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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556

1983년 아웅산테러의 현장 아웅산 묘지에 들렀다. 미얀마 건국의 공로자 아홉명을 기리는 기념물인데 아웅산만 별딱지를 붙였다. 이곳이 바로 1983년 10월9일 아웅산 폭파사건 현장이다. 묘지 입구 한켠에 기념관을 세웠다 한다. 이 기념관은 미얀마 정부에서 한국 대사관이 30년 임차한다 한다. 희생자 명단에 동아일보 사진부장도 있다. 우리 연합에서도 당시 최금영 선배가 현장에 있다가 구사일생 피투성이로 살아났는데 그 유품들인 카메라와 사진이 연합뉴스 본사 일층에 전시 중이다. 최선배는 내내 아웅산 후유증에 시달리다 타계했다. (2015. 9. 16) *** related article *** 1983년 10월 8일, 미얀마가 폭발했다1983년 10월 8일, 미얀마가 폭발했다[순간포착] 남북 분단사의 대참극…'아웅산 테러 사건' 송고.. 2020. 10. 10.
정력, 그 표상으로서의 몽정夢精과 몽설夢泄과 몽유夢遺 *** 2005년 1월 6일 기사다. `몽정기2' 개봉 계기로 본 역사문화적 해석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2002년 말 개봉된 김범수·김선아 주연 영화 《몽정기》에서 청소년기 성적 호기심이라는 주제를 끌어간 소재는 몽정夢精이 아니라 수음手淫(마스터베이션)이라고 보는 쪽이 더 정확할 것이다. 전편 흥행을 발판으로 14일 개봉되는 《몽정기2》는 몽정과 전혀 관계가 없을 법한 여고생들을 주요 등장인물로 설정하고 있다. 제목만 보면 전편이건 후속편이건 관람객을 우롱하고 있는 셈이다. 그건 그렇고 도대체 몽정夢精이란 무엇인가? 평균 이상 수명을 사는 남성이라면 대체로 몽정이라는 신체적 현상을 경험한다. 대체로 남성이 한창 신체적, 성적으로 성숙하기 시작하는 청소년기에 집중되기 마련인데, 그 자신의 의사.. 2020. 10. 10.
1983년 10월 8일, 미얀마가 폭발했다 [순간포착] 남북 분단사의 대참극…'아웅산 테러 사건' 송고시간 2020-10-10 07:00 임동근 기자 www.yna.co.kr/view/AKR20201006129300005?section=society/accident [순간포착] 남북 분단사의 대참극…'아웅산 테러 사건' | 연합뉴스 [순간포착] 남북 분단사의 대참극…'아웅산 테러 사건', 임동근기자, 사건사고뉴스 (송고시간 2020-10-10 07:00) www.yna.co.kr 그땐 미얀마가 아니라 버마라 일컫던 시절이었다. 그 도읍도 양곤이 아니라 랭군이라 하던 시절이었다. 그때 전두환은 버마를 국빈방문 중이었으니, 현대 버마 건국의 아버지 아웅산 국립묘지를 참배할 예정이었다. 전두환을 기다리면서 묘소 앞에 그를 수행한 사람들이 도열해 있던 .. 2020. 10. 10.
일본의 천황 후계 시스템과 신라의 성골 진골 아들 없는 나루히토 일왕 내달 8일 후계자 책봉의식 송고시간 2020-10-09 10:09 김호준 기자 당초 4월 19일 개최하려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연기 www.yna.co.kr/view/AKR20201009029300073?section=international/all 아들 없는 나루히토 일왕 내달 8일 후계자 책봉의식 | 연합뉴스 아들 없는 나루히토 일왕 내달 8일 후계자 책봉의식, 김호준기자, 사회뉴스 (송고시간 2020-10-09 10:09) www.yna.co.kr 일본 천황가 후계구도를 보면 실은 동아시아 세계를 관통하는 그 흐름을 그대로 잇는다는 사실을 엿보게 되거니와, 저들의 새로운 천황 즉위의식이라든가 천황위 후보서열 등등이 실은 우리한테는 사라진 그 전통시대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더욱.. 2020. 10. 9.
