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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2764

태대각간, 옥상옥에 다시 얹은 집 안록산 사사명의 난이 낳은 최고 스타는 곽자의와 이광필이었다. 안록산의 난이 진압 기미가 있는 시점에 급하게 황제 자리에 오른 숙종이 이미 "두 사람은 더 이상 전공을 포상할 방법이 없는데, 안록산의 난이 평정되면 무슨 자리를 덧붙여 주는가"를 걱정할 정도였다. 이런 고민에 똑같이 봉착한 이가 신라 문무왕이었다. 신라가 백제에 이어 고구려를 멸하자, 그 최대 공신 김유신을 포상할 방법이 없었다. 군신이 머리를 싸맸다. 모르긴 해도 이런 말이 오갔을 것이다. "저 영감을 달래긴 해야는데, 이미 직급도 대장군이요 대각간인데 자칫하면 삐질 텐데 도대체 뭘로 보상한단 말이요?" 이런 고민이 한참 이어지다 누군가 이런 제안을 냈다. "대각간이 최고 아입니까? 그럼 대각간 우에 한자리 더 만듭시데이" "거 좋은 생.. 2024. 1. 11.
[선화공주의 비밀을 파헤친다] (5) 무왕 왕비가 선화공주라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익산 미륵사 석탑 봉영사리기가 발견, 공개되기 전에 이미 나는 여러 번 단언했다. “선화공주는 때려죽여도 백제 무왕의 정비(正妃)일 수는 없다. 정비라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자칫 대통령이 탄핵되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했다가 결코 그리 하지 않은 새누리당 대표 이 머시기 꼬라지가 날 수도 있었지만, 나는 이렇게 장담했다. 나는 내 저 장담이 내 생전에 증명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한데 정말로 느닷없이 출현한 백제시대 금석문이 백제 무왕의 정식 왕비는 신라 출신 선화공주가 아니라, 백제 좌평 사탁적덕의 딸임을 폭로했다. *** previous article *** [선화공주의 비밀을 파헤친다] (4) 화랑세기 자매편 상장돈장上狀敦牂과 선화 [선화공주의 비밀을 파헤친다] (4) 화랑세기 자매편 상장.. 2024. 1. 11.
왕조 존속 기간과 조선총독부 시대가 지닌 힘 촉한 42년(221~263) 조위 45년(220~265) 서진 52년(265~317) 유송劉宋 49년(420~479) 남제南齊 23년(479~502) 양梁 55년(502~557) 진陳 32년(557~589) 수隋 27년 (581~618) 태봉 17년(901~918) 후백제 44년(892~936) 조선총독부 35년(1910-1945) 총독부 식민지시대 35년, 통감부 시대(1906~1910)를 포함하면 물경 39년에 달하는 저 시대가 얼마나 긴지 실감할 것이다. 저 통감부 총독부시대는 한국사로 보면 별개 왕정이다. 그 통치자가 일본 천황인 왕조국가였고, 그 아래서 신민은 국민으로 급속히 편제되고 한반도에서는 처음으로 국민이 탄생함으로써 단군조선 이래 그 국민이 권리를 갖고 국민의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한 시.. 2024. 1. 10.
강조康兆의 변變, 앞뒤가 안 맞는 고려사 미스터리 목종이 승려가 된 대량원군(훗날의 현종)을 궁중으로 불러들였다는 건 죽음을 앞둔 후계자 지명이다. 회생 불능이라 판단한 목종은 태조 왕건의 혈육(손자)인 대량원군을 환속시켜 보위를 물려주려 했다. 이미 죽음을 앞둔 왕이었다. 분란이 생길 것을 우려해 그 후견인으로 목종은 서부지역 사령관 강조에게 군사를 이끌고 들어와 호위하라 했다. 근데 강조가 칼을 거꾸로 돌려 목종한테 겨눴다고? 왜? 목종을 폐위케 하고 유배를 보냈다고? 그리고 자객을 보내 죽였다고? 죽음을 앞뒀다는 그가 살아났다고? 안 맞자나? 이미 죽음이 눈앞에 둔 왕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간다. 강조康兆의 변變 도대체가 이 난은 원인과 결과를 설명하지 못한다. 내가 이 난을 접하게 되기는 중학교 때 처음이었을 것이니, 그때부터 지금까지.. 2024. 1. 10.
화랑세기가 아니었으면 영영 묻혔을 문노文弩 화랑세기를 통해 부쩍 친숙한 이름이 된 신라 중고기 인물 문노는 표기가 두 가지라, 삼국사기와 같은 기존 문헌에서는 文努라 하지만, 화랑세기는 文弩라 해서 세심한 차이가 보인다. 둘 중 어느 쪽이 실상에 가깝냐 단언하면 단연 후자라, 이는 그가 걸은 길 때문이다. 대가야 왕실 계통이라는 혈통을 지녔다지만 사통해서 낳은 아들로 그 혈통이 확실치 아니한 그는 대가야 멸망과 더불어 신라사회에 편입되기는 했지만, 이렇다 할 배경이 없어 무직武職을 전전할 뿐이었다. 이렇게 해서 간난을 뚫고서 마침내 출세한 그는 군사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업적을 냈으니, 이런 족적을 볼 적에 그것이 비록 태어나서 얻은 이름이 아니라 훗날 바꾼 이름일 가능성이 많기는 하지만 당연히 그에 더 어울리는 이름은 文弩다. 글자 그대로는 이.. 2024. 1. 10.
이름이 품은 문화사, 당대 세계를 소비한 김유신 시대의 신라 김유신 조카이자 사위이고, 김흠순 아들인 김반굴金盤屈은 그 이름 반굴이 그 자체 특정한 의미를 지닌 작명법임을 앞서 지적했거니와, 그렇다면 궁금하지 아니한가? 왜 저 시대 하고 많은 이름 중에 저이는 반굴盤屈이라는 이름을 썼을까? 이것이 궁금하지 않냐 이거다. 이는 앞서 밝혔듯이 본래는 산해경에서 출전을 삼는데, 그 반굴은 도삭산度朔山이라는 상상의 산에 자라는 복숭아 나무 가지가 삼천리 가지를 뻗친다 하면서 그것을 묘사할 때 구사된 구절이다. 이를 통해 모름지기 저 시대 신라사회가 산해경을 소비했을 것이라는 발상은 겉핥기에 지나지 아니하고 그것을 소비한 신라사회 앙태 일면을 들여다 보는 증언이라는 데 진정한 의미가 있다고 나는 본다. 도삭산이라는 신선의 산, 복숭아 나무 이런 키워드를 묶으면, 그 시대 .. 2024.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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