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휴경8 화전과 나무뿌리 신석기시대에 정기적으로 옮겨다니며 불지르고 다시 새로운 곳에서 밭농사를 했을 것이라 하였는데, 필자는 신석기시대의 초기 농경에서는 생판 새로운 숲을 불질러 새로운 농경지를 확보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미 노동력이 어느 정도 투입된, 몇 년 정도 묵혀 둔 지역에 돌아와 불을 질러 새로 농사를 지었을 거이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물론 전적으로 추측에 불과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 당시 농경민은 새로운 토지의 획득이 목적이 아니라 농사가 가능한 땅을 얻는 것이 목적이므로 이미 한번 개활지로 만들어 놓았던 땅에 몇년 후 다시 돌아와 불을 질러 농사를 시작하는 편이 아예 새로운 땅으로 가는 것보다 훨씬 나았을 것이다. 불과 몇 년 정도라면 이전의 지력을 회복할수 있지 않을까 하는데 세 군데 정도만 확보해도, 3년 간격으로.. 2024. 9. 5. 화전민은 몇 년 만에 원래 위치로 돌아왔을까? 화전민이 불을 질러 화전을 한 후 다른 곳으로 옮겨갈 때까지의 기간을 대개 3-5년 정도 본다고 한다. 그렇다면 4년 정도 기간을 잡는다면, 3번을 옮겨 다니면 12년인 셈이다. 화전 하던 곳을 비워두고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가 다시 원래 위치로 돌아온다면 지력회복의 기간으로 12년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화전은 세 군데 장소만 돌아가면서 하면 되는 셈이다. 왜 하던 곳으로 돌아와야 할까? 나무뿌리 때문이다. 생판 처음 가는 곳으로 가서 불을 질러봐야 나무뿌리 다 뽑아야 하고 엄청난 노동이 필요했을 것이다. 12년만에 돌아온다면 작은 나무정도만 쳐내도 되었을 것 같다. 따라서 화전민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화전한다고 해도 사실은 세 군데 정도만 순회해도 될것이라는 말이다. 필자는, 신석기시대에 이루.. 2024. 9. 4. 신석기시대 휴경-화전의 종식 이건 어디까지나 가설이지만, 한국 신석기시대. 처음 단계에 휴경-화전으로 시작된 잡곡농경은, 그 후 어떤 변화를 거쳤을지 생각해보자. 우리나라 화전민 촌락에는 농경의 방식이 두 가지가 있다는데, 첫째는 화전하지 않고 경작 관리하는 땅과 화전하는 땅을 함께 가지고 있는 화전민. 이 경우에는 비화전 경작지에 거주지가 건설되고 화전하는 땅에는 가끔 올라가 보게 된다. 둘째는 비화전 경작지 없이 오로지 화전만 하는 경우인데이 경우에는 화전을 따라 옮겨다니지 않으면 안된다. 대개 한번 불을 지르고 농사를 지으면 4-5년 후에는 옮겨야 했다 하므로 신석기시대 화전민도 4-5 년 간격으로 옮겨다니며 휴경-화전을 반복했을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가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최초의 단계는 순화전민의 단계였을 것이고, .. 2024. 9. 4. 화전민과 매우 비슷했을 한반도 초기농경민 일전에 김단장께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는데, 한반도 신석기시대, 초기 잡곡농경민은 농경의 최초 단계는 화전 비스무리 했을 것이다. 화전의 특징이 무엇인가? 주기적으로 옮겨 다닌다는 것이다. 시비하지 않고 토지를 단기간에 비옥하게 만드는 가장 빠른 방법은 불을 지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땅에서 지력이 소모되면 다시 새로운 곳으로 옮겨 불을 질러 그곳에서 경작한다. 물론 주거지도 함께 옮기게 될 것이다. 이런 양식의 농경이라 해도, 농경은 농경이다. 화전민은 여가시간에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라 농경민이다. 여가시간에 야생동물을 잡으러 다닐 수도 있겠지만. 이들은 주거지와 농경지는 정기적으로 순회하는 방식으로 몇개의 거점을 반복적으로 이용하는 방식이었을 것 같다. 방향도 없이 정처없이 불지르고 다니.. 2024. 9. 4. 틀림없이 있었을 한국 신석기시대 휴경 지력을 보강하는 방법이 미진하던 시대에는 콩과 식물을 재배하여 연작을 시도하기도 했겠지만 그것도 쉽지 않아 틀림없이 정기적으로 휴경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 가지 생각해보자.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경작지를 여러 곳에 확보해 두고 정기적으로 돌아가며 휴경해야 하는 바람에 일정 순서대로 경작지를 순회하며 농사를 짓고 있었다면이는 "정착농경"인가 아닌가? 위는 유럽 중세의 장원으로 정기적으로 돌아가며 휴경하는 시스템을 보여준 것이다. 신석기시대에는 시비를 했을 리는 없고, 백프로 돌아가며 휴경했을 것이다. 휴경하는 경작지는 쉬게 놔두고 경작하는 땅 근처로 옮겨다니며 농사를 지었다면이것은 정착 농경인가 아닌가? 2024. 9. 4. 신석기시대 농경과 휴경 신석기시대 곡물로 평양에서는 조, 수수, 기장, 쌀 등 다양한 곡물이 나왔다고 하는데 이런 다양한 곡물은 콩, 조, 기장, 쌀 모두 다른 밭에서 키워 냈을까? 아마 윤작했을 것이다. 조선시대 이전 우리나라 농업에서 가장 큰 문제는 바로 휴경의 문제로 휴경을 하지 않으면 매년 수확이 안 된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 문제 극복을 위해서 어떻게 했느냐 우리나라 조선시대 세종 시기에는 소위 2년 3작의 윤작법이 황해도 이북에서 시행되었다고 기록이 남아 있는데 어떻게 하느냐. 첫해 봄에는 조나 기장을 심는다. 이 블로그에 쓴 것 같지만 조나 기장은 수확이 빨라 첫 번째 수확이 끝나면 바로 보리를 심었다고 한다. 그 다음해 보리 수확이 끝나면 마지막으로 그 땅에 콩을 심고 2년차 하반기는 땅을 놀렸다는 것이다. 여기.. 2024. 7. 25. 이전 1 2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