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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2264

잠실 사직구장이 매일 만원이어야 달성하는 650만! 국내 프로야구장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는 서울 잠실야구장과 부산 사직구장이 만원 사례를 기록할 때다. 두 구장 모두 최대 수용인원이 대략 2만3천명. 저 구장이 일년 365일 단 하루도 빠지지 아니하고 저런 식으로 만원이 되면 두 구장 모두 총 관중수가 대략 700만 명이 된다. 국립중앙박물관 2025년도 총 관람객 총수 650만?저렇게 많은 사람이 매일 쏟아져 들어와야 달성하는 수치다. 정확한 통계는 국가를 구성하는 근본이다. 인구가 얼마인지도 모르고, 땅이 얼마이며, 그 경계가 어디인지를 모른다면 이것이 어찌 국가라 하겠는가?국민국가 대한민국이 성립한지 70년. 그렇게 성립한 국민국가 대한민국이 제대로 된 통계치조차 없는 데가 박물관 관람객 숫자다. 650만이라 하는데 도대체가 있을 수 없는 수치라.. 2026. 9. 15.
영국 땅 2,000년 된 투구 쓴 갈리아 전사는 누구? By Leman Altuntaş영국 웨스트 서식스West Sussex 소재 노스 버스테드North Bersted에서 중무장한 남성 무덤이 발굴되었을 때, 그들은 철기 시대 엘리트 전사에게 기대하는 검, 창, 방패와 같은 장비를 발견했다.하지만 한 가지 유물이 그의 정체를 밝히는 데 어려움을 더했다.바로 형태와 장식이 독특한 투구였는데, 이 투구는 영국과 해협 건너편 군사 전통을 연결하는 듯했다.2008년에 발견되어 기원전 1세기 중반 경으로 추정되는 이 무덤은 평범한 전사가 아니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그의 무기와 세심하게 준비된 무덤은 높은 신분을 암시하지만, 투구는 그의 신원을 규명하는 데 더욱 어려움을 더한다.켈트와 로마 세계를 잇는 투구이 투구는 종종 로마 투구로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2026. 9. 15.
반달돌갈은 언제나 가락바퀴랑 짝 지어 방구석을 튀어나온다 반달돌칼 기능 구명을 위한 열쇄 중 하나는 공반유물, 곧 어떤 유물과 함께 출토되느냐다.명색 고고학도들은 이걸 묻지도 않았고 물을 생각도 없었다.왜?의심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어느 왜계 고고학도가 동남아 요상한 벼 따개 그림 갖다 놓고선 이것도 그거다 하니 누가 죽었는지도 모른채 남들 곡하니 나도 엉겹결에 따라 곡했을 뿐이다.대전에서 발견된 주요 청동기 시대 흔적이라개중 하나가 노은동 유적청동기시대 집자리가 집중해서 나왔다.그 집자리 출토품 봐라.반달돌칼은 언제나 가락바퀴니 하는 직조 관련 유물과 세트다.농경 수확도구?웃기는 소리 좀 하지 마라.옷감에 쓸 재료 손질 도구다.식물 껍띠 동물 껍띠 손질용이다.마찬가지다.이곳에선 반달돌칼만 보이나 가락바퀴가 왜 없겠는가?언제나 집 안에서 반달돌칼은 나온다.무.. 2026. 9. 9.
봄눈 녹듯 풀리는 반달돌칼 신화 개소리라 나는 일축했다.농경 수확도구가 아니고 삼칼이라 했다.그래 전직 기레기 말이니 선뜻 못 믿겠고 그래서 무슨 개소리냐 다 인정.하지만 말이다.삼칼로 보고선 살펴 봐봐.그때부턴 삼칼로 보인다.내 장담한다.그래야 저 반달돌칼을 둘러싼 모든 의문이 봄날 눈 녹듯 풀린다.딱 봐봐.삼칼이잖아?껍띠 홀라당 벗기는용이잖아?대전선사박물관에서 전직 기레기 植이 識하노라. 불탄 삼끈과 함께 출토한 신석기 시대 반달돌칼!https://historylibrary.net/entry/%EC%A7%81%EC%A1%B0-%EC%82%BC 불탄 삼끈과 함께 출토한 신석기 시대 반달돌칼!"제2호 주거지는 길이 1050㎝ 너비 520㎝이며, 깊이는 45㎝가량 되는 반수혈주거지이다. 여기서도 기둥구멍, 주춧돌은 확인되지 않는다. 화덕.. 2026. 9. 9.
유관순 버리고 대타로 고른 고대사와 고고학 삼일운동 상징과도 같은 존재가 유관순이라, 태극기 이야기 나온 김에 이 일화도 이제는 어느 정도는 말해 두어야겠다.유관순...혹 이상한 느낌 받지 못했는가?삼일만세운동 그 무수한 희생자 중에 왜 저 여학생이 유명인물이 되었는지?그렇다고 유관순이라는 인물이 없었다는 것도 아니요, 엄연히 저 만세운동 희생자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한데 어찌하여 저가 그 아이콘처럼 대두했을까?더욱 정확히는 어느 시점에 유관순은 그런 인물이 되었던가?단 하나 이 시점에서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이콘으로서의 유관순은 어느 시점 누가 급조했다는 사실이다.식민지 시대 내내 유관순은 철저히 무명이었다.그런 그를 무명에서 구출한 이는 누구이고 언제였을까?놀랍게도 해방 직후 김활란이 등장한다. 그랬다. 유관.. 2026. 9. 8.
[A Passage to Jangmisanseong] (7) 호기롭게 해체했다가 단 한 군데도 성공 못한 목곽 보존처리 저 산성 목곽고木廓庫는 대전 월평동산성에서 드러날 때만 해도 고고학 뉴스가 되었지, 그 이후 하도 이곳저곳에서 산성이라면 모름지기 쏟아지는 까닭에 이젠 그 자체 출현은 뉴스감도 되지 못한다.충주 장미산성에서 그네들 추정으로는 한성백제기 목곽고를 발견했다 했지만, 이젠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저 먼 선캄브리아기에 단국대 매장문화재연구소가 조사한 이천 설성산성을 필두로 한성백제기 목곽은 꽤 나왔으며 신라 산성에서도 쏟아진다. 그 많은 산성 목곽은 발굴하고 감상할 때는 좋지만 문제는 처리 문제라, 내가 이 처리 문제는 계속 거품 물고 말했지만 절대로 네버 에버 뜯어서는 안 된다. 한데 실상은 딴판이라 고고학도 건축학도 보존과학도 가릴 것 없이 뜯지 못해 환장하는 흐름이 있다. 특히 보존과학 하는 놈들이 문제다.. 2026. 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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