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풍납토성41 풍납토성, 나를 다 소모한 현장 풍납토성 미래마을지구 한성백제 창고건물지에서 한 장면이다.촬영시점이 2008.11.27로 나온다. 풍납토성이 아니었대도 나는 늙었을 것이다.nonetheless, 나는 너 때문에 빨리, 그리고 더 많이 늙었다고 해 둔다. 내 청춘을 다 바친 데다. 간땡이도 바쳤고무모함도 바쳤다너무 써버려, 지금은 남은 게 없다. (2021. 11. 2) 2023. 11. 2. 나도 모르는 나, 후회 막급할 미래 2000년인가? 풍납토성 경당지구 아파트 재건축 계획이 무산됐다. 그것을 무산케 하는 데 나는 온몸을 불살랐다. 14년이 흐른 지금. 풍납동을 가 보면 나는 내가 한 일에 한점 부끄럼없다. 같은 시간, 경주 경마장 건설계획도 무산됐다. 이엔 내가 온몸을 불사른 것은 아니지만 막고자 몸부림쳤다. 14년이 흐른 지금, 나는 반대한 나를 후회한다. 왜 막았을까? 후세를 위해 놔둔다고? 그래서 14년 동안이나 잡풀 우거진 곳으로 팽개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후회한다. 이곳에 다시 경마장이 추진되거들랑 쌍수들고 환영하리라. (2014. 8. 1) *** 이 역시 이제는 장담하지 못한다. 풍납토성은 잘한 일인 듯은 하지만 진짜 잘했느냐는 자신이 없다. 경주 경마장은 여전히 후회한다. 앞으로는 어떨지 자신이 없다.. 2023. 8. 1. 간략히 살피는 1925년 을축년대홍수 홍수라는 고고학자 앞에서 1997년 이후 풍납토성 일대에서 있었던 몇 차례 발굴 사례를 보았다. 누누이 지적했고 앞으로도 줄곧 그러겠지만 풍납토성은 넓이가 22만 6천 평이다. 이 중에서 발굴이 이뤄진 곳은 정확한 통계가 없어 모르겠으나 전체 면적 중 10%가 되지 않을 것이다. 발굴다운 발굴은 1997년 이형구로 시작이 되는데 그 이전에는 발굴이 아예 없었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었다. 1964년에 김원룡이 서울대 고고인류학과 학생들을 데리고 발굴한 적이 있으며 그에 앞서는 1925년 을축년 대홍수에 의한 발굴도 있었다. 사람과 홍수가 합작한 1997년 이전 이 두 발굴은 파란으로 점철된 20세기 이후 풍납토성의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또 김원룡이 주도한 시범 발굴이 있기 바로 전 해인 .. 2023. 7. 17. 19만 평 풍납토성 토지 소유 현황, 특히 사유지의 경우(2013년 상황) 아마 5년 이내 전의 가까운 시점일 것이다. 당시 문화재청에서 풍납토성 문제 해결을 위한 소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한 적이 있다. 지금도 다른 형태, 혹은 그대로 운영하는 걸로 아는데 한동안 이에 내가 위원으로 참가한 적이 있다. 위원회에는 풍납토성 주민대표도 있었다. 10여 년 전에는 대판 싸우다가 나중에는 하도 친해져 데모하면 옆에서 내가 "그렇게 해서는 안되고 도끼 들고 해요"라고 응원까지 하게 된 분이다. 내가 방금 넘겨받은 풍납토성 관련 현황 자료를 보니 그 내부 19만 평에 대한 국공유지와 사유지 비율이 있다. 성벽까지 포함하면 21만 평에 달하는 풍납토성 토지 소유 실태 현황....이거 미안하지만 이 소위원회 전에는 없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풍납토성이 21만 평인데 이를 다 매입하는데 몇조원이 .. 2023. 7. 5. 을축년대홍수 백년을 준비해야 한다 을축년대홍수 100주년인데, 지금부터 찬찬히 준비해나간다면 학술대회나 전시를 좀 그럴듯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 혜화동에서 폭우에 휩쓸려 가다 모래톱에 걸려 구사일생한 수주樹州를 떠올리며 *** Editor's Note *** 1925년 한반도를 쑥대밭으로 만든 을축년대홍수를 나는 그 영향력 크기가 6.25전쟁에 버금하거나 능가한다는 말을 줄곧 한다. 그래서 그 백주년은 대대적으로 해야 함을 주장하면서 서울역사박물관이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관련 사업을 하자 하면서 이를 위한 조사사업부터 하자 작년부터 들쑤시고 있다. 이 건으로 봉은사를 접촉하기도 했다.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고 본다. 을축년대홍수 참상은 술꾼 수주 변영로 증언을 통해 유머러스하게 기록화하기도 했으니 이런 증언록부터 발굴하고 총독부에서.. 2023. 7. 5. 광주풍납리토성에 얽힌 일화 한 토막 월간 《신동아》 2000년 7월호에는 내가 기고한 이 실렸다. 그 첫 대목에는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편찬 준비 8년, 출판 작업 4년 만에 만들어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본책 25권, 부록 3권)에 ‘풍납토성’이 표제 항목으로 없다는 논급이 있었다. 하지만 이는 내 오류였다. 당시 연합뉴스 자료실에는 이 백과사전 전질이 있었으니, 이를 수시로 내가 들여다보았지만 놓치고 말았다. 이에는 나름 곡절도 없지 않아, 표제 항목을 '광주풍납리토성'(맞나?)이라고 수록했기 때문이었다. 이 사전은 표제항목 선정에 기준이 있어 문화재의 경우 그 등재 표제어를 기준으로 삼아 이렇게 편성했다. 풍납토성은 처음 사적 지정 당시에 경기도 광주군 소재라 이렇게 되고는 행정 구역이 서울 송파로 재편되었음에도 여전히 이리 항목 .. 2023. 3. 31. 이전 1 2 3 4 5 ··· 7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