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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556

백화수피白樺樹皮 논쟁을 끝내버린 황남대총 고깔 황남대총을 구성하는 두 봉분封墳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남쪽에 위치한다 해서 남분南墳이라 일컫는 데서 출토한 유물로 딱 한 번 대외로 공개된 적이 있다. 그때 박물관에서는 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백화수피제 고깔과 관장식 白樺樹皮帽冠裝飾 Birch-bark Cap Fragments and Branch-shaped Ornaments 같은 사진을 좀 확대해 본다. 이 유물이 중대성을 함유하는 까닭은 첫째, 백화수피 활용 시점을 끌어올린 점이요, 둘째 그 정체를 실상 자작나무로 확정했기 때문이다. 신라가 백화수피를 활용한 이용해 여러 용도로 활용해 사용한 시점을 종래에는 6세기 초반 무렵 축조로 보는 천마총 출토 장니 천마도를 통해 추정했다면, 그보다 훨씬 빠른 시기에 신라가 이걸 사용했음을 보여주는 흔적인 까닭이.. 2020. 9. 17.
늙으면 물러나야, 노퇴老退와 궤장几杖 하사 앞선 강의 혹은 글에서 나는 595년생인 김유신이 만 70세가 되는 해(664) 정월에 사표를 집어던지는 장면을 근거로 70세가 되면 치정致政한다는 예기禮記 왕제王制편 언급이 불문률처럼 통용하는 신라사회 한 단면을 소개하면서, 이런 모습이 고려시대에는 더욱 극성을 부리면서, 때로는 이것이 중요한 정치역학 구도가 되어 정적을 퇴출하는 방법으로 작동하기도 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나아가 70세 퇴직을 허락하면서, 혹은 허락하지 않으면서, 이 무렵이면 임금이 그 원로신하한테 궤장几杖이라는 지팡이와 의자를 하사하면서 편안한 여생을 보내기를 기원하는 의식과 더불어, 그런 사람이 궁궐을 출입할 적에는 허리를 굽히지 아니해도 되고, 임금 앞에서는 자기 이름을 부르지 아니해도 되며, 가마를 타고 들락거릴 수 있게 .. 2020. 9. 16.
에밀 졸라와 집단광기 내가 읽은 에밀 졸라 《나는 고발한다 J'accuse..》의 객체를 집단 광기로 본다. 실제 그의 관련 논설 곳곳에서는 대중의 광기를 논한다. 집단 광기를 모두가 경멸하나 그 어느 누구도 내가 그 광기에 포박된 줄을 모른다. 이르노라. 이것이 광기니라. (2014. 9. 9) 2020. 9. 16.
종이로 쓴 자작나무 껍질 New Dates Push Back Use of Zero Thursday, September 14, 2017 www.archaeology.org/news/5916-170914-bakhshali-manuscript-dates?fbclid=IwAR3gnaqFk9gNthp0mJOCWCPacxnTi6Ca_6IyYnbT7g272vdncH08qiCXmtMNew Dates Push Back Use of Zero - Archaeology MagazineOXFORD, ENGLAND—The Guardian reports that new radiocarbon dates have been obtained for the Bakhshali manuscript, which was written in an ancient form o.. 2020. 9. 16.
땅딸보 조조曹操 중국 남조시대 송宋나라 임천왕臨川王 유의경劉義慶 찬 《세설신어世說新語》를 구성하는 여러 편篇 중 용지容止라는 이름이 붙은 데는 제목 그대로 용모와 행동거지에 관한 모음집이라, 그 첫 머리 일화가 위무장견흉노사魏武將見匈奴使라는 제하로 실린 다음 이야기다. 저 제목은 위魏 무제武帝가 흉노 사신을 접견할 때 정도를 의미한다. 위 무제가 장차 흉노 사신을 접견하려 했지만, 스스로 몰골이 비루하니 먼 나라에 위엄을 보이기는 부족하다 생각하고는 최계규崔季珪한테 대신 자기 역할을 하게 하고는 무제 자신은 칼을 잡고는 어좌 앞머리에 서 있다. 친견이 끝나고서는 간첩을 시켜 흉노 사신한테 묻기를 "위왕은 사람이 어떻습디까?" 하니, 흉노 사신이 대답하기를 "위왕은 진짜 고아한 풍채가 남들과 다릅니다. 하지만 어좌 앞머리.. 2020. 9. 15.
