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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11

윤치호가 말한 '친일파'와 '반일파' 1919. 3. 7(금) 갑자기 승하함으로써 이번 대소요의 실마리를 제공한 고종 황제는 예전에 누군가를 감옥에 보내기 위해 단 한마디를 사용하곤 했다. 그건 바로 ‘친일파’라는 단어였다. 조선의 일본인들이 누군가를 불행하게 만드는 데 편리하게 사용하는 단어가 하나 있다. 그건 바로 ‘반일파'라는 단어다. (김상태 편역, 《윤치호일기 1916~1943 - 한 지식인의 내면세계를 통해 본 식민지시기》, 역사비평사, 2001. 2, 85쪽) (2010.03.28 21:08:46) *** 이걸 보면 작금 한국사회에 걸핏하면 통용하는 친일파는 어떤 맥락인가? 윤치호가 말한 딱 그거 아닌가? 돌이켜 보면 친일파 라는 말 만큼 누군가를 규정하는 데 편리한 말 없다. 누군가를 감옥에 쳐넣기 위한 말로 친일파 만큼 유효.. 2022. 10. 12.
내가 조상을 책임질 수 없고 조상이 나를 책임질 수 없다 조상이 친일파인 것과 나랑 관계없다. 마찬가지로 조상이 독립운동가인 것과 나랑도 관계없다. 나는 나, 조상은 조상일 뿐이다. 지 애비를 친일파라 할 수 있을지언정 지가 대신 사죄할 수는 없다. 전대의 업을 후손에 전가하지 할 수 없듯 후손이 전대를 전가할 순 없다. 국가도 마찬가지라 대한민국이 조선왕조를 사죄할 순 없고 조선왕조가 고려왕조를 사죄할 순 없다. 반대로 조선왕조가 대한민국을 책임질 순 없고 고려왕조가 조선왕조를 책임질 수도 없다. 조상은 조상, 나는 나인 간단한 이유는 내가 조상을 책임질 수 없고 조상이 나를 책임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그 반대편에 선 이른바 독립운동가 계열에도 해당한다. 내 조상이 독립운동가인 것과 나는 하등 관계가 없다. 내가 그런 조상을 두어 자랑할 순 있지만, 그.. 2022. 6. 28.
이완용, 친일로 가둘 수는 없다 실은 아래 2003년 8월 13일자 내 기사에서 다룬 문건은 내가 언젠가는 논문으로 쓰겠다고 하다가 결국 손도 대지 못했다. 이후 누군가가 쓰지 않았다면 다시 시도할 욕심이 난다. 기사에서도 엿보이겠지만 이완용은 친일파다. 그래서 나쁜놈이다 이런 방식으로는 전연 저 문건의 의미를 풀지 못한다고 나는 본다. 그것을 뛰어넘어 이완용을 바라보아야, 식민지 조선을 둘러싼 다양한 정치역학 흐름이 보인다고 나는 본다. 이완용이 창덕궁을 천황의 이궁으로 만들자...이렇게 하자 그러면 일본정부나 총독부가 열라니 좋아할 거란 믿음이 있다. 우리의 역사교육, 친일론은 바로 이에서 기반한다. 하지만 아래서 보듯이 실상은 전연 딴판이다. 이완용은 이완용 나름대로 살길과 기존 지분을 확보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쓰게 마련이다. 식.. 2019. 7. 15.
증오감에서 비롯하는 글 글을 쓰는 사람들이, 특히 근현대사 분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이 조심 又 조심해야 할 점은 증오감과 탄성이다. 대체로 우리 학계를 보건대 독립과 친일이라는 양대 구도, 혹은 민주화 대 반민주화(혹은 독재) 양대 구도로 설정하거니와 그러면서 전자에 대해서는 일방적인 찬사를 퍼붓고, 후자에 대해서는 각종 분노를 표춀하거니와 이는 시정잡배가 할 짓이지 이른바 전업적 학문종사사자가 글로써 할 일은 아니다. 나는 이완용을 다룰 적에도 냉철, 냉철, 또 냉철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하여 적어도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이완용에 미쳐야 한다. 이 새끼를 때려잡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사명감은 글을 망친다. 이 놈은 부관참시를 해도 시원찮을 놈이라는 증오는 글을 망친다. 한데 내가 보는 근현대사 분야 글은 이른바 대가라는 사.. 2019. 7. 14.
친일파라 해서 친일파라 해서 훌륭한 작품 쓰거나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은 천박하기 짝이 없다. 20세기 한국문단에서 시詩로는 미당 서정주를 뛰어넘을 이 없고, 미술, 특히 조각에서는 김경승은 절대지존 언터처블이다. 2018.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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