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漢詩 & 漢文&漢文法

이쑤시개 쑤시며 완성한 명작 한시, 계절의 노래(46) 잠 못 이루다[不眠] [송(宋)] 조여수(趙汝燧) / 김영문 選譯評 이빨 쑤시며새 시구 찾아 붓을 적셔 쪽지에 쓰네 읽어보니성근 곳 드물어 기쁨에 겨워잠 못 이루네 刺齒搜新句, 濡毫寫短箋. 讀來疏脫少, 歡喜不成眠. 중당(中唐) 유명한 시인 가도(賈島)는 어느 날 이응(李凝)의 은거처에서 시를 썼다. 그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새는 못 가 나무에서 잠들고, 스님은 달빛 아래 문을 두드린다.(鳥宿池邊樹, 僧敲月下門.)”(「이응의 은거처에 쓰다題李凝幽居」) 그런데 ‘두드린다(敲)’를 ‘민다(推)’로 쓰는 게 더 좋아보였다. 가도는 고심을 거듭했다. 그날도 나귀를 타고 ‘밀까 두드릴까(推敲)’를 고민하다가 문단의 거두 한유(韓愈)의 행차가 다가오는지도 몰랐다. 한유도 가도의 고민을..
어둠 속 등불 한시, 계절의 노래(45) 등불(燈) 첫째 [송(宋)] 임지기(林之奇) / 김영문 選譯評 길 잃고 나서 사람들은여러 갈림길 헤매며 어둠속을 더듬더듬제 맘대로 걸어가네 어제 밤 불현 듯갈 길을 찾은 것은 한 점 외로운 등불내 스승 됐기 때문 自從失道人多岐, 擿植冥行信所之. 昨夜忽然尋得路, 孤燈一點是吾師. 가는 길이 밝고 뚜렷하기만 하다면 얼마나 심심할까? 더러는 길을 잃고 먼 곳을 돌기도 하고, 어떤 때는 어둠 속에서 눈앞조차 분간하지 못하기도 한다. 캄캄한 바다에서 길을 잃은 일엽편주는 저 멀리서 비치는 외로운 등대의 불빛을 만나 방향을 찾는다. 칠흑 같은 밤, 산짐승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첩첩산중에서는 멀리서 깜박이는 작은 절집의 등불 빛을 보고 안도의 숨을 내쉰다. 다시 찾은 광명 속 새 길은 더욱 소..
보리밭 바라보며 뽕나무 숲에서 듣는 오디새 울음 한시, 계절의 노래(36) 시골길을 가며[村行] [당(唐)] 이중(李中) / 김영문 選譯評 눈길 끝까지 푸르른보리밭 가지런하고 들판 연못 넓은 물에온갖 오리 내려 앉네 햇볕이 따뜻하여뽕나무 숲 우거진 곳 한가하게 홀로 서서오디새 울음 듣네 極目靑靑壟麥齊, 野塘波闊下鳧鷖. 陽烏景暖林桑密, 獨立閑聽戴勝啼. (2018.05.20.) 망종(芒種)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한창 보리가 여물 때다. 보리밭 녹색 물결이 서서히 황금색으로 바뀐다. 지금은 남도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보리밭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7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전국 방방곡곡에 보리밭이 지천이었다. 또 봄 가을에 누에를 먹여 고치를 치는 양잠업이 농촌의 중요한 일이라 집 근처나 밭둑에 뽕나무를 많이 심었다. 뽕나무 열매를 오디라고 한다. 처음에는 ..
아침엔 흐드러진 꽃이 저녁이면 태백太白 이백李白의 [고풍古風]이라는 제하의 시 일부다. 천진교에 삼월이 찾아드니 집마다 복사오얏 만발하네 아침엔 애 끊는 꽃이었다가 저녁엔 동쪽 물 따라흐르네 앞선강물 뒷물이 밀어내듯 옛날은 지금과 이어 흐르네 새 사람은 옛 사람과 다르니 해마다 다리에서 놀며즐기네 天津三月時 千門桃與李 朝爲斷腸花 暮逐東流水 前水複後水 古今相續流 新人非舊人 年年橋上遊
푸른 하늘 끝을 묻는데 허공으로 사라지는 새 한시, 계절의 노래(323) 봄날 절구 여섯 수[春日六絶句] 중 둘째 [송(宋)] 양만리(楊萬里, 1127 ~ 1206) / 김영문 選譯評 봄날 취함은술과 관계 없고 교외 거닐며길도 묻지 않네 푸른 하늘은어디서 끝날까 하얀 새가허공으로 사라지네 春醉非關酒, 郊行不問塗. 靑天何處了, 白鳥入空無. 어린 시절 연을 날릴 때 바람이 좀 세게 불면 자주 연줄이 끊기곤 했다. 줄이 끊긴 연은 너풀너풀 땅으로 떨어지기도 했지만 더러는 푸른 하늘 저편으로 가뭇없이 사라지기도 했다. 하얀 점이 되어 사라지는 연을 보고 있노라면 무슨 이유인지도 모르게 저 산 너머에 내가 꼭 가야만 할 어떤 곳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곤 했다. “저 산 저 멀리 저 언덕에는/ 무슨 꽃잎이 피어있을까/ 달이 뜨며는 해가 지며는 꽃은 외로워 ..
