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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개6

병자호란 때 이야기라는데 사대부 집안 아녀자들이 강화에 많이 피란 와 있었다 한다. 다들 오랑캐가 오면 자진하겠다느니 하는데, 한 사람만 "그때 가봐야 알 일"이라고 했다. 그러자 다들 그를 욕했다. 예친왕이 이끄는 청나라 수군이 강화에 왔다. 그러자 그때 가 봐야 알 일이라고 한 그 한 사람만 끝까지 항거하다 죽음을 맞이했고, 그를 나무랐던 이는 그러지 못했다고 한다. *** editor's note ***그래서 나는 지금 정의를 부르짖는 자들을 믿지 않는다.목이 칼이 들어와도 절개를 지키는 이는 딴 사람들이다. 2024. 8. 28.
끝없이 이어진 정기가正氣歌 문천상文天祥[1236~1283]한테는 유명한 정기가正氣歌라는 노래가 있다. 남송은 중국사에서 가장 장렬한 최후를 장식한 왕조로, 송대 삼백년간 사대부를 우대한 데 대한 보답으로 중국사에 전무후무한 장렬한 순국의 대열에 선 왕조인데 이 왕조 마지막을 지킨 세 충신 중 한 명이 바로 문천상이다. 그의 정기가는 인터넷에서 쉽 게 찾으수 있어 여기 따로 쓰지는 않겠다. 이 글은 상당한 장편인데 하나하나 제법 긴 일화가 얽혀 이해가 쉽지는 않다. 글 도입부를 보면, 天地有正氣 雜然賦流形 下則爲河嶽 上則爲日星 於人曰浩然 沛乎塞蒼冥 皇路當淸夷 含和吐明廷 時窮節乃見 一一垂丹靑 천지에 바른 기운 있어 온갖 군데 형제 내려주니 아래로는 산과 물이 되고 위로는 해와 별이 되었네 사람한텐 호연지기 있어 성대하여 하늘 바다도 .. 2024. 7. 7.
절개를 지키다 간을 내준 하공진, 강조의 재림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에서 고려에 끝까지 절개를 지키며 산화한 하공진河拱辰은 행적을 보면 문관이 아니라 무관이다. 고려사가 정리한 그의 열전에 의하면 그는 진주晋州 사람으로, 성종成宗 때 압강도구당사鴨江渡勾當使가 되었으며, 목종穆宗 때는 중랑장中郞將에 임명되었다. 왕이 병으로 자리에 눕자 하공진은 친종장군親從將軍 유방庾方·중랑장 탁사정卓思政 등과 함께 침전 문 가까이에서 당직을 섰다가 얼마 뒤 상서좌사낭중尙書左司郞中으로 옮겼다. 고 했거니와, 목종이 앓아눕는 비상계엄사태 때는 왕실 호위를 담당하는 군대를 관장했음을 본다. 성종 시대에 그가 맡았다는 압강도구당사鴨江渡勾當使가 무엇인지 나는 실체가 아리송송하기만 하다. 어떻게 끊어읽어야할지도 종잡기 힘들다. 다만 압강이 압록강을 말함은 분명하거니와 /압강도/인지.. 2024. 2. 6.
죽을 의무가 없던 매천 황현, 망국의 시기 유가의 행동 吾無可死之義 但國家養士五百年 國亡之日 無一人死難者 寧不痛哉? 吾上不負皇天秉彝之懿, 下不負平日所讀之書. 冥然長寢, 良覺痛快. 汝曹勿過悲 나는 죽어야 할 의리가 없다. 다만 국가에서 선비를 기른지 5백 년이 되었는데, 나라가 망하는 날에 한 사람도 국난에 죽는 자가 없다면 어찌 통탄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내가 위로는 하늘로부터 타고난 양심을 저버리지 않고, 아래로는 평소에 읽은 글을 저버리지 않으며 영원히 잠들어 버린다면 참으로 통쾌함을 느끼리라. 그러니 너희들은 너무 슬퍼하지 마라. 경술국치 당시 황현이 자결하면서 남긴 유서의 내용이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吾無可死之義 但國家養士五百年 國亡之日 無一人死難者 寧不痛哉? [나는 죽어야 할 의리가 없다. 다만 국가에서 선비를 기른지 5백 년이 되었는데, 나.. 2024. 1. 28.
아부는 거룩한 충성, 죽일 수 없다 바로 앞에서 거란군에 사로잡힌 고려군 수뇌부 넘버 원 강조와 넘버 2 이현운이 걸은 너무나 다른 길을 소개했거니와 아부는 거룩한 충성이라는 말을 새삼 생각하게 된다. 내가 기자 초년 시절, 아부로 출세가도를 달린 공장 선배가 한 말을 잊을 수가 없다. "태식아, 너 아부 말이다. 그거 첨에 들으면 참 거북해, 한데 말이야, 자꾸 들으면 그렇게 이쁠 수가 없다?" 결국 자신한테 아부하라는 뜻이었다. 물론 나는 아부를 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할 줄 몰랐다. 그러니 해고까지 당하지 않았겠는가? 그렇다 해서 내가 무슨 절의 절개남? 웃기는 소리, 똑같은 놈이다. 거란 성종 야율융서가 진짜로 대인이라면 고려왕한테 끝까지 충성을 다하는 강조를 풀어주어야 했다. 대신 "제 두 눈이 이미 새로운 해와 달을 보았으.. 2024. 1. 26.
인간 심연을 후벼파는 죽음의 공포, 이현운의 경우 임금을 시해하고 권력을 잡은 강조를 고려사 편찬자들은 당연히 반역叛逆으로 분류했다. 하지만 그의 충절은 높이 살 만했으니, 통주성通州城 남쪽 전투 현장에서 거란군에 사로잡힌 그는 투항하라는 거란군주 야율융서의 회유를 끝까지 거부하며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목종을 시해하고 현종을 앉힌 강조는 그것을 구실로 토벌을 앞세운 거란 40만 대군을 맞아, 30만 대군을 이끄는 총사령관이자 당시 고려 조정 최고 실권자로서 직접 전장에 뛰어든다. 보통 최고 권력자는 최전선에 나서지 않고 대리인을 내세우는 데 견주어 그 자신이 직접 나섰다는 점이 이채롭다. 다만 이 전쟁에서 무참히 패배하고 어처구니 없는 판단 미스로 그 자신이 사로잡히는 신세가 됐다는 점에서 그는 지장智將이라 볼 수는 없으며, 우직한 군인이라는 인상을 .. 2024.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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