김유신 탄생 전야, 서현과 만명의 결합 김유신이 어떤 사연을 통해 잉태되고 태어나게 되었는지를 알려주는 유일한 근거는 삼국사기 권 제41(열전 제1) 김유신 上이 저록한 다음 대목이다. 일찍이 서현이 길에서 갈문왕葛文王 입종立宗의 아들인 숙흘종肅訖宗의 딸 만명萬明을 보고는 마음에 들어 눈짓으로 꾀어 중매를 거치지 않고 결합했다. 서현이 만노군萬弩郡 태수太守가 되어 만명과 함께 떠나려 하니, 숙흘종이 그제서야 딸이 서현과 야합한 것을 알고 미워해서 별채에 가두고 사람을 시켜 지키게 하였다. 갑자기 벼락이 문간을 때리자 지키던 사람이 놀라 정신이 없었다. 만명은 창문으로 빠져나가 드디어 서현과 함께 만노군으로 갔다. 서현이 경진일庚辰日 밤에 형혹성熒惑星과 진성(鎭星) 두 별이 자기에게로 내려오는 꿈을 꾸었다. 만명도 신축일辛丑日 밤에 한 어린아이.. 2020. 9. 14.
한반도에 침투하는 생일 앞선 글에서 나는 동아시아 생일이 황제를 기준으로 당 현종 때 탄생했다고 지적했다. 그런 생일이 한반도에도 침투하기 시작하니, 이를 고려사절요에서 죽 뽑는다. 빠진 것이 있을 줄로 알지만, 흐름을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되리라 본다. 나아가 이를 정리한 글도 내가 보기는 했다. 제4권 정종 용혜대왕(靖宗容惠大王) 병술 12년(1046) ○ 12월에 백관이 건덕전에 나아가 성평절(成平節)을 하례하고, 재추(宰樞) 급사중승(給舍中丞) 등 왕의 시신(侍臣)들에게 선정전(宣政殿)에서 잔치를 베풀었다. 성평절은 왕의 생일이다. 승록사(僧錄司)가 아뢰기를, “이제부터 성평절이 되면 국가는 기복도량을 외제석원(外帝釋院)에 7일 동안 설치하고, 백관들은 흥국사(興國寺)에서, 동서 양경ㆍ4도호ㆍ8목은 그곳에 있는 절에서 .. 2020. 9. 14.
멀고먼 부처님을 향한 길, 삼중잠금장치 채운 석굴암 석굴암을 공중에서 내려다 본 평면도다. 인터넷에서 긁어왔다. 구조를 이해한다는 차원에서 제시한다. 보다시피 석굴암은 부처님이 위치하는 원형 주실主室을 뒤쪽 후미진 곳에다가 넣고, 그 전면에 평면 방형인 전실前室을 배치했으니, 두 군데로 통하는 통로가 있다. 유의할 점은 주축 장축은 동-서 방향이라는 사실이다. 우리한테 익숙한 남북 방향이 아니다. 다시 말해 부처님은 서쪽 끝 후미진 안방에서 전실 너머 동쪽을 향한다. 더 간략화한 평면도로 역시 아무데서나 긁어왔다. 전실과 주실 통로를 비도라 했는데, 저건 어디에서 굴러먹다 온 용어인지 모르겠다. 중국 고고학 용어를 빌린다면 용도甬道라 하는 통로다. 보다시피 전실 양쪽 벽면에는 팔부신중八部神衆이라 해서, 불국토를 팔방에서 호위하는 무사 8명을 네 명씩 벽면.. 2020. 9. 10.
모란은 억울하다 삼국사기 삼국유사가 수록한 신라 선덕여왕에 얽힌 모란 이야기, 곧 당 태종 이세민이 모란 그림과 모란씨를 보냈는데 그 모란 꽃에 나비가 없음을 알고는 그 모란씨가 발아한 모란꽃은 향기가 없을 것임을 선덕이 알았다는 이야기는 모란을 둘러싼 곡해 하나를 낳게 하거니와 이르기를 모란꽃은 향기가 없다는 것이니,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한테 주어진 각종 모란은 꽃이 진하기 짝이 없다. 그런 까닭에 많은 이가 그런 이야기가 모란을 곡해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조심할 점은 저 이야기 어디에도 모란은 본래 향기가 없는 꽃을 피운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니, 대신 이세민이 보낸 모란은 꽃이 향기가 없는 특수품종이라는 말을 강조할 뿐이라는 사실이다. 이 둘을 혼동하면 안 된다. 내친 김에 동아시아 역사를 보건.. 2020. 9. 7.
