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역사문화 이모저모 3267 히스파니아 로마 여성들은 공공 연회를 주최하며 지위와 명예를 얻었다 로마 여성들은 고대 기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보다 공공 연회에서 더 큰 역할을 했다.히스파니아에서 발견된 라틴어 비문을 분석한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부유한 여성들이 공동 식사 비용을 부담하고 이를 통해 공적 지위를 쌓았다고 한다. [역시 물주의 힘 아니겠는가? 권력은 지갑에서 나온다.]이 연구는 기원전 1세기 후반부터 서기 3세기까지의 금석문 36종을 분석했다.그중 20개는 여성이 비용을 부담한 연회를 기록하며, 14개는 남성이, 2개는 남녀 모두가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로마 도시에서 공공의 관대함은 종종 남성의 시민 권력과 연관된 점을 고려할 때, 여성의 참여 비중이 높은 것은 주목할 만하다.에풀라epula라고 일컫는 이 식사는 공식적인 공공 연회였다.종교 의식과 동물 희생 제사 후에 열리는 경.. 2026. 8. 15. 설마 이것도 광개토왕비 짝퉁? 똥개 눈엔 똥밖에 보이지 않는다.그래 이런 비석 글자 보고선 보고 들은 것이라고는 호태왕비밖에 없는 놈들이야 대뜸 그러지 않겠는가?와? 광비廣碑다!마침 광비에 보이는 불궤不軌할 때 그 軌자도 보이네? 광비 아류작이잖아? 그래?글타면 이 비석도 광개토왕 시대 고구려인들이 새긴 거야?그 땅에 쳐들어가서 저런 비석 자랑스럽게 새겨 세웠다고?미안하다.사진은 동한 말기 낙양 벽옹인가 하는 대학 앞마당에 새겨 세운 이른바 희평석경熹平石經 잔편이다. 2026. 8. 15. 때려죽여도 7세기 이전으로 오를 수 없는 월성 비편, 8~9세기일 수도, 고려 조선시대일 수도 일단 육안 판정임을 전제로 삼고 금석문 시대를 판별할 때 물론 서체가 중요하다.다만 그것이 절대 준거임은 있을 수 없으니, 후대라 해서 선대 서체를 활용하지 아니하는 것도 아니며 서체는 참고사항일뿐이다.저것이 광개토왕비 서체? 그건 그렇게 보고자 하는 놈들 생각 일루전에 지나지 않는다.문제는 저 재료랑 비석을 가공하는 방식.언뜻 화강암 종류 같고, 무엇보다 글씨를 쓸 면을 박박 문질러서 반질반질하게 만들었다.저런 기법, 아무리 빨라도 삼국시대 말기 이전에는 등장할 수 없다.근거 대봐!삼국시대 말기 이전 금석문으로 저런 식으로 만든 거 있는지?백제 멸망기에 만들었다고 보는 사택지적비 정도가 계우 비교할 만하고 신라의 경우 통일 직전 아마도 태종무열왕 시대 무렵에는 저런 식으로 비석을 제작하는 단계로 들어갔.. 2026. 8. 14. [지랄풍년] 월성비가 광개토왕비 짝퉁? 이를 일러 적어도 서체에 관한한 저짝 놈들이 광개토왕비 짝퉁이랜다. 서체가 천상으로 광개토왕비 딱 그것이라, 그래서 고구려가 신라 땅에다가 만들어 세운 비석이랜다.짝퉁?어디가 광개토왕비 짝퉁인데? 어디가 짝퉁이야? 서체 수준은 비교가 안 된다. 광개토왕비는 초등학생 붓글씨 연습 수준이며 저 월성 비편은 그보다 몇 단계나 더 업그레이드해서 적어도 성균관 입학생 정도는 된다. 같은 시대?까고 있네.뭐 글자를 저리 쓰면 다 광개토왕비 서체야?지랄도 유분수다. 2026. 8. 14. 동진东晋시대 묘지墓志들 1. 왕흥지 묘지王兴之慕志 동진东晋 함강咸康 七年(241)七月廿六日 2. 장진 묘지张镇墓志 동진东晋 태녕大宁 三年(325)六月四日卒 3. 동진东晋 왕단호 묘지王丹虎墓志, 东晋 升平 三年(公元359年) 4. 왕건지 묘지王建之墓志 5. 东晋 고숭 묘지高崧墓志 6. 사곤 묘지谢鲲慕志 东晋 태녕太宁 元年(323)十一月廿八日卒 7. 이즙 묘지李缉墓志 东晋 승평升平 元年(357)十二月廿日 8. 왕명지 묘지王命之墓志 东晋 태화太和 三年(368)初月廿八日 참고 북위北魏 《고소용 묘지高照容墓志》 南京 陈郡谢氏、琅琊王氏、太原王氏和司马氏皇族墓志 2026. 8. 14. 북위시대 묘지墓志들 1. 《북위 구진 묘지北魏寇臻墓志》全称《恒农太守寇臻墓志》,正书,十八行,行二十三字。北魏正始三年三月(506)刻。1918年在河南省洛阳市栏驾沟出土,失盖。曾归苏州石物保存所,抗战时期石毁。观其用笔,方圆结合,遒劲有力,古朴生动,起笔收笔以及转折回环之处多有变化。结构拙中藏巧,欹正有致,显得雄浑豪放,潇洒遒丽,在群星荟萃、异彩呈秀的魏碑中,亦不失为上乘之佳品。 2. 《석완 묘지石婉墓志》全称《魏尚书江阳王次妃石夫人墓志铭》,为北魏永平元年(508)十一月刻,其高57cm,宽59cm,正书,志文十八行,满行二十字,于清宣统元年(1909)在河南洛阳城北出土。《石婉墓志》书法笔力雄健,字体古朴生动,具有早期北朝墓志的书法特征,但在北魏诸刻石中又独具特色,极值玩味。其字天然隽永,而有慧见匠心。结体虽取势横扁,但修长者,却也以纵相调,更得新趣。学习魏碑,取法此志,当是上乘。 3... 2026. 8. 14. 이전 1 2 3 4 5 6 7 ··· 545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