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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철의 잡동산이雜同散異61

내가 쏜다 요즘도 승진하거나 영전하면 한턱 쏜다고 하는데, 조선시대에도 새로 관직에 임명되면 인사, 부임과 관계있는 각 관부의 서리 등에게도 음식물을 내려주었고, 그것을 행하行下라고 했다. 첨부한 문서는 5대조께서 홍문관弘文館에 부임했을 때 그 기념으로 어느 군사軍士에게 음식물 값 3전錢을 내려준 문서다. 寺洞 玉堂拜辭軍士壹名處食物上下事 行下[署押] 三戔 (소장자 : 가친..단 모 공공기관에 기탁한 상태니 도둑님들 우리집에 와도 없음!) 2020. 1. 22.
팔고조도八高祖圖, 족보의 허실로 가는 바로미터 중학생이던 때 를 그려본 적이 있다. 당시에는 접할 자료가 많지 않아 제대로 완성하지 못하였다. 지금 하자면 제대로 그릴 수 있을 듯한데, 그럴 의지가 없다. 선인들은 제대로 된 팔조고도를 그리고 싶어했지만, 제대로 그리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심지어 국왕의 팔고조도도 모계쪽이 제대로 그려지는 일이 많지 않다. 팔고조도를 그려보면 족보의 허실을 금방 알게 된다. 첨부한 사진은 노사 기정진 선생 수고본 표지와 그에 실린 정무공貞武公 현암眩庵기건奇虔(1390~1460) 선생의 팔고조도다. 장성 아치실 행주기씨 종가 소장본으로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1798~1879) 선생이 직접 만든 가승家乘이다. 대동보 수준이다. 《노사집蘆沙集》 권17에 시씨가승서奇氏家乘序가 수록되어 있으니, 그 서문이 말하는 책 전체.. 2020. 1. 19.
조상들은 무엇을 비누로 썼을까 요즘이야 흔해 빠진 게 비누라서 '이 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잭 니컬슨은 한 번 쓰면 쓰레기통에 휙 내던지는 지경이다. 전근대 시대 비누는 녹두로 만든 비누[비루飛陋]였다. 언제부터 녹두를 비누 원료로 썼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15, 16세기부터는 일반화했었던 듯하다. 그전에는 무엇이었을까? 비조肥皂라는 것이 기원전후부터 사용되어 명나라 초기까지 기록에 빈번하게 나오는데, 이것을 사용한 듯하다. 고급품은 향비조香肥皂라고 하여 침향이나 사향을 첨가하기도 했다. 주원료는 쥐엄나무[皂莢] 열매껍질이나 무환자나무[无患子, 肥珠子] 열매껍질이었다고 한다. 한번 실험해 볼 일이다. 옻올라 고생한 나 빼고..... *** 이런 소개에 여러분이 아래와 같은 사례를 소개했다. ▶ 오줌이나 잿물도 있었지요 ▶ 외할머니 .. 2020. 1. 17.
전통시대 단위어 계속 수정 보완합니다. ** 작勺이 문서에는 '夕'으로 쓰여 있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작으로 읽는다. ** 전錢이 문서에는 '戔'으로 쓰여 있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錢이다. ** 주지 같은 경우는 단위어 사전에 나오는 것과 고전에 나오는 것을 대조하면 정확하지 않다. ** 동同은 올의 굵기, 옷감의 종류, 관할이 호조냐, 병조냐에 따라 다 달라서 어느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그밖에 기와는 눌訥이 쓰이는데, 이것도 몇 장인지 정리가 안 된다. 2020. 1. 13.
고전에 보이는 곡물명 ** 계속 수정 보완할 예정임 2020. 1. 13.
지도로 남은 조선후기의 장성부 1856년(철종 8)~1858년 장성부사長城府使를 지낸 한필교韓弼敎(1807~1878)의 《숙천제아도宿踐諸衙圖》 중 장성부長城府다. 내용 중 오자誤字가 몇 곳 있으니, 예컨대 객사客舍의 등산관登山館은 오산관鰲山館의 잘못이고, 삼문산三門山은 삼성산三聖山의 잘못이다. 이는 18세기에 그린 비변사인 방안지도備邊司印方眼地圖의 장성부다. 둘을 비교해 보면 약간의 차이가 있다. 2020. 1. 2.
