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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2297

國原, 충주가 본관인 김준엽이 창안한 새로운 성씨 창씨개명의 역설, 김준엽의 경우일본이 얽힌 한국 근대사에서 일어나는 곡해가 한둘이랴만 안중근이 탕탕탕 해서 보내버린 이등박문을 한국침략 원흉이라 하나 실은 이등은 병합반대론자다. 조선 병합한다 하니 방귀께나 낀 historylibrary.net 앞선 글에서 평안도 강계 출신이 김준엽이 게이오의숙 예과 재학시절 국원상광國原常廣이라고 창씨개명했다고 소개했거니와 그가 국원國原이라는 새로운 성씨를 창작한 유래를 내가 짐작할 수는 없었다. 이건 이 블로그 파워 필자 외우 신동훈 박사 지적인데 저 성씨는 충주의 옛 지명 국원에서 따다 썼다. 김준엽은 본관이 충주다. 비록 창씨개명했지만 뿌리를 잊지 않았던 것이다. 常廣이란 이름도 분명 의도가 있을 것이다. 2023. 9. 18.
창씨개명의 역설, 김준엽의 경우 일본이 얽힌 한국 근대사에서 일어나는 곡해가 한둘이랴만 안중근이 탕탕탕 해서 보내버린 이등박문을 한국침략 원흉이라 하나 실은 이등은 병합반대론자다. 조선 병합한다 하니 방귀께나 낀 일본친구들 쌍수들어 환영했겠다 하겠지만 천만에. 반대론 역시 만만찮았으니 반대 논거 중 가장 결정적인 건 실익이 없다였다. 무엇보다 조선은 거지라 식민통치는 돈이 열라 많이 들었다. 다 뜯어고쳐 새로 쓰야 하는데 그에 필요한 물적 인적 자원을 어떻게 동원한단 말인가? 수탈? 웃기고 있네 수탈할 게 있어야지? 이토가 반대한 이유가 그거다. 창씨개명? 일선동조? 이것도 웃긴다. 일본에서도 반대가 엄청 많았다. 왜? 창씨개명해버리면 일본놈 조선놈 구분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고려대박물관이 마련한 김준엽 특별전 출품작을 보면 그가 게.. 2023. 9. 18.
김준엽의 장정長征 평안북도 강계에서 1923년 8월 26일 태어난 김준엽金俊燁은 신의주고보를 거쳐 게이오대학慶應의塾 예과豫科에 입학해 그 2학년 혹은 3학년 재학 중인 1943년 학병으로 징집되어 1944년 2월 25일 중국 장쑤성江蘇省 쉬저우徐州 동쪽 다쉬자大許家 경비대에 배치된다. 한달 남짓만인 그해 3월 29일 일본군을 달출해 한즈둥(한치륭韓治隆) 사령관이 이끄는 중국군 유격대에 합류한다. 1944년 9월, 중국군 유격대를 떠나 린찬(임천臨泉)의 한국광복군 훈련반에 입교해 같은해 11월 훈련반을 졸업하고는 중국군 소위로 임관하고는 임시정부가 있는 충칭重慶까지 6천리 장정을 시작한다. 두 달여 장정 끝에 1945년 1월 31일 충칭 임시정부에 도착한다. 2023. 9. 17.
고려대박물관이 정리한 김준엽金俊燁(1923~2011) 약력 金俊燁 1923년 8월 26일 평안북도 강계출생 1944년 1월 일본 게이오대학 재학 중 학병으로 징집되어 중퇴 1944년 2월 중국 장쑤성 쉬저우시 다쉬자의 일본군 경비중대에 배치 1944년 3월 일본군을 탈출하여 중국유격대에 참가 1945년 1월 6,000리 장정을 거쳐 충칭의 임시정부에 합류 1945년 8월 미국 전략첩보국 OSS 요원들과 함께 한미공동작전에 참가 1946년~ 1948년 중국 국립동방어문전과학교 한국어과 강사 1948년 9월 중국 국립중앙대학 대학원입학 1949년~1982년 고려대학교 사학과 교수 1951년~1955년 타이완 국립타이완대학에서 연구 1958년~1959년 미국 하버드대학 객원교수 1959년~1961년 사상계 제3대 주간 1957년~1982년 아세아문제연구소 발기인, 부.. 2023. 9. 17.
나이를 세 살이나 끌어올린 김준엽 학병 징집 중에 장준하와 더불어 탈출해 광복군에 들어가고 훗날 고려대 총장을 역임하는 김준엽金俊燁은 1920년 생으로 알려져 있고 실제 각종 공문서에도 그리 되어 있으며 무엇보다 그 자신이 그렇게 주장했다. 위키피디아 사전에서는 그의 생몰을 1923년 8월 26일 ~ 2011년 6월 7일로 적었으니, 이는 새로운 사실이 반영된 것이라 보아야 할 성 싶다. 물론 예외가 있겠지만 1920년으로 볼 경우 문제도 없지 않아 보통 코스를 밟았다면 학병 징집 무렵엔 학교를 졸업해야 한다. 나이가 학병으로 징집되기엔 적지는 않으나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1943년 발급된 게이오대학慶應義塾 학생증을 보면, 그의 출생년이 1923년으로 적혔다. 나아가 이때 그가 파고 다닌 명함을 보면 본과가 아니라 예과豫科였으니 .. 2023. 9. 17.
지금도 쓰는 반달모양돌칼 *** Editor's Note *** 청동기시대 대표 석기 유물로 반달형석도라는 것이 있다. 그 생김이 반달 모양이라 해서 반달돌칼 혹은 반달모양돌칼이라고도 하는데, 말할 것도 없이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그리 불렀을 리는 만무하고, 현대 고고학도들이 그렇게 이름 붙였을 뿐이다. 문제는 용도. 이를 짐작하는데 첫째 크기를 고려해야 하는데 하나같이 한손으로 잡게 된 구조다. 또 구멍이 두 군데 대칭처럼 뿅뿅 뚫렸는데 여기다가 무엇에다 고정하기 위한 끈을 매단 흔적이다. 고고학도들은 이를 싱겁게 해결했으니 현대에도 이걸 사용하는 집단이 있기 때문이다. 이걸 고고학도들이 용도를 밝혀냈다 생각하면 안 된다. 저쪽 농부들은 너무나 잘 알기에 설명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다음 영상은 언필칭 나 청동기고고학도임을 내.. 2023.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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