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문화재현장2266 [천마도 장니로 가는 길] (spinoff5) 벗기고 또 벗긴 자작 경복궁 서남쪽 귀퉁이에 국립고궁박물관이 있고, 그 사무동으로 통하는 문 앞 정원에 자작나무 두어 그루가 인공 식재된 상태라, 꽤 연식을 자랑하지만 천상 자작나무는 이땅에는 식생이 맞지 아니해서 언제가 그 모양이다. 한때 이 자작나무를 내가 끊임없이 괴롭힌 적이 있다. 때마다 홀라당 그 껍대기를 벗겨대곤 해서 내가 벗긴 그 자리만큼은 언제나 더 허연 속살을 드러내곤 했다. 이러다 나무가 죽지 않나 싶을 정도로 벗기고 또 벗겼다. 딴 이유 없었다. 자작나무 껍질을 종이로 쓰기도 했다는데, 그렇게 벗기다 보면 그에 대한 무슨 답을 찾겠거니 했더랬다. 물론 그렇게 벗겨낸 껍질 하나로 종이로 쓰기는 곤란했겠거니와, 이를 어케든 가공하고 짓누르고 짓이기고 눌러 붙여서 튼실한 종이로 썼으리라.내가 그리 실험할 수는 .. 2026. 9. 1. [천마도 장니로 가는 길] (3) 근간을 뒤흔드는 의문, 말다래 맞어? 저 천마도 장니를 발굴한 조사단은 그 재료를 백화수피白樺樹皮라 했거니와, 물론 그 전후 문맥을 보면 이때 백화수피는 자작나무껍데기를 말함이 틀림없다.저 용어를 누가 생각했는지 참말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겠으나, 그 조사단장 김정기 박사가 워낙 일본에서 오래 생활하고 그쪽에서 고건축학과 고고학을 공부했으니 그의 발상이라 하겠거니와, 암튼 나는 저 명명법이 실로 오묘하다는 느낌을 지울 길 없다.백화수피白樺樹皮...글자 그대로는 자작나무를 포함한 껍데기가 흰 색깔이 나오는 나무 섬유질 껍데기는 모조리 이리 표현한다. 버드나무 껍데기도 허옇고, 소나무 껍데기도 실은 허옇다. 그래서 묘하다는 것이다. 백화수피 그 말 자체로는 설혹 저 재료가 자작나무가 아닌 다른 나무로 밝혀진대도 어디 하나 흠잡을 데가 없다. 어.. 2026. 9. 1. [천마도 장니로 가는 길] (spinoff4) 황남대총 자작나무 껍띠는 왜 중요한가? 이 자작나무는 한국문화사 대서특필해야 할 사건이라, 무엇보다 그 다기능 때문이기도 하겠거니와, 개중에서도 제지발달사에서 대서특필하고 호외로 발행해서 현창해야 할 사건이다.자작나무는 시대를 통괄하고 그것이 자생하는 문화권에서는 거개 다 저 종이 대용 기능이 있거니와, 불경만 해도 그것이 동아시아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고산지대를 통과하면서 자작나무 껍떼기 종이에다가 기록하는 시대가 있었으니, 그 실물 자료가 근자 고고학 발굴조사를 통해 알려진 일도 있다.혹자는 한반도에서 그 자생지가 함경도 일대임을 들어, 나아가 신라가 그것을 저처럼 활용하는 문화기반이 돌출이라 생각하기 십상인 모양이라, 이는 그네가 고고학적 검토를 충분히 행하지 못한 까닭이지, 본래 자작나무가 그랬던 것은 아니다.신라는 내물왕 무렵 동해안을.. 2026. 8. 31. [천마도 장니로 가는 길] (spinoff3) 신라 백화수피 이해를 위한 몇 가지 전제 천마도 장니 백화수피白樺樹皮, 그것이 자작나무임을 확정 혹은 추정하는데 결딴하는 다음과 같은 전제 혹은 확인이 매우 중요하다. 첫째, 그 자생지는 한반도에서는 함경도 지방이라는 사실둘째, 그 함경도는 고구려가 제대로 진출한 적이 없다는 사실 셋째, 그 함경도는 시종일관 말갈 혹은 읍루 혹은 그렇게 통칭하는 북방계 민족들이 점거했다는 사실넷째, 그러한 땅을 신라가 시종 일관해서 점유했다는 사실 이 문제들을 나는 시종일관 강조했거니와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신라가 저 함경도 일대 동해안 지방을 진출하고 장악한 시점이 중요하거니와 신라는 적어도 내물왕 무렵에는 함흥평야까지 진출했으며, 따라서 진흥왕에 의한 북방 영토 개척은 개소리이며 나아가 진흥왕 이후에 그 영토를 상실했다는 말도 새빨간 거짓말이다. 통일기에.. 2026. 8. 31. 남경 대보은사 자리를 꿰차고 나온 북송 시대 아육왕탑 북송北宋시대 유금보탑鎏金宝塔당시 장인들은 무엇을 사용하여 이 "가보급 보물"을 만들었을까?금박 탑[鎏金宝塔]에서 답을 찾아본다. 이 눈부신 황금빛 아육왕탑阿育王塔은 아육왕阿育王이 세웠다는 탑을 모방했다는 뜻에서 이리 부른다.아육왕阿育王은 인도 역사에서 공작 왕조孔雀王朝[마우리아 왕조] 제3대 군왕으로 아쇼카왕이다.이 이름으로 지은 탑은 모두 아육왕탑이라 한다. 불교가 중국에 처음 전래되었을 당시, 아육왕탑은 마치 찐빵처럼 뒤집힌 그릇 모양[복발覆钵], 곧 만두馒头 모양이었다고 전한다.[이때 만두는 둥근 만두를 말한다.] 이후 중국적인 요소들을 흡수하면서, 그 형태는 점차 오늘날 우리가 보는 모습으로 진화했다. 2008년, 칠보아육왕탑七宝阿育王塔 하나가남경南京 대보은사大报恩寺가 있던 터에서 발견되었다... 2026. 8. 31. 차탈회위크, 산 자 아래 죽은 자를 묻은 신석기 정착촌 9,000년도 더 전에 사람들은 세계에서 가장 놀라운 초기 정착지 중 하나인 차탈회위크Çatalhöyük(현재 터키 중부)에 살았다.이 고대 정착지가 특별한 이유는 집 바닥 아래에서 발견한 것들 때문이다.차탈회위크 사람들은 살던 집 안에 죽은 자를 매장했다. 바닥과 단상 아래에서 사람 유해가 발견되었는데, 때로는 같은 건물에서 여러 구 유골이 함께 발견되기도 했다.이 유적에서는 수백 개체 유골을 확인했다.어떤 매장은 몸을 웅크린 자세로 조심스럽게 놓여 있었고, 어떤 매장에서는 구슬, 도구, 안료와 같은 유물이 함께 발견되었다.더욱 흥미로운 점은 이 집들이 누군가 죽은 후에도 단순히 버려지지 않았다는 것이다.많은 경우, 사람들은 매장된 유해를 그대로 둔 채 건물을 계속 사용하고, 수리하고, 벽을 다시 칠.. 2026. 8. 24. 이전 1 2 3 4 5 6 ··· 378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