과대포장된 고산자 김정호 신화-전라도 장성의 경우 《대동여지도》는 최남선 이후로 너무도 과대포장 하는 바람에 오늘날 1/5만 지도 정도 정확성이 있다고 여기는 분이 많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실제 가보지 않아 엉뚱하기 그지없는 지도이다. 장성의 산천도 진원현이 엉뚱한 곳에 있고 산들은 강을 건너 있으며 청암역으로 바뀐지 200년인데 단암역으로 되어 있기도 하다. 정확성은 《해동지도》가 훨씬 높다. 지리지인 《대동지지》도 부정확은 형언키 어려운 정도여서 유형원의 《동국여지지》가 훨씬 정확하다. 대동지지를 분석해 보면 김정호는 비변사의 하리로 비변사에 있는 비변사방안지도와 기왕의 지리지를 종합해서 이를 지도로 만들었던 듯하다. 하지만 실제 가보지는 않아 전혀 엉뚱한 결과가 나타났다. 그 업적은 높게 쳐야하겠지만, 맹신한 데 대한 반성도 필요하다. 김정호가 .. 2019. 12. 30.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3대 새빨간 거짓말 1. 가난해서 송곳 꽂을 땅도 없고 일단사일표음한다. (문집 간행할 정도면 요즘으로 따지면 100억 이상 자산가는 됨) 2. 벼슬에 뜻이 없다. (문집에 낙방한 과거시험 답안지 수두룩) 3. 병에 시달려 다 죽은 몸이다. (서른 즈음부터 그래 놓고 90까지 사는 경우가 많음) By 기호철 2019. 12. 11.
2x9는 부추 둘 부추[韭子] 김우급(金友伋, 1574~1643) ​ 푸른 머리털 이슬비에 젖으니조석으로 잘라도 아직 남았네사람마다 열여덟 반찬 먹으니이 상서를 비웃지는 마시구려 翠髮和煙雨, 昏朝剪更餘. 人皆十八食, 莫笑李尚書 [해설] 제목 ‘구자韭子’는 ‘부추[韭菜]의 씨앗’을 이르지만, 시 내용으로 보면 ‘부추[韭菜]’ 그 자체를 읊은 것이다. 3행의 열여덟 반찬은 부추를 이르는 말이고 4행의 이 상서李尚書는 후위後魏의 명신 이숭李崇(455~525)이다. 이숭은 상서령 의동삼사尚書令儀同三司를 지냈고 부유하기로는 천하를 압도하여 수천 명을 부렸는데도 성품이 대단한 구두쇠여서 너절한 옷을 입고 거친 음식을 먹었는데, 끼니에 언제나 고기도 없이 부추 나물과 부추 절임만을 먹었다. 이숭 문객인 이원우李元祐가 어떤 이에게 “이.. 2019. 12. 8.
동전 강제화 정책을 노래한 김우급의 시 동전을 사용하려고 먼저 시험 삼아 녹봉으로 나누어줌[用錢先試頒祿]김우급金友伋(1574~1643) 듣자니 조정에서는 동전 사용하려고백관에게 유달리 많이도 반사하다네지팡이 짚고 나가도 돈 한 푼이 없어나부끼는 주막 깃발도 자주 못보거늘 聞說朝廷用青銅, 百官頒賜也獨豐. 扶杖出門無一貫, 不堪頻望酒旗風. [해설] 동전을 유통 보급하기 위한 화폐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1633년(인조 11)에 조선통보朝鮮通寶를 법화法貨로 주조, 유통하기로 하였다. 이때 명나라의 만력통보萬曆通寶를 본떠 만들었는데 세종조에 주조, 유통하던 조선통보와 구별하기 위해서 팔분서八分書 조선통보로 주조하였다. 이 동전은 서울의 상평청常平廳에서 주조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 이듬해인 1634년에는 안동·대구·개성 등 물산物産이 풍부하고 인물.. 2019. 11. 30.
