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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철의 잡동산이雜同散異

김조(金照 1774~1853), 〈수연사에 들어가며 [入隨緣寺]> 수연사에 들어가며 [入隨緣寺][朝鮮] 김조(金照 1774~1853) 인적도 없는 산에 앉으니 홀연 나도 없는 듯   정신이 피곤해 책도 내던지고 은거를 꿈꾼다  해질녘 돌아가매 매미 울지 않아 적막하고     하늘 높이 떠가는 기러기는 홀로 날아간다      인적 없는 창에 해 비치니 불로장생 비결이요 무너진 담에 꽃 피었으니 틀림없는..
효명세자가 읊은 자명종 자명종(自鳴鍾) [朝鮮] 효명세자(孝明世子·1809 ~ 1830)  누가 가르쳐 쉼없이 절로 돌며하루 열두시각 맞춰 종을 치더냐예부터 천문관측에 창조가 많아 공교함은 서양사람 따를 수 없네誰敎不息自行輪, 一日撞鍾十二辰. 從古測天多造化, 巧工莫似西洋人.  《학석집(鶴石集)》에 수록되어 전한다. 자명종이라는 저절로 울리는 종이라는 뜻이니, 시계를 말한다. 조선 인조 9년(1631) 7월, 명나라에 진..
서거정이 말하는 내장산 백양사 단풍철이다. 그런 대명사로 내장산을 으뜸으로 꼽는다. 그 내장산에 백양사가 있다. 조선초기 사가정 서거정의 다음 증언은 현재의 내장산 백양사 내력 중 고려말~조선초 일단을 증언하거니와, 이에 의하면, 당시에는 백암사라 일컬은 백양사가 실은 행촌 이암 집안 고성이씨 원찰이라는 사실이 그것이다. 그런 성격이 언제까지 지속했는지 알 수는 없으나, 사가정 당대까지 100년이나 이어졌다는 사실을 소홀히 보아넘길 수는 없다. 이는 당대 불교사..
정철(鄭澈, 1536~1593), 〈송강정사에서 묵으며[宿松江亭舍]〉 〈송강정사에서 묵으며[宿松江亭舍]〉 3수(首) [1]이름만 빌린 지 삼십년 되었나니,     借名三十載,주인도 아니고 손님도 아니라오.      非主亦非賓。띠풀로 겨우 지붕만 이어놓고서,      茅茨纔盖屋,도로 일어나 북으로 돌아갈 사람.     復作北歸人。 [2]주인이 객과 함께 이르렀을 때,    &nb..
주희(朱熹)〈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 《주자대전(朱子大全)》 권9에 수록되었는데, 그 제목은 〈순희 갑진년 2월에 정사에서 한가로이 거처하다가 장난삼아 무이도가 10수를 지어 함께 놀러온 동지들에게 주고 한번 웃노라[淳熙甲辰仲春 精舍閒居 戱作武夷櫂歌十首 呈諸同遊相與一笑]〉이다. 〈무이구곡가〉 로 줄여 일컫는다. 무이구곡은 복건성(福建省) 숭안현(崇安縣) 무이산(武夷山)에 일대인데, 주희는 1183년 무이구곡의 제5곡에 무이정사(武夷精舍)를 짓고 〈무이정사잡영(武夷精舍雜詠)〉을 지었고, ..
기대승, 작년 불대산 시절이 문득 생각나서 〈작년 불대산에 있을 때 절구 한편을 완성한 적이 있었으나 진즉 잊었는데 느닷없이 기억이 나기에 빙그레 웃으며 적는다[去歲在佛臺山 嘗得一絶 既已忘之 率然記憶 一笑以識]〉  기대승(奇大升, 1527~1572)  홀로 산봉우리에서 넓은 하늘 바라보니,   孤倚巉峯望海天,미인은 대부분 저녁 구름 곁에 있었구나.  美人庶在暮雲邊。편지 보내 평안한단 소식 알려 주셨거늘,  書來為報平安信,깨알 같은..
하서 감나무[河西枾] 지금의 전북 고창군 성송면 출신으로 영조~정조 연간에 할동한 이재(頥齋) 황윤석(黃胤錫·1729~1791)이 그의 방대한 일기 《이재난고(頤齋亂藁)》에 수록한 글 중 이런 것이 있다.  하서 감나무에 대한 설[河西枾說]송찬욱(宋贊旭) 군 말에 따르면 "하서(河西) 선생께서 옥과 현감(玉果縣監)으로 계실 때, 두 밭 경계에 있는 감나무 한 그루 때문에 서로 다투다가 송사(訟事)를 벌인 자들이 있었다. 선생께서 갑(甲)쪽 가지에 열린 ..
갈재를 넘으며[渡蘆嶺]-백광훈(白光勳) 갈재를 넘으며[渡蘆嶺]      백광훈(白光勳·1537-1582) 새벽 기러기 따라 관문넘어 고향가는데마구 쏘다닌 여정 말하자면 꿈결만 같소강남풍토와 흡사하여 반갑기 그지없고 인가는 어디든 대숲에 싸인 마을이라오還隨曉雁度關門欲說經行似夢魂却喜江南風土近人家處處竹林村출전 : 백광훈伯光勳) 《옥봉시집(玉峯詩集)》3 도노령(渡蘆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