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역사문화 이모저모 3236 [대충대충 신라] 금관이 실용성을 갖추려면 모름지기 옴팡해야 한다! 에센 왕관Essen Crown의 경우 무덤 속에서나 출토하는 금관이 신라 왕 혹은 그에 준하는 신라 왕국 최고 실력자들이 생전에 대가리에 쓰고 다녔다는 뻘짓 행진을 일부 국립박물관 기반, 혹은 경주 기반 얼빠진 역사고고학도가 계속 하거니와 눈이 삐어도 단단히 삐어, 어찌 저리 대강대강 대충대충 허술하게 양철판으로 땜질해서 만든 것을 생전에 쓰고 다니며 권위를 자랑했다 하는지, 그 심리를 도대체 알 수가 없거니와 저런 금관을 생전에 쓰려면 무엇보다 그 구조가 조밀하고, 튼실하며, 콤팩트해야 한다.우리한테 주어진 신라 금관은 저에서는 몇 억 광년 거리가 있어 허약 허술하기 짝이 없다! 겉보기엔 그럴 듯하게 보이지만 그건 순전히 그것을 전시하는 박물관 농간에 의한 것이니, 화려한 조명 아래 억지로 끄나풀로 얽어매고 말목 박아 장치해서 계우 세워놨.. 2026. 8. 1. 뚜껑이 날아가면 고인돌이 되어버리는 석실분, 일본 석무대 고분의 경우 한반도 청동기시대 유산을 대표한다는 소위 고인돌은 그 형식에 따라 상다리 모양으로 울뚝한 탁자식(북방식)과 옴팡하니 돌뚜껑이 바닥에 찰삭 들어붙은 바둑판식(남방식), 그리고 뚜껑은 돌판으로 덮어버리고 그 아래다가 매장 주체 시설을 마련한 개석식(지하석곽식) 세 가지로 흔히 구분하거니와 저 중에서도 마지막 개석식은 실상 고인돌이 아니라 완연한 석실분이라, 고인돌로 볼 수도 없거니와 문제는 나머지 둘, 곧 상다리 탁자식과 배깔고 바닥에 누운 바둑판식이 되겠거니와 저 배깔고 누운 바둑판식도 이런 시설을 만들던 당시(대체로 청동기시대) 지표 사정을 알기 힘든 경우가 많거니와, 이 경우는 돌뚜껑 자체를 봉분으로 썼다 봐야 한다.문제는 우리가 고인돌이라 할 때 그 마스코트와 같은 탁자식. 그 대표주자가 앞서 여러 .. 2026. 7. 31. [시장 없는 귀신 왕조] (5-총결) 봄날 신기루 같은 오일장의 추억 대략 10년 안쪽에 일어난 일이다. 무형유산 삼을 만한 먹거리를 찾던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이 5일장을 착목한 적이 있다. 그 무렵이면 김치 담그기 문화가 일약 인류무형유산에 등재하고, 그에 힘입어 장담그기니 하는 유사 상품 개발이 잇따를 때라, 옳거니 해서 이런저런 의견 받아서 그래 오일장도 있지! 해서 조사에 나섰더랬다. 그 기초 조사를 어느 연구소에서 맡았으니, 그네들이 그렇게 조사하고선 (무형)문화재위원회에 보고까지 했더랬다. 당시 나는 그 위원이었으니, 그날 일을 어렴풋이 기억한다. 문제는 그 오일장이 유구한 전통쯤 되는 줄 알았는데 웬걸?근현대를 지나 조선시대로 들어가니?오일장이 없네?당혹스럽기는 연구소도, 위원회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나는 그런갑다 했다.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2026. 7. 29. [시장 없는 귀신 왕조] (4) 시장 자체가 아예 없는 고려 왕도 개경 고려 중기 송나라 사신단 일원으로 와서 개경을 둘러보고선 그 귀국 보고서로 완성한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이 증언하는 당시 고려사회 단면이다. 아 물론 이것이 당시의 실상은 백퍼 완벽히 전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암튼 그 제3권 성읍城邑 편에서 채록한 방시坊市 논급 전문이다. 왕성王城에는 본래 방시가 없고, 광화문廣化門에서 관부官府 및 객관客館에 이르기까지, 모두 긴 행랑을 만들어 백성들의 주거를 가렸다. 때로 행랑 사이에다 그 방坊의 문을 표시하기를 ‘영통永通’ㆍ‘광덕廣德’ㆍ‘흥선興善’ㆍ‘통상通商’ㆍ‘존신存信’ㆍ‘자양資養’ㆍ‘효의孝義’ㆍ‘행손行遜’이라 했는데, 그 안에는 실제로 시장 거리나 민가는 없고, 적벽에 초목만 무성하며, 황폐한 빈터로 정리되지 않은 땅이 있기까지 하니, 밖에서 보기만 좋.. 2026. 7. 29. 대장장이가 재현한 전설적인 '울프베르트Ulfberht' 바이킹 검 노래, 희곡, TV 시리즈, 영화와 같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대를 초월해 불멸의 존재로 자리매김한 바이킹 시대는 수 세기 전의 약탈을 넘어 훨씬 더 광범위한 유산을 남겼다. 바이킹의 활동은 약탈에서 탐험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웠다. 그중에서도 울프베르트 검Ulfberht sword은 오랫동안 전설로 남았다. 노련한 바이킹 전사의 손에 이 검이 들려 있는 것을 본 적은 누구나 그것이 단순한 지위의 상징이 아니라 치명적인 무기임을 즉시 알아차렸다. 이 검에 사용된 강철 특성 덕분에 다른 검에 비해 압도적인 내구성을 자랑하며 전투에서 치명적인 위력을 발휘했다. 이 검은 대장장이들이 재료 과학이나 고에너지 물리학을 이해하지 못한 시대에 만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습지 철bog iron, 제련smelting, 패턴 .. 2026. 7. 29. [시장 없는 귀신 왕조] (3) 넘쳐나는 책 도둑, 내사본에 환장하고 손목 나갈 때까지 열라 베끼는 조선 사회 조선왕조는 겨우 18세기 넘어가야, 것도 본격으로 19세기 중후반에 가야 화폐경제를 기반으로 삼는 사회로 접어들거니와, 그 이전은 경제라 해 봐야 관급 공사 납품밖에 없었고 이렇게 삥땅친 물품을 왕의 이름으로 하사 분배하는 경제였으니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지표 중 하나가 도서라조선시대 책은 함부로 빌려주지도 않았고, 빌려와도 걸핏하면 삥땅 쳐서, 그 빌려준 놈이 죽기만 기다렸다.인쇄본 책이라 해 봐야 몇 부 되지도 않아, 왕실 종친 그리고 힘 있는 관리 몇 놈 농가묵고 나면 남지도 않았으니, 도서시장? 그딴 게 어딨어?그래서 중국 한 번 다녀오면 유리창 가서 신간 구해왔단 소문 나면 우루루 몰려가 것 좀 한 번 보여주라 해서 도서 품평회가 열린다.이건 박지원 시대도 마찬가지였으니, 노론 정통 가문 출신.. 2026. 7. 29. 이전 1 2 3 4 5 6 7 ··· 540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