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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부 집안 아녀자들이 강화에 많이 피란 와 있었다 한다.
다들 오랑캐가 오면 자진하겠다느니 하는데, 한 사람만 "그때 가봐야 알 일"이라고 했다.
그러자 다들 그를 욕했다.
예친왕이 이끄는 청나라 수군이 강화에 왔다.
그러자 그때 가 봐야 알 일이라고 한 그 한 사람만 끝까지 항거하다 죽음을 맞이했고,
그를 나무랐던 이는 그러지 못했다고 한다.
*** editor's note ***
그래서 나는 지금 정의를 부르짖는 자들을 믿지 않는다.
목이 칼이 들어와도 절개를 지키는 이는 딴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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