그들이 옷을 벗었다, 그리고 밭을 갈았다 앞서 나는 《미암집》에서 미암 유희춘이 증언하는 함경도 지역 나경裸耕 습속을 대전 괴정동 출토품으로 전하는 농경문청동기 나경 문양을 이해하는 첩경일 수 있음을 지적질한 기사를 2005년에 썼음을 상기했다. (이와 관련한 2005년 관련 기사 일화는 맨 뒤에 첨부하는 이 블로그 포스팅 참조) 이를 탈고하기 전 나는 그 워밍업으로 아래 기사를 손을 댔다. 2005.03.29 10:46:52 조선전기 문집 추린 '한국세시풍속자료집성'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이는 먼 변방 비루한 풍속에서 나왔으니, 생령(백성)에게는 질고(疾苦)가 되니 식자(識者)는 이를 해괴하다 여기나 많은 사람이 즐거워한다." 자위행위를 일삼는 아들을 훈계하는 내용까지 담은 미암일기(眉巖日記)로 유명한 조선중기 때 지식인 유희춘.. 2020. 10. 8.
"물고기잡이에 독약 사용을 금하라" [직장 동정(直長同正) 정채(鄭彩)가 상언(上言)하기를 “각 고을에서 진상할 은어[銀口魚]를 잡을 때 독약(毒藥)을 많이 쓰기 때문에 수서 동물[水族]이 다 죽습니다. 또 천방(川防)을 터 놓고 약(藥)을 타서 물을 흘려보내니, 화곡(禾穀)을 상하게 하여 그 폐단이 작지 않습니다.” 하니, 의정부에서 의논하기를 “각 도 관찰사(觀察使)로 하여금 규찰(糾察)하여 금지시켜야 합니다.” 하므로, 그대로 따랐다. (《문종실록》 즉위년 10월 10일) 어릴 때 익숙하게 보던 장면인데, 도대체 어떤 독을 쓰기에 곡식까지 상한다는 것일까? 환경오염에 대한 기사로는 대단히 빠른 기록이다. 뱀발) 약(藥)을 타서 물을 흘려보내니, 화곡(禾穀)을 상하게 하여 그 폐단이 작지 않습니다.[和藥流注, 傷損禾穀, 其弊不小]라는 .. 2020. 10. 7.
위魏·촉蜀·오吳로 흩어진 제갈諸葛 형제들 《세설신어世說新語》 제9 품조品藻 편에 네 번째 보이는 일화다. 제시한 원문에서 파란 고딕이 유의경劉義慶 본문이요, 나머지는 유효표劉孝標 주注다. 제갈근諸葛瑾과 그의 동생 제갈량諸葛亮, 그리고 이들의 4촌동생 제갈탄諸葛誕는 모두 성대한 명성이 있어 각기 다른 나라에서 있었다.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촉蜀은 그 용龍을 얻었고, 오吳는 그 호랑이를 얻었으며 위魏는 그 개[狗]를 얻었다"고 했다. 제갈탄은 위에서 하후현夏侯玄과 이름을 나란히 했고 제갈근瑾은 吳에 있었으니 오나라 조정에서 그의 기량에 탄복했다. 〔一〕 오서吳書에 일렀다:제갈근은 字가 자유子瑜이며, 그 선조는 갈씨葛氏로 낭야琅邪 제현諸縣 사람이다. 나중에 양도陽都로 옮기게 되니, 양도에 그 전에 갈씨가 있어 당시 사람들이 (본래 있던 갈씨와 .. 2020. 10. 6.
[화랑세기 없이는 나올 수 없는 발상] 박제상과 치술 그 유명한 박제상朴堤上은 실은 《삼국사기》 표현이며 《삼국유사》에서는 김제상金堤上으로 나온다. 그의 행적은 중언이 필요 없다. 한데 문제는 그의 마누라...남편이 왜국에서 신라 왕자 미사흔을 구출하고 죽자, 산에 올라 바다 건너 왜국을 바라보다 죽어 망부석望夫石이 되었다는 전설의 이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아무도 몰랐다. 한데 《화랑세기》가 출현한 이후에는 너나 가릴 것 없이 박제상 마누라를 치술鵄述로 간주하는 글이 잇따른다. 도대체 실명을 알 수 없던 박제상 마누라가 치술鵄述로 확정하기까지 무슨 곡절이 있는가? 《화랑세기》에 그리 나온다. 《화랑세기》에 나오기 때문에 그가 바로 치술鵄述인가? 이는 별개 문제다. 《삼국유사》 왕력편 신라 실성왕實聖王 조를 보면 그 마지막에 흥미로운 언급이 있다. "왕은 치술.. 2020. 10. 5.
마왕퇴한묘 马王堆汉墓 馬王堆漢墓(1) 구조 배치 주인공 墓墓坑模型 MODEL OF TOMB PITS OF THE THREE HAN TOMBS AT MAWANGDUT 一号墓 : 南北长 19.5 东西宽 17.8 深 20米 二号墓 : 南北长 11.5 东西宽 8.95 深 16米 三号墓 : 南北长 16.3, 东西宽 15.45 深 17.7米 The pit of Tomb No I measures 19.5m from north to south, 17. 8m from west to west and 20m in depth The pit of Tomb No.2 measures 11.5m from north to south, 8.95m from east to west and 16m in depth. The pit of Tomb No 3 measures 16.3m from nort.. 2020. 10. 4.