야유타국阿踰陁國과 황룡국黃龍國, 허황옥을 둘러싼 두 곳의 출자出自 금관가야 시조 김수로 파트너 허황옥許黃玉을 둘러싼 출자出自와 관련해서는 현재까지는 유일한 증언이 《삼국유사》 기이편에서 절록切錄한 고려 문종시대 문헌인 《가락국기》가 거론한 아유타국阿踰陀國이 전부였으니, 이는 후대 허왕혹 출신지를 인도로 거론하는 바탕이 된다. 그 근거가 된 대목을 보면 김수로와 첫날을 보내는 날 그 배필이 된 허황옥이 수로한테 하는 다음 말이 그것이니, 저는 아유타국阿踰陀國 공주로 성은 허許, 이름은 황옥黃玉이라 하며 나이는 16살입니다.[妾是阿踰陁國公主也, 姓許名黄玉, 年二八矣.] 유의할 점은 그가 아유타국을 거론했지, 그것이 인도인지 어딘지는 어디에서도 거론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 아유타국을 인도에 있는 나라라고 해석한 것은 후대 역사학자들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아.. 2020. 9. 5.
지도로란? 이젠 설명하느라 입이 아픈데, 나는 그 태고적부터 저 지도로란 이름으로 이곳저곳에서 활동했거니와, 지금도 유튜브 계정 이름은 '지도로 고고야담 JIDORO'S HISTORY STORAGE'이라 할 정도이니, 그런 까닭에 저간의 사정을 알 리 없는 이로 대체 지도로는 무슨 개뼉다귀냐 물어오는 분이 더러 있으니 그런 사람들한테 매양 나는 "아 그거? 신라 지증왕 이름인데 짬지 길이가 45센티라 해서 내가 가져다 쓰는 거야" 하면 "에이 무슨 그런 장난을 치느냐" 하기에 나는 다시 "내가 지어낸 말이 아니고 삼국유사에 나와" 하면 "에잇 설마요?" 하는 반응이 압도하며 많다. 우리 사회가 불신지옥이라 하더니, 왜 삼국유사에 나오는 이야기라는데 믿지 못한단 말인가? 삼국유사 권 제1 기이紀異 제1에는 지철로왕智.. 2020. 9. 5.
접어 포개서 시신 얼굴가리개로 쓴 신라금동관 6세기 초반에 만들었다 추정하는 신라 적석목곽분인 경주 황남동 120-2호분은 발굴 결과 금동관을 접어서 시신 얼굴가리개로 쓴 것으로 드러났다. 저 금동관이 얼굴을 거의 온전히 가린 것은 분명하되 그렇다면 저걸 머리를 아예 다 덮어씌운 것인지 아니면 절반을 포개서 수건처럼 얼굴에 댄 것인지가 궁금해 조사단에 직접 확인한 결과 후자임이 확실하니 그것 관이 접힌 부분이 명백히 드러났기 때문이라 한다. 얼굴 부분만 떼서 보면 이렇다. 앞선 관련 글에서 내가 잠깐 말했듯이 이 전통이 같은 경상도 문화권에서 시대를 좀 거슬러 올라가면 부채를 저런 용도로 쓰기도 함을 본다, 부채로 저런 식으로 시신 얼굴을 가리는데 지금으로부터 대략 이천년전, 그러니깐 저보단 대략 오백년 정도 빠른 서력기원 전후 이른바 통나무 목관.. 2020. 9. 4.
발명한 김정희와 박제가 《용재수필》 물린 자리 허전함을 메꾸고자 새벽에 뒷다리 잡기 시작한 후지즈카 책 역본이다. 원저 명성이야 익히 알려진 바이거나와 우리가 아는 추사 김정희는 '발명'되었다. 다시 말해 추사는 자연히 주어진 그 무엇이 아니요 누군가가 필요에 의해 주물한 이미지다. 그 위대한 주물의 용범을 만든 이가 후지즈카요 그가 주물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나는 후지즈카를 제대로 소화한 적이 없다. 저 일본어 원전은 무단 복제본으로 오래전에 구해 놓았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후지즈카가 더욱 놀라운 점은 박제가 역시 저의 손끝에서 관속에서 튀어나왔다는 사실이다. 물론 일본인 후지즈카에게 김정희나 박제가가 종착역은 아니었다. 그가 추구한 바는 청대 고증학의 일본 열도 상륙의 양상이었고 그것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 2020. 9. 4.