표절 팩트 폭격, 시구를 훔쳤나 안 훔쳤나? 중국 송나라 시승詩僧 혜숭惠崇이 하수는 산세에 나뉘어 끊어지고 봄은 불탄 자리에 들어 푸르네 河分岡勢斷 春入燒痕靑 라는 시구를 유난히 자부하였다. 혜숭의 사제師弟가 평소 표절을 일삼는 혜숭을 조롱하여 시를 짓기를 하수는 산세에 나뉘어 끊어진다는 것은 사공서의 시구이고 봄은 불탄 자리에 들어 푸르다는 것은 유장경의 시구로다 사형이 옛 시를 많이 범한 것이 아니라 고인의 언어가 사형과 유사할 뿐이라네. 河分岡勢司空曙 春入燒痕劉長卿 不是師兄多犯古 古人言語似師兄 라고 하였다. *** 이상은 기호철 선생 페이스북 2019. 11. 24 글인데 옮겨온다. 사공서司空曙(720~790)는 당대 시인으로, 字를 문명文明 혹은 문초文初라 했다. 유장경劉長卿 역시 당나라 때 시인으로 생몰년을 모른다. 字는 문방文房이라 했다.. 2019. 11. 25.
서정주〈비나리는 밤〉(1934) 비나리는 밤 徐廷柱 이러케 비가 나려쌋는 밤杜鵑이는 어느 골작에서 노래를 부릅니까.해지기 전 내 회파람으로서 궁장을 마추엇든그 이름 모를 山새들은 또 어데가 잇습니까.하늘의 별들은모조리 죽어버렷습니다.念佛외우든 老僧이 잠든지 오래고처마 끝에 풍경이 뎅그랑 우는 이 밤― 어머니여 기인 이 밤을 어찌하오리까.당신은 머언 옛날옛이얘기 들려주며 아들을 재웟지요그러면 오늘 밤도 아들은어머니 이얘기 듣겟습니다.당신은 지금 아득한 山들을 넘어서비나리는 이 밤을 내 숲속으로 날러오시겟습니까?(雲門庵) *** 이 시는 미당 시 중에서는 공간한 작품으로는 발표 연대가 가장 빠른 것 중 하나가 아닌가 한다. 2019. 11. 23.
사극의 어전회의와 역사의 어전회의 임금이 집무실인 편전에서 신하들과 만날 때 신하들이 좌우로 늘어서거나 이열종대로 엎드린 장면이 자주 노출된다. 그러나 그렇게 서는 경우는 없다. 어떤 종류의 모임이냐에 따라 자리 배치가 정해져 있고, 품계에 따라 나아갈 수 있는 위치가 정해져 있었다. 특히 정3품 미만은 편전 출입문 쪽 기둥을 넘어갈 수 없었다. (첨부한 창덕궁 선정전 사진의 왼쪽 두 기둥이 그것이다.) 다만 시종신은 예외였다. 조선이라는 사회 의전이 오늘날 의전만 못했다고 보면 안 된다. 2019. 10. 22.
탕춘대성 홍지문弘智門 유래는? 홍지문에 대해서는 "홍지문은 숙종이 친필로 '弘智門(홍지문)'이라 편액을 써서 문루에 달았는데,1921년에 주저앉아 방치되었던 것을 1977년 7월에 서울특별시 도성복원위원회에서 홍지문과 오간대수문, 그리고 주변 성곽 280m를 포함하여 복원하였다. 이때 홍지문 현판은 박정희 대통령의 글씨로 새겨졌다."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원래 이름이 한북문漢北門이고 기록을 아무리 찾아봐도 홍지문이라는 것은 보이지도 않습니다. 심지어 영조 24년 3월에는 한북문 어제현판을 잘못 걸었다고 고쳐 걸라는 지시를 내리기 까지 합니다. 홍지문이라는 근거를 아시는 분 계신가요? 아무래도 박정희시절 창작한 이름인 듯합니다. *** 홍지문은 북한산성을 보완하기 위한 탕춘대성에 난 성문이다.(김태식 補) 2019. 9. 29.