여러 《한서漢書》와 《후한서後漢書》 《세설신어世說新語》 제9편은 제목이 품조品藻라 이는 곧 시류별 품평이라는 뜻이니, 이를 영어 옮김 classification according to excellence는 그 의미를 잘 살렸다고 본다. 그 해제에서 김장환은 "본 편에서 실려있는 고사는 부자·형제·동료·친구처럼 서로 관련이 있는 인물이나 기질이 서로 비슷한 사람들을 비교하고 품평하여 그 우열과 고화를 구별하는 것이 대부분이다"이라고 설명한다.(김장환 옮김 《세설신어 中》, 살림, 2002. 2, 초판 3쇄 319쪽) 총 88편이 실린 이 편 첫 화話는 다음이다. 텍스트는 여가석 찬 《세설신어잔소世說新語箋疏》다. 파란 고딕이 유의경劉義慶이 본래 쓴 《세설신어世說新語》 본문이며, 나머지는 유효표劉孝標 주注다. 世說新語箋疏 品藻第九 汝南陳仲舉,潁.. 2020. 10. 4.
성기 노출 농경문 청동기와 나경裸耕 *** 기자가 참말로 환장할 노릇 중 하나가 자기 스스로 깨친 바를 내가 이리 밝혀냈노라고 쓸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점이니, 이 나경이 그러했다. 아래 2005년 내 기사에서 말하는 나경 습속을 《미암집》을 읽어내려가다가 발견하고는 내가 쾌재를 불렀거니와, 이걸 기사화할 뾰죽한 방법이 없었다. 내가 이런 걸 찾고 발견했노라, 이것이 바로 농경문청동기를 이해하는 한 방법일 수도 있다고 뇌까릴 수도 있지만, 그리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할 수 없이 잔머리 굴리고 굴리다 찾은 방식이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장을 동원하자는 생각이었다. 중박관장이라면 그런 대로 있어 보이고, 더구나 당시 이건무 관장은 주된 전공이 청동기였으니, 느닷없이 저 기사에 저리 끌려 들어왔다. 한데 이 양반 반응이다. 나중에 만났더니, 이 기.. 2020. 10. 3.
같은 말이라도 종회냐 완적이냐에 따라 평이 다른 법 종사계[鍾士季: 종회(鍾會)]가 늘 사람들에게 말했다. "내가 젊었을 때 글을 한 장 썼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완보병[阮步兵: 완적(阮籍)]의 글이라고 하면서 글자마다 모두 뜻이 살아 있다고 하더니, 그것이 내가 쓴 것임을 알고 나서는 더 이상 말하지 않더군.” 鍾士季常向人道: “吾少年時一紙書, 人云是阮步兵書, 皆字字生義, 旣知是吾, 不復道也.” [《續談助》四] 1. 종사계(鍾土季): 종회(鍾會), 삼국 위나라 사람, 종요(鍾鑑)의 아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재지(才智)가 있었다. 사마소(司馬昭)를 따라 제갈탄(諸葛誕)을 토벌하여 정서장군(征西將軍)에 임명되었으며, 촉나라가 평정된 뒤 사도(司徒)에 올랐다. 이는 《속담조續談助》가 인용한 동진 처사東晉處士 배계裵啓 撰 《어림語林》에 보인다. 김장환 옮김을.. 2020. 10. 2.
이여가爾汝歌, 황제와의 야자타임 오吳나라 군주 손호孫皓는 자가 손빈孫賓이며, 손종孫鍾의 현손이다. 진晉나라가 손호를 토벌하여 손호가 진나라에 귀항歸降하자, 진 무제武帝[사마염(司馬炎】가 손호를 귀명후歸命侯에 봉했다. 나중에 무제가 군신群臣과 크게 연회를 벌였는데, 그때 손호도 그 자리에 있었다. 무제가 손호에게 물었다. "듣자하니 오 땅 사람들은 를 잘 짓는다고 하던데, 경이 한 번 지어보시오.” 손호는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좋습니다” 하고서, 무제에게 술을 권하며 말했다. “옛날에는 자네의 이웃이었지만, 지금은 자네의 신하되었네. (자네에게 술 한 잔 올려) 자네의 만수무강을 비네.” 좌중의 사람들이 모두 아연실색했으며, 무제도 후회막급이었다. 吳主孫皓, 字孫賓, 卽鍾之玄孫也, 晉伐孫皓, 皓降晉, 晉武帝封皓爲歸命侯, 後武帝大會群臣,.. 2020. 10. 2.
