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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2297

봉황 주작 장닭, 거기서 거기인 트로이카 장닭이 오동나무에 앉으면 봉황이요 장닭이 남쪽 향해 꼬끼오하면 주작이다. 장닭이 향로에 올라타면 봉황이요 무덤에 기어들어가면 주작이다. 뭐 대단한 요물 같은가? 말이나 사슴이 천상을 날면 그게 기린이지 기린이 무에 대단한 영물 같은가? 사령운이었던가? 내가 제일로 그리기 어려운 게 사람이요 제일로 쉬운 게 용이라고? 봉황 혹은 주작은 현실세계에선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동물이기에 아무도 본 놈이 없기에 내 꼴리는대로 그리고선 이게 주작이요 이게 봉황이요 하면 그뿐이었다. 그래서 실은 그리기 젤로 쉬운 것이 추상이다. 김환기 우주? 솔까 본인이 우주라 했는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본인이 그렇다 하면 그런다 할뿐 저게 우주가 아닌 해우소 똥물 퍼지는 모습이라 한들 누가 어쩌겠는가? 저런 추상은 언제나 구상으로의 .. 2023. 9. 30.
측량, 빗금에서 라인으로 근대는 빗금에서 선으로의 이동이다. 측량은 선을 긋고 경계를 수치화하는 핵심 중의 핵심이다. 왜 유길준이 측량 학교를 세웠겠는가? 측량없이 선을 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근대 이전에도 경계는 있었다. 하지만 그 경계는 언제나 빗금이라 언제나 그 빗금의 소유권을 둘러싼 논쟁이 발생했다. 측량을 도입하고 그것을 실제로 적용한 곳이 토지조사사업과 산림조사사업이었다. 이 사업이 실시되고 그것이 적용됨으로써 조선왕조 500년을 옥죈 산송이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저 두 사업으로 조선총독부가 토지와 산림을 수탈했다는 신화가 자리잡았지만 실은 정반대였다. 토지 산림 수탈은 금을 긋지 않은 상태에서 빗금으로만 존재하던 구역에서 늘 발생한다. 수탈은 전근대에 훨씬 더 많았다. 요즘도 이웃간 담장 구역이 어디까.. 2023. 9. 29.
평과 마지기...강렬한 빗금의 전통, ㎡의 탄생 식민지시대 문서를 보면 길이를 재는데 자주 보이는 단위가 尺(척)이다. 이것도 후기로 갈수록 미터법으로 대체한다. 미터법이 尺에 대해 지닌 최대 강점은 빗금의 경계를 최소화한다는 사실이다. 척으로 하면 척과 척 사이에 빗금이 생긴다. 이 점에서 미터법도 근간의 한계가 있지만 둘은 비교하면 그 빗금이 훨씬 줄어든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근대는 빗금의 퇴출이며, 그 자리에 라인을 갖다 놓는 것이다. 근대가 개막하면서 빗금이 급속도로 퇴출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전통은 강고해 그것이 가장 널리 남은 곳으로 아파트 건축물 너비를 말할 때 쓰는 평이 있고, 농촌에서는 논밭 넓이를 말할 때 쓰는 마지기가 있다. 이 평은 얼마전부터 언론에서 나서 없애기 시작했다. ㎡가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이다. 마지기는 내가 혹 둘을.. 2023. 9. 29.
Feast to commemorate 60th anniversary of passing state exam When he turned eighty-nine, Lee Gwangjeok 이광적 (1628-1717) held a banquet to celebrate the 60th anniversary of his passing the state examination 과거 科擧. He invited senior nobleman (yangban) over the age of seventy to his house in Bukwon, Seoul (present-day Jongno-gu, in central Seoul). Jeong Seon 정선, who lived near Bukwon at the time, meticulously painted scenes from this gathering to commemorate .. 2023. 9. 28.
북주北周 효민제孝閔帝 우문각宇文覺 우문각宇文覺(542~557)은 생몰년을 계상하면 향년 16세에 지나지 않는다. 죽어서 얻는 시호에 민閔자 들어간 이 치고 장수한 사람 없고 비극적 최후 맞이하지 아니한 사람 없다. 그는 字를 불교에서 따온 다라니陀羅尼라 했고, 대군代郡 무천진武川镇(지금의 내몽고자치구 호화호특시呼和浩特市 무천현武川县) 사람으로, 북조北朝 서위西魏의 권신으로 정권을 장악한 우문태宇文泰의 적장자嫡长子로, 북주北周의 개국군주로 천왕天王이라 칭했지만, 실제로는 권신 우문호宇文護의 괴뢰傀儡에 지나지 않았다. 7살(주서周書에서는 9세 때라 했다)에 약양군공略陽郡公에 책봉됐으니 당시 관상을 잘 보는 사원화史元華가 그의 친척들에게 몰래 이르기를 "이 공자는 지극히 귀한 상을 타고 났지만 불행히도 오래 살지는 못할 것이다"고 했다. 55.. 2023. 9. 26.
김현구-이덕일 임나일본부 논쟁이 남긴 것 이 양반 열받았군. 이덕일이랑 한판 붙더니 덤으로 그걸로 단행본 하나 추가했다. 김현구를 유명하게 만든 이는 이덕일임을 그는 알까? 비극은 이에서 비롯한다. 김현구는 이덕일을 만나 비로소 유명해졌다. 하지만 결코 김현구 자신은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더 비극이다. 그 어떤 경우에도 김현구로선 지는 게임이었다. 그가 이기기 위한 방법은 단 하나가 있을 뿐이었다. 그냥 놔뒀어야 했다. 이걸 김현구는 몰랐다. 내 보기엔 김현구는 이덕일이 친 덫에 걸려들었다. 유사역사학이라고 공격하고 나선 소위 강단 주류사학. 당신들은 졌다. 지금은 이긴 듯 우쭐하겠지만 내보기엔 당신들은 또 졌다. 이 말이 지금은 기분 나쁠 테지만, 두고 봐라 내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내 말 안 믿데.... 진짜로 안 .. 2023.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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