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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

목불인견 재수없음 신경주역 신라무덤 경부고속철 신경주역 시내버스 정류장 및 택시 승강장 인근에 이전 복원한 삼국시대 신라 무덤이다. 재수없게 웬 무덤을 사람 내왕이 가장 많은 데다 갖다 놓을 생각을 누가 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인근 고속철 공사구간에서 발견되었다 해서 저리 했을 것이로대, 뭐 볼짝없이 지도위원이란 자들과 문화재위원이란 자들이 탁상에서 저리 결정했을 것이다. 이전 복원은 누가 했는지 입간판에 없다. 저 내력은 어떠한가? 현지 안내판을 본다. 먼저 한글본이다. 탈초하면 이렇다. 경주 방내리고분군 1호 돌방무덤 | 慶州芳内里古墳群1號石室墳 The Ancient Tombs Site at Bangnae-ri, Gyeongju 삼국시대 (신라. 7세기경) 경주 방내리고분군은 단석산 동쪽 끝자락인 경주시 건천읍 방내리 산20-2번지 ..
태종무열왕비太宗武烈王碑 Monument of King Taejongmuyeol 태종무열왕비(동영상)
경주 귀신과 노는 밤 밤엔 귀신과 놀아야 한다. 묏등에 올라 문을 두들긴다. 귀신들아 내가 왔다. 나 비형랑이다. 귀신들이 도망한다. 야들아 내가 잘못 말했다. 나 길달이다.
Threshhold of Haeinsa Temple Janggyeong Panjeon Entrance to Haeinsa Temple Janggyeong Panjeon, the Depositories for the Tripitaka Koreana WoodblocksFor more information see below Tripitaka Koreana
500 year old Ginko Tree measured by Human Scale Bar 아들놈을 긴급 투입했음 잘 표시나는 빨간 잠바를 입힘 에세 라이트도 동원함
500 year old Ginko Tree, Gimcheon GINKGO TREE IN DAEDEOK-MYEON, GEUMNUENG Natural Monument No. 300 Location : 51, Joryong-ri, Daedeok-myeon, Gimcheon-si, Gyeongsangbuk-do This ginkgo tree is about 500 years old. It is 28 meters in hight, 125 meters in circumference of the root, and 11.6 meters in width of the middle part of the trunk. The length of the bough in the east, west, south, and north is 6.8 meters, 12.3 meters, 9.1 met..
BONGGOK-SA TEMPLE 김천 봉곡사 金泉鳳谷寺 봉곡사鳳谷寺 전통사찰 등록번호 : 가-92 호 위 치 : 김천시 대덕면 조룡리 882번지 BONGGOK-SA Traditional Temple Registration No.: Ga-92 Location: 882, Joryong-ri, Daedeok-myeon, Gimcheon 봉곡사는 1698년 영휴대사靈休大師가 기록한 봉곡사중 수사적비명鳳谷寺重修事蹟碑銘에 의하면 신라 진덕여왕대 (647~653년)에 자장대덕慈藏大德이 창건하고 고려초 도선국사가 중수했다고 한다. 봉곡사를 중수한 도선국사가 산 너머 (구성면 연곡燕谷) 에서 절터를 닦고 재목을 다듬는데 까마귀들이 지저귀며 밥을 계속 물고 가기에 이상히 여겨 뒤를 따라가 보니 지금의 봉곡사 터가 더 좋은 지라 이곳으로 옮겨 절을 지었다는 구전이 전해진다. 봉..
김천 증산 쌍계사터 동종 bronze bell from the site of sanggyesa temple housed at jikjisa temple, gimcheon, gyeongsanbukdo province, korea used for Buddhist rituals joseon period 같은 김천시 경내 증산면 쌍계사雙溪寺터 동종이다. 이것이 왜 김천 직지사 성보박물관으로 와 있는지는 모르겠다. 경남 하동에 있는 동명 사찰과는 다른 증산 쌍계사는 육이오때 화재로 전소되었다 한다. 면소재지 인근에 터가 남았으니 주초 등의 흔적을 본다. 말할 것도 없이 조선시대 작품이다. 명문이 뚜렷이 남았는데 제대로 촬영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