김유신의 두 마누라와 네 딸, 그리고 조카 김유신은 삼국사기에 의하면 정실 자식으로는 태종무열왕 딸인 지소부인과의 사이에서 5남4녀를 두었다. 아들로는 삼광과 원술 등이 모두 대아찬 이상 등위의 재상을 지냈다는 점을 특기할 만 하거니와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아버지 후광이었다. 문제는 저 기술이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세한 근거 제시는 생략하지만 저 아들 중에서 행적을 분석하면 맏아들 삼광은 결코 지소부인 소생일 수는 없다. 김유신은 655년 지소와 혼인했는데, 당시 지소는 스무살도 안된 애송이고, 반면 삼광은 그 지소보다도 훨씬 나이가 많았다. 더구나 김유신이 지소를 맞아들일 때 나이가 이미 61세라, 이때까지 미혼으로 지냈다고 보긴 힘들다. 고자도 아닌데 말이다. 삼국사기와 화랑세기 관련 기술을 종합한 김유신 혼인 관계도와 .. 2020. 9. 3.
[복수에 불타는 팔순 왕] (2) 고구려왕을 효수했다는 주장 표문은 요컨대 우리랑 힘을 합쳐 고구려를 치자는 내용이다. 당신들이 고구려 서쪽을 치면 남쪽에서 우리가 쳐서 고구려를 협공하잔 것이다. 당시 백제와 개로왕이 완전한 고구려 타멸, 곧 멸망을 생각했는지 아니면 본떼보여주긴지는 알 순 없지만 군사동맹을 제안한 것이다. 이 표문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저와 고구려는 조상이 모두 부여 출신이므로 선조 시대에는 고구려가 옛 정을 굳건히 존중하였는데, 그의 조상 쇠釗가 경솔하게 우호 관계를 깨뜨리고 직접 군사를 거느려 우리 국경을 침범하여 왔습니다만 우리 조상 수須가 군사를 정비하여 번개 같이 달려가 기회를 타서 공격하니 잠시 싸우다가 쇠의 머리를 베어 효시하였습니다." 이에서 말하는 쇠釗가 바로 100년 전에 백제와의 평양성 전투에서 흐르는 화살에 맞아 죽은 고.. 2020. 9. 2.
[복수에 불타는 팔순 왕] (1) 개로왕이 북위에 보낸 외교문서 동아시아 역대 제왕으로 조선 영조 이금李昑(1694~1776)이 향년 83세로 장수했다고 하지만, 남월왕南越王 조타趙佗와 고구려 장수왕에 견주면 번데기 앞에서 잡은 주름에 지나지 않는다. 조타는 정확한 나이를 알 수는 없지만, 백수 어간을 누렸음이 확실하다. 조타의 경우 기원전 207년에 즉위해 기원전 137에 죽었으니, 왕위에 있은 기간만 70년이다. 장수왕은 광개토왕비 발견으로 문제가 생기긴 했지만, 어차피 그 차이는 1년에 지나지 않으니 대세에 지장이 없거니와, 삼국사기에 의하면 412년 음력 10월에 즉위하여 재위 79년 만인 491년 겨울 12월에 훙薨하니 향년 97세라 장수왕이라 시호했다고 할 정도다. 장수는 본명이 거련巨連인데, 중국 사서에서는 련璉이라는 한 글자로 등장한다. 그를 일러 몸과.. 2020. 9. 2.
신라가 세운 문주, 부용국으로 전락한 백제 백제는 두 번 멸망했으니 1차 멸망은 475년에 있었다. 이때 백제는 왕도를 한성漢城에 두고 있었으니, 그런 까닭에 이 시점 이전까지 대략 500년 백제를 떼어내 한성백제라 이름하기도 한다. 이들을 멸망으로 이끈 이는 고구려였으며, 당시 왕은 장수였다. 광개토왕 담덕 아들인 장수왕은 재위한지 이미 63년이 되는 해에 3만 대군을 일으켜 백제 왕도로 진격했으니, 그가 왕위에 즉위한 때가 대략 18세 무렵이니, 이때 이미 팔순 상노인이었다. 그런 그가 얼마나 백제를 철천지원수로 여겼던지 친히 군대를 이끌고 출정한다. 것도 겨울을 코앞에 둔 시점에 말이다. 이 사건이 정작 삼국사기 권 제18 고구려본기 제6 그의 재위년도에는 다음과 같이 아주 간략하게 적혔거니와 9월에 왕이 병력 3만을 거느리고 백제를 침략하.. 2020. 9. 1.