“돈만 주면 잘 써주께”, 공정성 의심받는 역사가 진수陳壽 진수(陳壽)가 장차 ≪삼국지(三國志)》를 수찬하려고 할 때 정양주(丁梁州)에게 말했다. “만약 천 곡(斛)의 쌀을 구하여 나에게 빌려준다면, 틀림 없이 존공[尊公: 정이(丁廙)]을 위해 훌륭한 전(傳)을 지어 주겠소.” 하지만 정양주가 쌀을 주지 않아 마침내 그의 전이 없게 되었다. 陳壽將爲《國志》, 謂丁梁州曰: “若可千斛米見借, 當爲尊公爲佳傳.” 丁不與米, 遂以無傳. [《類聚》七十二] 1. 진수(陳壽); 자는 승조(承祚), 사공(司空) 장화(張華)가 그의 재능을 인정하여 효렴(孝廉)에 천거함으로써 좌저작랑(左著作郞)에 임명되었다. 《삼국지》를 수찬했는데, 당시에 '양사(良史)'라는 칭송을 받았다. 2. 정양주(丁梁州): 정이(丁廙)의 아들, 자세한 행적은 미상, 정이는 자가 경례(敬禮)이며, 형 정의(.. 2020. 10. 1.
내가 자릴 비운 사이 있었던 일, 군산 선제리유적 검파형동기 *** 이 소식이 전해지던 그 무렵은 내가 풍찬노숙하던 시절이리라. 몸이 떠나면 맘도 떠나는 법이요, 그런 까닭에 이와 같은 소식에는 무덤덤하기 마련이라, 부러 귀를 쫑긋하지 아니하면, 그냥 지나치고 만다. 오늘 우연히 다른 내 기사들을 검색하다가 아래 소식이 걸리더라. 이 군산 선제리 유적은 아마도 발굴보고서가 정식 출간되었을 법한데 확인하지는 못했다. 아래 기술에서 주목할 점은 이 검파형통기를 "가운데 마디를 일부러 부러뜨려 위쪽과 아래쪽이 나뉜 채 묻혀 있었다"는 대목이다. 이 역시 죽음을 위한 의식이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이건 아마도 생전에 실제 사용하던 것을 함께 묻어주면서, 그것이 죽음의 영역을 표시하고자 부러 저리한 것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이른바 훼기毁器가 이리도 중요함에도, 그에 대.. 2020. 9. 30.
빡빡이와 장발족 80년대 장발이 유행한 가장 큰 이유는 두발 자율화였다. 자율화 때문이 아니라 자율화 이전 까까머리에 대한 억압 때문이었다. 왜 머리를 까까머리로 윽박해야 했는지 흔히 군사 문화 영향을 드나 나는 그걸로만 설명할 수 없다고 본다. 관행이었다. 왜 빡빡 밀게 했는지, 자율화 시대가 되니 종래의 억압에 대한 반발이 분출했다. 그리하여 다들 보란듯이 장발로 갔다. 엿먹으라였다. 한국현대사를 기술할 때 저 두발 자율화와 교복 자율화는 유신정권 시작만큼 중요하다. 이 억압과 허용의 길항에서 또 하나 중대한 사건은 내가 군복무 시절 일어난 과외자율화다. 한국현대는 이런 제압과 규율이 빚어낸 교향곡이다. 그나저나 저 사진 속 순단이랑 동순이는 어데갔는지 모르겠다. (2018. 9. 25) 2020. 9. 25.
부산 초원복국을 찾아서 김영삼을 대통령으로 옹립하려는 과정에서 일어난 이른바 부산 초원복국 사건 무대가 되는 그 식당은 지금도 영업 중이다. 우리가 남이가? 김기춘이 주도한 이 모임엔 부산지역 기관장들이 모조리 참석했다. 92년 12월인가 11월에 일어난 이 사건은 당시 대선 정국을 흔든 것으로 평가되기도 하지만 어차피 대권은 YS로 갈수밖에 없었다. 부산 지인을 만나 어디서 뭘 먹을까 고민하는데 이곳을 추천하는지라 두 말 없이 가자 해서 갔다. 주변 일대 풍광이 모조리 바뀌었지만 대략 이 어간인 것만은 분명한 그곳에 여전히 영업 중이다. 이 사건이 하도 요란했던 만큼 이 식당은 이후 유명세를 타고 번창일로를 걸었다고 기억한다. 내가 기자가 된 시점은 93년 1월 1일이며 또 내가 첫 발령지로 부산지사에 배치된 시기는 그해 6.. 2020. 9. 23.
