무엇을 단위로 반복하는 주기의 발견이야말로 시간 탄생의 지름길일진대 이에서 年이 탄생하고, 달의 주기를 관찰함으로써 月이 탄생하며 日의 주기발작을 통해 하루가 탄생한다. 시간...이는 아마도 양놈 철학에서는 꽤나 많이 궁구한 주제로 알거니와.. 2023. 7. 13. 한 눈 팔았다가 다시 오니 수국水菊이 피기 시작했다. 수송동 공장 앞 다방 우드앤브릭은 내 단골이라 출건길 아침마다 에소프레소 한 모타리 집어심키는 곳이라 어찌하여 요즘엔 인근 다른 다방 쩜장이 하도 이뻐 그 짝에 출몰하다 옛정 잊지못해 행차했더니 작년에 피고진 수국이 다시 저 모양이더라. 내가 살핀대서 내가 피란대서 내가 지란대서 피어야할 수국이 안 피는 것도 아니요 져야할 수국이 도로 피는 것도 아니더라. 2020. 6. 4. 시대가 혼란하면 시간도 혼란한다 《권력이 시간을 지배하면 이 꼴이 벌어진다》책력 이야기 남송대南宋代 사람 주자지周紫芝(1082~1155)라는 사람이 쓴 《죽파시화竹坡詩話》라는 데 나오는 이야기다. 근래 조정에 (안 좋은) 일이 많아 군현郡縣에서 달력을 반포하지 않으니 지방마다 날짜가 같지 않았다. 주희진朱希真이 광중廣中으로 피신하고는 《소진행小盡行》이라는 시 한 편을 지었는데, 그에서 읊기를 藤州三月作小盡, 등주에선 3월을 작은달로 삼고 梧州三月作大盡。 오주에선 3월을 큰달로 여기네 哀哉官曆今不頒, 슬프다, 관에서 달력을 반포하지 않은 지금 憶昔昇平淚成陣。 지난 승평 시절 떠올리니 눈물 쏟아지네 我今何異桃源人, 내가 지금 도화원 사람과 무엇이 다를꼬 落葉為秋花作春。 잎이 지면 가을이요 꽃피면 봄이네 但恨未能與世隔, 인간세계와 떨어지지 .. 2020. 1. 16. 김일권 박사의 ‘신라 금석문과 신라본기의 천문역법사 고찰’ 토론문 *** 내 기억에는 2013년 7월, 신라사학회 발표문을 토론했는데, 토론 대상인 이 논문은 〈신라 금석문과 「신라본기」의 천문역법사 고찰〉 (Silla Astronomy and Almanac on the Silla-bongi and Epigraphs) 이라는 글이다. 이 논문은 훗날 동국대학교(경주캠퍼스) 신라문화연구소 《신라문화》 42호에 같은 제목으로 실렸다. 김일권 박사의 ‘신라 금석문과 「신라본기」의 천문역법사 고찰’ 토론문 김태식 연합뉴스 발표자는 평소 장대한 논문을 즐기는 편이거니와 이번 논문 또한 그에 해당해 실로 장대하다. 발표문 성격을 보니 신라 천문역법사에 대한 통사를 겨냥한 느낌을 준다. 글은 세부로 들어가면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으니 첫째가 ‘역법’이고 두 번째가 ‘시간’이.. 2019. 7. 19. 한주의 꺾기도 수요집회 지금 맡은 일이 실은 한주한주가 고역이다. 회사에 쿡 쳐박혀 있어야 하는 일이 여간 고역이 아닌 까닭이다. 틈나는 대로 운동은 한다지만 나오는 배를 따라잡을 수가 없는 지경이다. 그만큼 편집국 부장은 육체적으로도 고역이다. 현장이랍시며 맨날 싸돌아다니던 사람한테는 그 고통이 배가한다. 그런 한주마다 딱 그 어중간인 매주 수요일이면 수송동 공장이 시끌시끌하다. 지금은 재건축을 위해 옆 건물로 잠시 이사간 주한일본대사관이 지척이라 어김없이 이날이면 수요집회가 열리는 까닭이다. 그 확성기 웅성임은 나한테는 한주가 고비를 넘는다는 복음이다. 수요집회를 고비로 비로소 주말이 저짝 너머로 빼곡히 정수리를 보이기 시작한다. 이 수요집회를 보면서 아! 이번주도 저무는구나 하는 시침을 나는 본다. 오늘 낮에 수요집회가 .. 2019. 6. 19. 이전 1 2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