[김유신 마누라論] (1) 남편 죽고 39년을 더 산 지조智照 삼국사기 권 제5, 신라본기 제5 태종무열왕 2년은 김유신이 만 60세가 된 해다. 595년 생이니, 당시 나이 관념으로는 61살이었던 때라, 그때 환갑이라는 개념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내가 확언은 못하겠지만, 없었을 가능성에 무게중심을 둔다. 당시에는 생일 관념도 실상 없던 때라, 생일이라 해 봐야 부처님 생일인 초파일 정도만 기념하는 시대였다. 동아시아가 그랬다. 태어난 날이 특별하다 해서 매해 그날에 즈음해 조촐하건 떠들썩하건 생일잔치라 해서 기념하기 시작한 것은 동아시아를 보면 당 현종에 와서야 비로소 확연히 보인다. 분류식 백과사전인 류서類書 중 일부를 보면 생일生日이라는 항목을 설정하고, 그런 생일 기념이 남북조시대 말기쯤에는 등장하기 시작한 것으로 기술하기는 하지만, 내 보기엔 영 믿을 수 없.. 2020. 8. 31.
안견을 배우고 포도를 잘 그렸다는 신사임당 "어무이는 평소 그림솜씨가 아주 비상하셨으니 일곱살 때부터 안견 그림을 따라 그리다가 마침내 산수화를 그리시니 극히 절묘했다. 또 포도를 그리셨는데 세상에 흉내를 낼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 그림을 베껴 그린 병풍과 족자가 세상에 많이 전한다." 율곡이 쓴 선비행장..다시말해 돌아가신 어머니 곧 신사임당 행적을 정리한 글 마지막 대목이다. 신사임당으로 통용하는 율곡 엄마 신씨는 첫째 그가 그림 공부 교보재로 삼은 안견 그림은 진품인가 모본인가? 둘째 생평 강릉과 서울을 오간 그가 포도를 직접 봤을까? 누가 이런 의문을 풀어주기 바라노라. (2014. 8. 31) 2020. 8. 31.
이상한 남포읍성 남포읍성 지도위에서 위치를 확인하세요 map.kakao.com 앞서 소개한 보령 남포읍성은 다음지도 스카비뷰를 통해 공중에서 내려다 보면 그 구조적 특징과 더불어 입지조건이 완연하게 드러나는데 첫째 아주 정확한 정사각형은 아니지만, 실상 그나 다름없다는 점이요, 둘째 서해 바다에서 상륙한 지점 길목에 자리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 읍성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남포읍성藍浦邑城' 항목을 보면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집필자는 조선시대 성곽 전공자로 현재는 충북대에서 정년퇴직 은퇴한 차용걸이며 이 글을 쓴 시점은 1995년이라 한다. 충청남도 기념물 제10호. 둘레 890m. 지정면적 11,478㎡. 현재 동·서·남문과 적대(敵臺)·수구(水口) 등의 시설이 남아 있다. 『문종실록』에 의하면, 이 성은 1451.. 2020. 8. 30.
신도神道 묘지 앞이나 종묘 같은 사당 앞에 난 길을 신도神道라 하는데 이를 일본 용어라 하는 무식한 자들이 있다. 그래? 이래도 신도가 일본 용어인가? 신도라는 말을 해설하는 항목 중 하나다. 4. 墓道。 謂神行之道。 《漢書‧霍光傳》: “太夫人 顯 改 光 時所自造塋制而侈大之。 起三出闕, 築神道。” 곽광 미망인인 태부인 현이 남편 곽광이 살아있을 적에 직접 만들어 놓은 무덤을 사치스럽게 더 크게 하니 기삼출관하고 신도를 만들었다. 《後漢書‧中山簡王焉傳》: “大為修冢塋, 開神道, 平夷吏人冢墓以千數。” 크게 묘역을 조성하고 신도를 냈으며 李賢 注: “墓前開道, 建石柱以為標, 謂之神道。” 묘 앞에 도로를 내는데 돌기둥을 세워 표식을 삼으니 이를 일러 신도라 한다. (2013. 8. 29) *** 神道라는 말이 여러 함의.. 2020. 8.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