다시 생각하는 경애왕의 비극 나는 앞선 고찰들을 통해 포석정鮑石亭은 신성한 맹서를 토대로 하는 혼인이 이뤄지는 웨딩홀이었으며, 한편으로는 화랑과 그가 이끄는 무리한테는 종묘와 같은 신성 공간이었음을 주장했다. 그곳은 웨딩홀인 까닭에 남녀 결합을 상징하는 석조 구조물을 형상화한 것이며, 비단 이뿐만이 아니라 그곳에는 역대 화랑 중에서도 특히나 존경받는 문노와 같은 인물 초상화를 봉안한 제의시설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 포석정이 신라시대에는 포석사鮑石祀 혹은 약칭 포사鮑祀라 일컬었던 것이다. 물론 이런 성격에서 포석사가 신라 하대로 올수록 유흥시설로 활용되었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웨딩에는 언제나 유흥이 따르는 까닭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천년왕국 신라가 마침내 종적을 감추고 마는 그 결정적인 사건, 다시 .. 2020. 9. 21.
포석정鮑石亭, 그 천년의 비밀을 까부시며 1. 화랑세기가 폭로한 포석정 경애왕 비극의 주무대인 경주 포석정이 화랑세기에는 포석사鮑石祀 혹은 포사鮑祀라는 이름으로 여러 군데 보이거니와, 祀라는 말에서 엿보듯이 이곳은 유흥을 위주로 하는 정자가 아니라, 신성한 제의祭儀 공간으로 등장한다. 요컨대 화랑세기가 말하는 포석정은 사당이다. 건립시기는 명확한 언급이 없지만, 적어도 법흥왕 이전임은 확실하다. 종래 포석정은 신라 말기에 등장하는 까닭에 막연히 그 무렵에 만든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지만, 화랑세기가 폭로하는 포석사는 그 연원이 아주 깊어 신라 초기로 거슬러 올라갈 가능성을 제시한다. 2. 예식장으로서의 포사鮑祀 포석사 혹은 포사의 기능과 관련해서는 현재 두 가지 정도를 적출하는데 첫째는 예식장이 그것이며, 다른 하나는 화랑의 전당이다. 먼.. 2020. 9. 21.
치초郗超가 추천한 사현謝玄, 부견符堅을 박살내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제7권 식감識鑒 편에 나오는 일화다. 현존본에서는 이 편 22번째 이야기로 수록됐다. 식감識鑒이란 간단히 말해 사람을 알아보는 감식안이다. 아래 텍스트는 《세실신어잔소世說新語箋疏》(여가석余嘉錫 撰)에 기반한다. 익히 알려졌듯이 《세설신어》는 남북조시대 유송劉宋 유의경劉義慶 찬이지만, 본문이 너무 간단해 이를 보완한 해설본 혹은 보완본이 이미 같은 육조시대 소량蕭梁 유효표劉孝標 손을 거쳐 나오니 세상에서는 이를 《세설신어주世說新語注》라 한다. 파란색 고딕이 유의경 원문이고, 그 사이에 첨가한 검은 글씨가 유효표가 덧보탠 부분이다. 이에서 보듯이 주석이 압도적으로 많은 가분수다. 번역은 김장환 역주(살림 간)을 인용하되 약간 수정을 가한다. 22 郗超與謝玄不善。〔一〕符堅將問晉鼎,既已狼噬梁.. 2020. 9. 18.
쌍분과 쌍탑 남쪽과 북쪽에 별도 봉분을 잇대어 쌓아 만든 경주 황남대총은 두 봉분을 구별하고자 각기 위치하는 방향에 따라 북쪽에 있는 것을 북분北墳이라 하고, 남쪽에 있는 것을 남분南墳이라 한다. 적석목곽분 시대 신라 무덤에는 이런 사례가 적지는 아니해서, 현재까지 발굴된 것으로 3곳 정도가 아닌가 하는데(하도 경주시내를 까디빈 데가 많아 사례는 세밀히 조사하면 증가할 것이다) 내가 세심하게 살피지 아니해서 자신있게 말할 순 없거니와, 대략의 기억대로 말하자면 북쪽이 여성, 남쪽이 남성으로 패턴화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둘은 현재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관계와 관련한 답은 부부다. 적석목곽분은 그 구조상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효율성이 너무 적어 같은 봉분에다가 부부를 함께 매장하는 이른바 단일 봉분 합.. 2020. 9.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