황윤석黃胤錫이 말하는 전라도 장성땅 아치실 이야기 by 황윤석(黃胤錫, 1729~1791) 〈아곡鵝谷〉 - 소곡(小谷), 아차실이라고도 하고 제곡(弟谷)이라고도 하며 어떤 이는 아찬곡(阿餐谷)이라 부른다.-鵝谷【亦曰‘小谷、아차실’, 亦曰‘弟谷’, 或云‘阿餐谷’。】 조상님들 거치셨던 이곳 아치실은 吾祖經行地깊은 산속 골짜기로 마을 아늑하네 山深里巷幽기수의 대나무엔 옛 그리움 남았고 淇竿留舊戀마당의 눈에는 유학한 자국 쓰였네 庭雪記曾游쓸쓸히 잔약한 손자가 여기 있나니 寥落孱孫在멀고도 아득하니 너무도 오랜 세월 蒼茫小劫悠해는 뉘엿뉘엿 말을 몰아 떠나면서 斜陽駈馬去가는 걸음걸음 자꾸자꾸 돌아본다 臨路更回頭 - 첨정부군(僉正府君)께서는 이씨(李氏) 집에 장가들었고, 취은부군(醉隱府君)과 구암부군(龜巖府君)께서는 기씨(奇氏) 집에서 배우셨으니 3세의 유적이 모두 .. 2019. 8. 22.
이순신(李舜臣, 1545~1598)과 명나라 도독(都督) 진린(陳璘)이 주고받은 시 이순신(李舜臣, 1545~1598)과 명나라 도독(都督) 진린(陳璘)이 주고받은 시 이순신이 도독 진린에게 준 시[寄陳都督璘韻] 賴天子勤恤 다행히도 천자께서 배려하시어 遣大將扶危 구원하라 대장을 보내주시었소萬里長征日 만 리 머나먼 길 원정 온 날이 三韓再造時 삼한 땅 다시 살아나는 때라오夫君元有勇 그대는 원래부터 용기 갖췄지만 伊我本無知 나는야 본래부터 사리 어둡다오只擬死於國 나라 위해 죽고자 할 뿐이거늘 何須更費辭 다시 무슨 긴 말이 꼭 필요하리 진린이 차운(次韻)하여 이순신에게 준 시[陳都督次] 1 堂堂又赳赳 위풍이 당당하고 더군다나 헌걸차신微子國應危 그대 없었다면 나라 응당 위험했으리諸葛七擒日 제갈량이 일곱 번 붙잡던 날이었고陳平六出時 진평이 여섯 번 계책을 낸 때였다오威風萬里振 그대의 위풍은 멀리.. 2019. 4. 25.
기정진(奇正鎭, 1798~1879), 입재기(立齋記) 입재기 立齋記 바야흐로 입재공(立齋公)의 두건, 신발이며 궤안(几案)이 남은 이 서재는 의심스럽고 판단이 어려운 문제를 처리하려거나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사방에서 찾아 왔으나, 평소에 의롭지 못한 자는 주저하며 들어오기를 꺼렸다. 서재가 서재다웠던 것은 공의 자태와 어묵(語默)에 달려 있었으므로 편액을 만든 일이 없었는데 더군다나 기문이겠는가. 공이 세상을 떠나고 30년이 지나 사자(嗣子)인 봉진(鳳鎭)은 그 서재를 비워두고 두어 마장[數帿] 되는 곳에 옮겨 살았다. 봉진의 아들로 양자로 나간 양연(亮衍)이 선조의 자취가 장차 없어질까 두려워 모든 것을 견고하게 만들고자 꾀하고자 해서 기와를 구워 초가지붕을 대체하여 오래가게 하고자 하였다. 약속을 정하고서 먼저 고(故) 옥류거사(玉流居士) 이삼만(李三.. 2019. 4. 11.
전(傳) 김시습(金時習, 1435~1493), 〈삼각산(三角山)〉 삼각산(三角山) 전(傳) 김시습(金時習, 1435~1493) 묶어세운 삼각산이 저 하늘을 꿰었으니 올라가면 북두성 견우성 딸 수 있으리 봉우리들 비와 구름 일으킬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만세토록 편안케 할 수 있다오 束聳三角貫太淸, 登臨可摘斗牛星. 非徒岳岫興雲雨, 能使東方萬世寧. [해설]김시습(金時習, 1435~1493)이 5살 때 세종이 불러 삼각산으로 시를 지으라고 하자, 지었다고 전하는 시인데, 그의 문집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다. 이제신(李濟臣, 1536~1584)의 《청강선생후청쇄어(淸江先生鯸鯖瑣語)》 〈청강선생 시화(淸江先生詩話)〉와 이수광(李睟光, 1563~1628)의 《지봉유설(芝峯類說)》 권13 〈문장부(文章部) 6 동시(東詩)〉에 수록되어 전한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이는 김시습의 작품이.. 2019. 4. 9.
