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여진6 산서성 원곡에서 발견됐다는 금나라 시대 무덤 산서성고고연구원山西省考古研究院이 지난 3월 14일 새로운 발굴성과 하나를 공개했으니, 이르기를 산서성山西省 운성시运城市 원곡현垣曲县 신성진新城镇 동봉산촌东峰山村에서 금대 묘장金代墓葬을 발굴한 결과 묘장을 만든 시기가 금나라 명창明昌 연간임을 명확히 보여주는 매지권买地券을 확인했다는 것이니, “明昌”은 금金나라 장종章宗 시대 연호(1190~1196)라, 이번 발굴을 통해 동시대 문화를 연구하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2023. 4. 9. 서울 영하 14도를 자랑하는 같은 시각 삼지연은 영하 33도를 찍는다 올겨울 들어 최강 한파라는 오늘, 그러니깐 2023년 1월 24일 오전 6시45분 현재 내가 사는 용산은 영하 14도라, 같은 시각 한국 기상청이 제공하는 북한 날씨 사정을 보니 아래와 같다. 무산이 마이너스 33도, 중강진이 마이너스 28도, 그리고 개마고원 복판일 텐데 풍산이 마이너스 31도다. 한반도 동해안은 강릉이 그렇듯이 위도랑 크게 관계없이 동시대 한반도 반대편보다 기온이 높다. 저 날씨 사정을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항용 머리에서 지우면 곤란하다. 저 정기 기온이면 동물도 움직이기 힘들다. 북극곰이나 호랑이 정도나 움직이겠지만 말이다. 저 척박한 땅을 왜 한반도 역대 왕조들은 경영에 골머리를 앓아야 했을까? 가만 두면 언제나 골치가 되며, 그렇다고 직접 지배를 관철하자니 저짝을 누가 가서 .. 2023. 1. 24. 이성계 선조는 두만강에서 함흥까지는 어찌 왔을까? 여기에 대한 희귀한 기사가 사실 조선왕조실록에 있다. 처음에 목조(穆祖)가 때때로 현성(峴城)에 가니, 여러 여진(女眞)의 천호(千戶)와 다루가치(達魯花赤)들이 모두 교제(交際)하기를 원하므로, 마침내 그들과 함께 놀았다. 여러 천호(千戶)들이 예절을 갖추어 대접하기를 매우 후하게 하고, 반드시 소와 말을 잡아서 연회를 베풀고는 문득 수일(數日)을 유련(留連)하였으며, 여러 천호들로서 알동(斡東)에 이른 사람이 있으면 목조도 또한 이같이 접대하였다. 익조(翼祖) 때에 이르러서도 이대로 따라 행하고 고치지 않았다. 익조의 위엄과 덕망이 점차 강성(强盛)하니, 여러 천호(千戶)의 수하(手下) 사람들이 진심으로 사모하여 좇는 사람이 많았다. 여러 천호들이 꺼려서 모해(謀害)하기를, "이행리(李行里) 【익조.】.. 2022. 12. 24. 강릉 고려성, 강릉 일대 여진을 방어하기 위해 고려가 쌓은 성 편집자注 - 아래는 《고려성의 역사성 고찰과 복원계획 수립 학술용역 보고서》 (강릉시·강원고고문화연구원, 2022)를 발췌한다. 원의는 훼손하지 않고 문장은 손댔다. 하도 동해안 쪽 관심은 적은 듯해서 열불 나서, 말갈론 여진론을 토대로 깔아 정리한다. 강릉 고려성은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리 508-1 일원에 위치하는 석성石城이다. 성 동쪽에는 안인항과 정동진을 잇는 7번국도(율곡로)와 동해안에 접하고, 서쪽에는 괘방산이 남북으로 능선을 길게 뻗었으며, 남쪽에는 정동캐슬과 하슬라미술관이, 북쪽 약 300m 지점에 등명낙가사가 있다. 율곡로에서 등명낙가사 주차장으로 들어오면 관광안내도 옆으로 마을로 들어가는 길(괘방산로)이 있으며, 길을 따라 약 460m를 이동하면 민가와 인접하여 고려성 서벽이 드러.. 2022. 12. 24. 고려시대 여진으로 푸는 신라 우산국 정벌 내가 연구사 검토할 때까지만 해도 이 대목이 집중 부각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어떠한지 모르나, 나는 언제나 말했듯이 그 비밀은 고려시대 여진족에서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진이 한반도를 침략하는 통로는 언제나 동해안 해로였다. 고려시대 동해안 피침탈 기사를 보면 언제나 여진은 배를 타고 나타났다가 배를 타고 사라진다. 그래서 그 지역 지방관 업적을 나열하는 데는 언제나 적선 몇 척을 나포했다는 기록이 빠지지 않는다. 그들의 침투 지역에 주된 지역은 경주였다. 이들이 자주 찾은 곳은 경주였다. 그들이 경주를 침략하는 통로가 바로 해로다. 이는 역설적으로 신라시대 신라가 동해안을 진출한 비밀을 푸는 열쇠가 된다. 그것 역시 말할 것도 없이 해로였다. 육로를 통하는 어려움은 김순정의 수로부인 관련 기사에서 명.. 2022. 12. 24. 금사金史 본기 18권 전체를 독파하고서 모든 죽어가는 장면은 비장하다. 한때 천하를 호령하고, 송을 핍박하고는 신하로 만들었고, 서하에 대해서도 역시 그러했다. 고려는 금의 뿌리인 여진을 위무하는 위치였다가 나중에는 전세가 대역전되어 신하로 굴종해야 했다. 몽골 제국이 흥기하여 금을 압박하자, 시종 금에 억눌려 절치부심하던 송은 복수심에 불타 이때라고 해서 금을 남쪽에서 압박했다. 거인이 쓰러지자 사방이 벌떼처럼 일어났다. 서하 역시 칼을 금에 칼을 겨누었다. 하지만 서하와 금이 무너지고, 몽골이 들어오자 그 앞잡이가 되어 주구 역할을 하던 송 역시 이내 멸망하면서 사직이 문을 닫았다. 100년을 지탱한 거인 금이 쓰러질 때 마지막 황제 애종이 남긴 말은 비참하기만 하다. "예로부터 망하지 않은 나라가 없고 죽지 않은 군주가 없다." 고 했다.. 2022. 12. 2. 이전 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