떨어져 진흙되어 화초 보듬는 꽃잎처럼 한시, 계절의 노래(322) 기해잡시(己亥雜詩) 다섯째(其五) [청(淸)] 공자진(龔自珍, 1792~1841) / 김영문 選譯評 가없는 우수 속에태양은 기우는데 시인의 채찍 동쪽 가리키니거기가 바로 하늘 끝 붉게 진 꽃잎도무정하지 않을지니 봄날 진흙 되어다시 화초 보듬는다 浩蕩離愁白日斜, 吟鞭東指卽天涯. 落紅不是無情物, 化作春泥更護花. 이 시 한 수가 있음으로써 중국 근대의 모든 시는 빛을 잃는다. 실로 중국 오천 년 고대사를 마감하고 근현대사의 시작을 알린 시다. 나는 석사논문을 쓰면서 공자진의 『공정암전집유편(龔定盦全集類編)』을 읽다가 이 시를 처음 접했다. 소름이 돋았다. 침몰과 생성, 사망과 부활, 역사와 개인의 모든 이치가 이 작은 칠언절구에 구현되어 있었다. 먼저 침중하게 떨어지는 석양은 아편..
오므린 파초 이파리 같은 마음 한시, 계절의 노래(321) 대신 써주다 두 수[代赠二首] 중 첫째 [당(唐)] 이상은(李商隱, 812~858) / 김영문 選譯評 누각 위에서 황혼 무렵바라보려다 그만 둠은 옥 계단 끊어진데다고리 같은 달 때문 파초는 잎 못 펴고라일락은 꽃잎 맺혀 함께 봄바람 향해서각자 수심에 젖네 楼上黄昏欲望休, 玉梯横绝月如钩. 芭蕉不展丁香结, 同向春风各自愁. “오가며 그 집 앞을 지나노라면 / 그리워 나도 몰래 발이 머물고 / 오히려 눈에 띌까 다시 걸어도 / 되오면 그 자리에 서졌습니다.”(현제명, 「그 집 앞」) 사랑은 보고픈 마음이다. 포근한 봄날 저녁 파초는 새 순을 뽑아 올리고 라일락은 진한 향기를 발산한다. 임 그리는 마음 참을 수 없어 ‘그 집 앞’을 서성이지만 오히려 임의 눈에 띌까 부끄러워 다시 발걸..
서울에서 만난 그대, 꽃지는 계절에 강남에서 재회하고 한시, 계절의 노래(320) 강남에서 이구년을 만나[江南逢李龜年] [唐] 두보(杜甫, 712~770) / 김영문 選譯評 기왕의 저택에서평소에 자주 봤고 최구의 집에서노래 몇 번 들었던가 때 마침 강남 땅에풍경이 찬란한데 꽃 지는 시절에또 그대를 만났구려 岐王宅裏尋常見, 崔九堂前幾度聞. 正是江南好風景, 落花時節又逢君. 이구년(李龜年)은 당 현종(玄宗) 때 활약한 연예계 스타. 작곡, 연주, 노래에 모두 뛰어났다. 당시에 악성(樂聖)으로 불렸으니 지금 가왕(歌王)으로 불리는 조용필에 버금가는 명성을 누렸다고 할만하다. 그의 명성은 궁궐에까지 알려져 당 현종이 불러서 총애했으며, 현종의 아우 기왕(岐王) 이범(李範)도 자주 그를 불러 노래를 들었다. 최구(崔九)는 최척(崔滌)이다. 중국에서는 흔히 형제의 항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