추국안推鞫案에 보이는 이두자료 이두 정리(推鞫案을 중심으로) ※원문 뒤의 숫자는 추안 · 국안의 원문 쪽 수를 가리킨다. 加于더옥(더우여, 더욱) : 더욱, =尤于. 更良가새아 : ①다시,“同日 吉詠更推白等 蘇直長往來疎數 及云節奴豆應乞應伊等所在處是沙餘良 崔九翼旣是云節之九寸姪 則矣身果幾寸親是喩 幷以更良直招亦 更推敎是臥乎在亦”116. 庫 : 곳(군데),“楊州倭陣十二處乙 日日相戰乙仍于 同倭陣七庫 撤入京城” 敎味이산맛 : ①이신 뜻, 하신 뜻, “時未娶妻 又無家舍奴僕爲有去乎 相考施行敎味招辭是乎所 牒報是白齊”121. 敎味白齊이산맛삷제 : 하소서.“他餘事段 專亦知不得是去乎 相考施行敎味白齊. 同日 吉云得”119. ①이러하온줄로 아뢰옵니다.“ 敎事이산일 : 하소서, 하십시오. “其間終始曲折乙良 來此各人等良中 推問爲白在如中 可以詳知是白去乎 相考施行敎.. 2019. 4. 8.
계곡 장유(張維)가 기생 추향(秋香)에게 바치노라 시권(詩卷) 첫 번째 시의 운자(韻字)에 따라 지어서 오산의 금기 추향에게 주다[次卷首韻 贈鰲山琴妓 秋香] 계곡(谿谷) 장유(張維, 1587~1638) 깊은 가을 바람과 이슬 차가운 오경인데 홍계는 은은한 향기 아직까지 남아있네 별안간 청준 받고 살포시 보조개 짓더니 몇번 눈물 훔치고서 오사란 펼쳐 놓았소 깊은 정 언제나 가야금 봉현에 의탁하니 누가 짝 이루어 난새 타고 안개속을 날까 타향 떠돌다 우연히 이룬 분포 자리 백발 사마는 취해서 서로 얼굴 바라보네 九秋風露五更寒, 紅桂幽芳尙未殘。乍對青樽開寶靨, 幾收珠淚展烏闌。深情每託琴中鳳, 仙侶誰乘霧裡鸞? 流落偶成湓浦會, 白頭司馬醉相看。 《계곡집(谿谷集)》 권31에 수록됐다. [주석] 홍계(紅桂) : 망초(莽草)를 이르는 말이다. 여기에서는 추향(秋香)의 자(.. 2019. 3. 7.
차천로(車天輅)가 가야금 타는 추향에게 준 시 가야금 타는 기생 추향에게 주다[贈琴娘秋香] 차천로(車天輅, 1556~1615) 열두 봉우리 무산이 꿈속에도 쌀쌀해아롱진 창문엔 등불 하나만 깜빡이네 옛 곡조 튕기며 〈금루의〉 노래하더니시름겨워 찌푸린 채 난간에 기대었지비녀 위 나란히 나는 제비 부럽기만거울속 홀로 춤추는 난새 더욱 가련타연지파에 남긴 옛 자취 찾아 왔건만발자국 덮은 무성한 이끼 차마 못보겠소 十二巫山夢裏寒, 半窓明滅一燈殘. 手調舊曲歌金縷, 眉蹙春愁倚玉闌. 却羡雙飛釵上鷰, 更憐孤舞鏡中鸞. 臙脂坡下尋遺迹, 屐齒苔痕不忍看. (《오산집(五山集)》 속집 권2) [해설]차천로(車天輅)가 전라도 장성땅 기생 추향에게 준 것으로 그녀의 시권 첫머리에 있던 “강월생명계영한(江月生明桂影寒)……”의 원운으로 추정된다. 1행의 열두 봉우리 무산[十二巫山]은.. 2019. 3.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