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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2411

또 한 척의 중국 난파 도자무역선, 남오1호南澳一号[남해2호南海二號] 발견 직후엔 남해2호南海二號라 부르다가 2009년 9월 25일을 기해 중국에서 남오1호 南澳一号 혹은 난아오 원 Nan'ao One으로 개칭한 이 난파선은 25.5 m 길이, 7.0 m 폭 규모인 옛 도자 중심 중국 무역선 merchant ship으로, 중국 명나라 시대 광동성廣東省 산두시汕头市 남오현南澳县 동남쪽 오서乌屿와 관서官屿 사이 속칭 “삼점금三点金”이라 하는 반조초半潮礁 해역, 곧 남오도南澳岛 운오진云澳镇 약 2해리 지점에 침몰해 해저 27미터 지점에 묻혔다. 2007년 5월 25일, 다이빙해서 물고기를 잡는 어부한테서 우연히 발견된 이 침몰선은 2009년 9월 수중 발굴 프로젝트가 공식 시작되어 2012년 9월까지 3차에 걸친 인양 작업이 완료되어 총 3만 점에 가까운 유물을 출수出水했다. .. 2024. 4. 4.
남해1호南海一号, 중국 수중고고학의 금자탑 남해1호, 난하이 원 The Nanhai One, 혹은 South China Sea No. 1은 중국에서는 南海一号 혹은 南海I号 라 표기하는 남송南宋 초기에 침몰한 당시 중국 도자기무역선으로, 난파 시점은 1127~1279년 무렵으로 생각한다. 1987년 영국 사우샘프턴 해양 탐사 및 복구 PLC(MER PLC) 팀이 18세기 선박 Rhynsburg 난파선을 수색하던 중 발견된 이 난파선은 길이 30.4m, 너비 9.8m, 돛대 제외 높이 3.5m로 드러난 이른바 해양실크로드 중국 최초 발견 선박 실물로, 조사 결과 도자기를 중심으로 하는 교육 물품을 잔뜩 싣고 중국 남부 항구를 출항했다가 폭풍우에 침몰한 것으로 추정된다. 발견 당시 송나라 도자기 약 200점과 송나라 동전, 약 130kg에 이르는 은.. 2024. 4. 3.
닭 사육도? 실크로드가 하지 않은 일이 뭔가? [사이테크+] "실크로드는 치킨로드였다…가축화한 닭 중앙亞서 세계로 확산" 2024-04-03 05:00 獨 연구팀 "중앙아 실크로드 유적지 12곳서 가축화된 초기 닭의 알 확인" https://m.yna.co.kr/view/AKR20240402134200017?section=culture/scholarship [사이테크+] "실크로드는 치킨로드였다…가축화한 닭 중앙亞서 세계로 확산" | 연합뉴스(서울=연합뉴스) 이주영 기자 = 고대 동·서양 문물 교류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 실크로드가 세계에서 중요한 먹거리 중 하나가 된 가축화한 닭이 ...www.yna.co.kr 요새는 기자질도 힘든 시대라 저 보도 말미엔 해당 기사 원천ㅊ소스인 문제의 논문 출처 url를 명기하거니와 클릭하고 들어가니 오픈액세스라 전.. 2024. 4. 3.
요서지방의 이른바 진시황 행궁 글쎄다, 이걸 짓다 말았다는 말인가? 내 눈엔 아무리 봐도 다 지었다가 폭싹 내려앉은 건물지인듯한데 이게 도대체 뭐란 말인가? 강녀석유지姜女石遺址 중 석비지유지石碑地遺址 第Ⅲ區 第1組-單元F1及ㅛ1 : Y1 北文(東-西). 출전 遼寧省文物硏究所 編著, 《강녀석姜女石 : 진행궁유지발굴보고秦行宮遺址發屈報告》(下冊), 文物出版社, 圖版 149, 2010 (2011. 4. 26) *** 저걸 중국에선 소병기 이래 진시황제 한무제 행궁지라 개사기쳐놨다. 시황제가 저 근처로 한 번 갔다는 사기 봉선서 기록 딱 한 구절에 보이는 갈석궁이라 하고 저 출토 유물들이 동시대 장안의 그것들과 비슷하다는 두 가지 근거로 말이다. 갈석궁? 행궁지? 웃기고들 자빠졌다. 그 갈석궁이라 게 뭐 대단한 게 있는 듯이 말을 하지만 실상.. 2024. 4. 2.
고려시대 안태安胎 전통[4] 태胎를 목에 두르고 태어난 법인국사法印國師 탄문坦文 충남 서산瑞山 운산면 용현리 보원사지普願寺址에는 법인국사탑法印國師塔碑이라는 고려 초기 비석이 있으니, 고려 초기 화엄종 승려 법인국사法印國師 탄문坦文(900~975)의 생애와 업적을 새긴 것이다. 받침돌인 귀부와 머릿돌인 이수는 물론이고 그 업적을 기술한 부분이자 몸통에 해당하는 비신을 완비된 비석으로 비신 전면 아래쪽이 약간 훼손된 부분을 제외하고는 전반적인 보존상태가 좋다. 그 곁에는 당연히 그의 사리를 봉안한 탑이 있다. 비문은 김정언金廷彦이 짓고 글씨는 한윤韓允이 쓰고 김승렴金承廉이 새겨 그의 입적 후 3년 뒤인 고려 경종 3년, 서기 978년에 세웠다. 내용은 법인이 화엄을 배우고 태조가 시행한 승과를 주관하고 기도하여 광종을 낳게 했으며 재해에 반야를 강설하여 물리치기도 하고 화엄경을 사경하여.. 2024. 4. 2.
고려가 왕건을 기억하는 다섯 번째 방식 일전에 나는 고려 왕조가 그 건국주 태조 왕건을 기억하며 추숭하는 방식으로 다음 네 가지를 들었거니와 첫째 종묘 신주 안치 둘째 어진 봉안 셋째 소상 제작 넷째 현릉 배알 하나를 보강해야 한다. 물론 더 있겠지만, 그런 까닭에 더욱 보강해야겠지만 내가 하나 놓친 대목이 있으니 다섯째 태실胎室 이다. 내가 괜히 이화여대박물관 소장 순화 4년명 청자 항아리를 태항아리라 했겠는가? 고려시대 안태安胎 전통[3] 이대박물관 왕건 청자는 그의 태항아리 2024.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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