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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경관景觀, 우연이 빚어낸 착시 - 경주의 경우

by taeshik.kim 2022.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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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서악동고분 중 이른바 태종무열왕릉. 봉분 주변 소나무 거목들과 어울려 묘한 경관을 연출한다. 우연히 고목들이 살아남은 것이다.



경관景觀이란 말이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아래와 같이 두 가지로 푼다.


「1」 산이나 들, 강, 바다 따위의 자연이나 지역의 풍경.
경관이 빼어나다.
설악산의 주변 경관이 수려하다.

「2」 『지리』 기후, 지형, 토양 따위의 자연적 요소에 대하여 인간의 활동이 작용하여 만들어 낸 지역의 통일된 특성. 자연 경관과 문화 경관으로 구분한다.


간단히 말해 경치景致 혹은 풍치風致라는 말이다. 그 말이 무엇이건 이건 어울림이 빚어내는 모습을 말하며, 그 어떤 경우에도 그것이 찬탄을 자아냄을 말한다.

영어로는 랜스케입 landscape 이라는 말이 애용되며 그 유사어로 scene이니 scenery며 view, 혹은 outlook, 혹은 panorama, 혹은 prospect, 혹은 sketch, 혹은 vista와 같은 말들이 있다 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저 개념을 애용하는 전문 분야로 지질학을 들었으니, 저 말은 결국 간단히 지형 landform 이라, 실은 미술에서는 풍경화를 말한다.

저 풍경이라는 말은 결국 도시보다는 농촌을 염두에 두기는 하지만, 요새야 그런 적용 범위를 확대해 어디에서건 어울림이 빚어내는 세트 하나를 일컬어 풍경 혹은 경관이라 하는 게 아닌가 한다.

이 경관이 문화재계에도 깊이 침투했으니 이는 당연히 점 단위가 아니라 면 단위에 적용되는 말이라 하겠으며, 그런 까닭에 국가지정문화재를 기준으로 할 때는 주로 사적이나 명승 혹은 천연기념물 따위에 집중된다 하겠다. 동산 부동산으로 가를 때 당연히 경관이라는 개념은 부동산을 대상으로 삼는다.


서악동고분 산책로 나무는 심은지 몇십년밖에 되지 아니한다. 저 나무가 없는 묘지를 생각해보라.



이 문화재 경관을 말할 적에 나는 언제나 경관은 만드는 것이지 자연히 주어지는 그 무엇이 아니라 한다. 예서 만든다 함은 인위가 개입함을 말한다. 그 인위는 어느 순간이 작동한 결과일 수도 있겠지만, 대체로 장구한 시간을 필요로 한다.

경주가 남긴 신라시대 흔적이란 실은 그 대부분이 무덤이나 탑을 말한다. 기타 신라시대 유산으로 남은 건축유산은 없다.

목조건축물만 해도 단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중국만 해도 그 시대 해당하는 목조건축물이 주로 산서 지방을 중심으로 몇 채 집중하거니와, 일본에서도 그 시대 목조건축물로 살아남은 것이 가끔 있으니, 이를 견준다면 한반도는 참말로 여러 모로 사정이 좋지 아니해서 그 많던 목조건축물은 깡그리 사라지고 없다.

신라시대 유산으로 말하건대 경주는 요컨대 묘지墓地의 도시요, 석탑의 고장이다. 석탑이야 그 자체 요새 기준으로 미적 찬탄을 자아내는 구석이 많으니, 그 아름다운 석가탑 다보탑 봐라.


김유신이 사림 죽이고 만들었다는 원원사 그 터. 주변은 소나무 거목이 어우러져 온통 신비를 자아내지만 실은 엄습한 모기 공장이다.



좀 묘한 데가 무덤인데, 이 무덤이라는 것도 시내 온통을 장악한 듯하지만, 우리가 시종 고려해야 할 점은 신라시대 어느 시점이 문제가 되기는 하겠지만, 적어도 신라 조정에서 명령을 하달해 오늘부터 경주 시내엔 무덤을 쓸 수 없었다는 그런 명령이 일시에 하달하고 그것이 본격으로 시행된 지증~법흥 직후 모습을 간주하면 시내 온통은 저 덩실덩실한 무덤이 즐비한 귀신 고을이었다.

그 시대 경관이 어떤지 우리는 알 길이 없다. 그 편린을 엿볼 만한 그 당대의 증언, 예컨대 풍경화나 여타 엇비슷한 자료 단 한 점 남지 않은 까닭이다. 결국 그 시대 경관은 있을 수가 없다.

이 시대 우리가 소비하는 경관은 우리가 인위로 만든 것이다. 물론 그 인위가 지금의 그것을 꼭 노린 것인가 아닌가 하는 논란이 있겠지만, 나는 지금의 그것이 어쩌다 보니에서 비롯한다고 본다.

특히 무덤을 보면 주변 숲이나 고목을 남기는 일이 많은데, 왜 이런 숲이나 고목이 물론 신라시대의 그것과는 한참이나 거리가 멀기는 하지만, 그런 까닭에 주로 조선후기 이래 조성된 것이기는 하지만, 누가 처음부터 그러고 싶어 그랬겠는가?

첫째 그 산림이 작살나는 조선후기에도 그 어떤 강력한 인위 금지 조치가 그런 대로 힘을 발휘해 저들 무덤 주변은 지키게끔 했고, 무엇보다 화재 위험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그런 특징도 있었으니, 주변 산을 온통 불태우는 그런 산불에도 그 자태 자체, 생태 자체가 견디는 묘한 힘이 있었던 것이다.


서악마을. 마을가꾸기 사업으로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는 데다.



그래서 살아남아 오늘에 이르는 것이며, 특히 그것이 현대가 되면서, 문화재보호법과 각종 환경법이 더 강력하게 작동하면서 잡목을 제거하고, 또 온통 그 봉분과 주변으로는 잔디를 심어 제초제를 뿌려가며 잡풀을 제거한 힘이 결합해 오늘날 우리가 경주 하면 찬탄해마지 않는(그러지 않는 사람도 물론 있다) 그런 경주가 탄생하기에 이른 것이다.

간단히 말해 우리가 경주를 항용 상념하며 떠올리는 무덤과 그 주변 수풀 혹은 고목이 우거진 그 경관, 나아가 그것을 보면서 무언 중에 그것이 신라시대 유산이라 상념하는 그 거대한 착각은 오직 우연이 빚어낸 작용에 지나지 않는다.



바실라. 저수지는 물론 인위며 기타 모든 것이 다 인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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